폴 해기스의 잊힌 걸작 <엘라의 계곡>
2009년 겨울 한국에서 개봉했던 <엘라의 계곡>은 조용하게 묻혔다. 폴 해기스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각본가이자, 아카데미를 석권한 영화 <크래쉬>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누구나 <엘라의 계곡>을 떠올릴 것이다. 높은 완성도에도 한국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 작품을 적어 본다.
<엘라의 계곡>은 2007년 당시 할리우드에 불어닥친 수많은 이라크전에 관한 영화들 중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미국 개봉 당시 관객의 철저한 외면 속에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연이어 재평가가 이뤄져 DVD 및 온라인 유통으로 더 큰 수익을 거뒀다. 미국에서의 흥행 부진은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미국인들이 대면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아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버지의 깃발>이라는 전쟁영화의 각본을 썼던 폴 해기스는 전쟁이라는 덩어리를 잘라내 그 단면을 면밀하게 바라보는 작가다. 미국인이 윤리적 측면에서 자의적 마취 상태이며, 아무리 외면한들 전쟁의 참혹함은 변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개봉 당시 미국인들이 전쟁이라는 헤게모니를 세계평화라는 이념과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납득하고 있을 때 영화는 개봉했다. <엘라의 계곡>은 마치 반전 프로파간다처럼 불편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에 실패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엘라의 계곡>은 더 주목받는 영화가 됐을지 모른다.
이쯤에서 엘라의 계곡이라는 제목의 은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들 마이크가 명예로운 군인이 되길 바랬던 퇴역 군인 행크는 참전 후 귀환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헌병 수사관 출신 행크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러 직접 군부대로 향한다. 극 중에서는 '엘라의 계곡'은 행크가 사건의 담당 형사인 에밀리의 집에 방문했을 때 들려주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엘라의 계곡’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남서쪽 엘라 교차로를 말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3,000년 전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던 바로 그곳이다. 강국 블레셋은 힘센 장사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골리앗은 신장이 대략 2.9m의 거인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다윗’이 맨손으로 골리앗과 맞서게 된다. 행크는 잠이 들기 전 혼자되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에게 무시무시한 골리앗 앞에 던져진 다윗의 용맹함을 말해주고 싶었다. 어린 소년이었던 다윗이 방패와 투구도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소신만으로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렸다는 그런 이야기.
2003년 이라크 전쟁 참전 후 고국에서 살해된 참전 병사 ‘리처드 데이비스’의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인 <엘라의 계곡>의 주인공은 실제 미국 기성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얼굴을 가진 토미 리 존스다. 그는 부사관 출신의 예비역 군인인 행크로 출연한다. 단순한 마약 관련 사건으로 아들의 실종을 처리하려는 군수 사대를 의심한 행크는 지역 관할 형사인 에밀리 샌더스와 함께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선다. 전직 수사관 출신답게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해 가던 중 아들 마이크와 전쟁에서 함께 했던 전우들을 만난 후 결국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알게 된다.
감독이 이 행크라는 인물을 한방에 정리하는 장면이 있다. 막내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듣고, 직접 현장으로 서둘러 가는 길에 행크는 거꾸로 달린 성조기를 보게 된다. 행크는 그 다급한 상황에도 국기를 올바르게 고쳐주고 길을 떠난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러닝 바람으로 낯선 여자와 대면하지 않는 것. 토플리스 차람의 여자에게 부인이라는 경어를 사용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 또한 군인 출신에 애국심이 투철하고, 전쟁의 선을 믿으며, 구겨진 바지와 더러운 구두를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 시대의 상징. 영화는 지속적으로 행크라는 사람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를 하나의 전형성 안에 몰아넣는다. 심지어 폴 해기스는 베트남전 참전 경험과 인종차별, 성차별이 언급되는 지점도 피하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라는 설정에 흠집을 줄 수 있는 설정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침략전쟁마저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전쟁터에서 아들은 ‘위생병’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적군의 포로들을 고문하는 고문전문가로 지내왔다. 또한 트럭을 운전하며 장난치다 현지 아이를 살인했다는 사실이 수사 결과 족족 드러난다. 엘라의 계곡에 던져진 우리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영웅화되고, 비겁한 방식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지 보여준다. 행크는 어린아이에게 다윗이 되라고 충고했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그 협박 아닌 충고에 내몰려 죄가 없는 골리앗에 이유도 없이 돌을 던지는 살인자가 된다. 영웅은 전쟁의 참상을 가리는 도구로 이용되고, 빼빼 마른 이데올로기는 정치라는 도구를 통해 선전될 뿐이다. 감독 폴 해기스는 인터뷰에서 밝힌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다윗 이전에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왕에 의해 그 계곡으로 보내졌겠는가 하는 것이다". 엘라의 계곡이란,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죽음의 골짜기이며 이라크 전이다. 자신의 권유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아들의 비인간적 행동을 깨닫게 된 행크는 그동안 조국에 충성했던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아들의 인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갔는지 심적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가 신화와 영웅이라는 빛 좋은 허울을 내세워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는지 바라보아야 한다. 행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내걸었던 성조기를 다시 거꾸로 달아 놓는다. 무너진 신화와 서글픈 국가를 도외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