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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02. 2019

정확하게 슬픔을 적는 사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저

 외투를 여미는 손이 분주한 오늘,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에 닿았다. 겨울을 입에 머금은 채 얼어있는 청계천을 걸었다. 종종걸음치다 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킨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친구는 연락이 없다.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꺼내 든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표지가 익숙하다 했더니 아는 화가의 작품이네. 팀 아이텔, 최근 여러 책에서 심심찮게 그의 그림을 보았다. 표정 없는 인간을 그리는 작가. 가려진 표정이 궁금해 유심히 보는 뒷모습.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남자는 바닥에 앉아 뭔가를 응시한다. 흰 셔츠를 입은 그는 앙상해 보인다.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것, 당신의 근심에 난 타자일 뿐이라는 거리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심히 바라보는 거다. 그런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 책을 구석구석 만져보았다. 가방이 무거워져도 종이책을 포기할 수 없는 건 텍스트를 넘어선 물성 때문이다. 오지 않아도 괜찮아. 오지 않으면 읽을 수 없을 때까지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인식을 찾아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친구가 도착했다. 왜 늦었니. 어제 데이트를 해서 쩜쩜쩜. 난 괘념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오래 기다렸지만 이런 자투리 시간이 책 읽기 좋은 시간인걸. 추운 날씨와 허기진 배가 더 고픈 독서를 부른다. 그래 이제 근처 식당에 가자. 어서 주문하자. 파스타 둘, 이 식당 좀 비싸네.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나. 요즘 어떻게 지내냐, 연말인데 바쁘진 않은가. 연애는 잘 되고 있는가. 역시 그렇구나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 지난번 봤을 때는 폐병 걸린 환자처럼 일그러져 있더니. 최근 한 영화에서 뒷모습이 스산한 여배우가 이런 말을 하더라. 사랑하세요. 딴 거 하지 마세요. 그딴 것들은 다 연애 못 해서 하는 짓일 뿐이에요. 다 가짜예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어쩐지 섭섭하더라. 신형철의 미문을 읽다 보면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부모의 농사를 도우러 농과대학에 진학한 시골뜨기 청년 ‘스토너’는 난생처음 문학을 읽는다. 교양수업인 영문학 수업을 듣다가 뭔가에 눈을 뜬다. 어리둥절한 그에게 지도 교수는 말한다.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한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스토너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신형철의 글을 읽고 나서 스토너가 말했던 명백한 사랑의 표식을 보았다. 신형철의 글엔 문학에 대한 구애가 빼곡하다. 순수한 미문이 주는 감응에 나 역시 글을 끄적여 본다. 오래 생각하고 숙고한 문장에서 빚어지는 청량감에 취해 적는다. 마치 연애의 뒷맛처럼 부끄러운 감흥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태도

을지로 뒷골목, 출처 : 정보원 작가

 그래 넌 요즘 무슨 책 읽니? 지난번 내가 쥐여준 책은 다 읽었니? 아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요? 그래 그 책 말이야. 내가 참 좋아하는 책인데. 그냥 별로였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좀 답답해요. 명쾌하지 않고 자꾸 주저하는 느낌이에요. 그거참 아이러니한 일이구나. 책의 제목에 ‘정확한’이라고 틀림없이 새겨져 있는데. 조금 서글퍼진 나는 책에 대한 애정을 숨기기 바쁘다. 괜스레 표리부동한 말을 내뱉고는 풀이 죽는다. 예술을 누릴 때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이 좋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느낌을 마주할 때 파열하는 두 갈래의 상념도 좋다. 한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순간, 인식의 결도 옅게 퍼진다. 몇 년 전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심오하고 적나라하며 정교한 문장에 감명을 받았다. 제목처럼 정확하기 위해 숙고하는 작가의 시간이 느껴졌다. 흔한 글이 되지 않으려고 읽고 또 읽은 이의 글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감상이 이모티콘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이렇게까지 공들여 비평을 적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했다.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린 그의 글을 가물에 콩 나듯 읽었다. 마치 완간이 안 된 연재만화를 읽는 갈급함으로.

 녀석의 말처럼 신형철의 글은 아름답지만 단정하지 않다.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처럼 갈피를 못 잡고 모호하다. 단정한 글이란 말 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글이다.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뭔데 라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신형철은 잡히지 않는 슬픔을 여러 겹으로 접는다. 비등점을 넘은 소재들만 다뤄지는 입들을 뒤로한 채 발품을 판다. 어쩐지 답답해서 하품이 나올라치면 문학이 원래 그런 거라며 고개를 수그린다. 내 지저분한 방처럼 정감을 품은 문장이 더디게 움직인다.


 난 그를 동경한다. 이런 글을 쓸 줄 아는 이를 향한 시샘. 그 한없이 멀어 보이는 인식의 끄트머리라도 잡으려는 아등바등, 토라져 격차에 대한 절망감. 한편 내가 좋아하는 인간상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섣부른 단정을 내뱉지 않는 사람. 한마디를 던지고도 자신이 놓친 예외에 마음을 쓰는 사람. 그렇게 주저하다 무엇 ‘일 것이다’ 혹은 ‘일지도 모른다.’고 말해버리는 사람. 어릴 때는 통찰을 머금은 사람을 따랐다. 죽비를 내리치는 선승처럼 서슴지 않고 정답을 말해야 끌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세상엔 정답이란 게 애초부터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 점점 더 모르는 채 살아감을 실감한다. 세상을 개도할 수 있다는 이의 글은 화끈하지만 끝내 알싸한 자취만 남긴다. 세상을 향한 일갈이 젊음의 특권이라며 경외하던 기억은 사라졌다. 신형철은 쉼 없이 에두른다. 표지 속에서 주저앉은 남자처럼 진실에 베이는 순간을 포착하려 적는다. 얼핏 스쳐 가는 상처를 놓칠세라 유심히 바라본다.


 스탈린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에 불과하다"(A single death is a tragedy, are million deaths is a statistic)라 말한 바 있다. 이는 첨단기기가 인간 대신 전쟁을 수행할 때 우려하는 바를 지적한다. 과거엔 총으로 한 인간을 쏴 죽이는 게 전쟁의 스펙터클이었지만 요즘 전쟁은 사무실에서 단정한 양복을 입은 이의 서류철이 수백만 인명을 해친다. 피칠갑의 이미지는 잔혹함을 자아내지만 한 인간이 죽었다는 서술엔 티 끝 하나의 망설임도 없다. 이는 글의 묘사와 맥락이 가진 중요성을 유추할 수 있는 생각이다. 죽인다 오지다 지리다를 남발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모욕받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한 사람의 심정과 마음을 면밀히 서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폭력적 제스쳐 앞에 스러지고 말 것이다. 냉소란 결국 포기의 다른 말이다. 내게 필요한 건 타인의 고통을 집요하게 적는 사람이다.


근사하다는 말

해방촌, 출처 : 직접

 책을 읽으며 위로받는다는 건 어떤 걸까. 한때는 작가의 문장이 내 생각과 정확하게 그려질수록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근사하다’의 어근에 ‘거의 같다’는 뜻이 있는 것처럼 내 마음과 밀접한 글에 위로를 받곤 했다. 요즘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내 마음과 엇나가서 근사치와 거리가 있더라도 마음속 닫힌 공간을 허물어주는 작가를 찾는다. 아직 가닿지 못한 인식의 한켠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외출 전 챙기는 몇 권의 책들은 가방을 불룩하게 한다. 내 곤궁한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낑낑거린다. 최근 3일간 여행을 다녀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난 여행지에서도 내가 가닿지 못한 그 누군가의 이야기에 욕심을 내는구나. 바닷가 근처 작은 영화관에서도 누군가가 풀어놓은 서사에 마음을 뺏기고야 마는구나. 시시포스가 마주한 공포는 영원한 반복이 주는 무의미의 사슬임을 명심한다.

 친구와 짧은 산책을 끝으로 헤어졌다. 영화를 보러 가는 녀석의 자취를 쫓지 않고 책을 꺼냈다. 날이 추워 허벅지가 시렸지만, 문장에 집중하려 애를 쓴다. 겨울이 시리다.


Cover:Tim Eitel (German, b. 1971), Abend [Evening], 2003. Oil on canvas, 210 x 3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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