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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10. 2016

여전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

영화 <우리 선희> Our Sunhi , 2013, 감독 홍상수

타인이 흘린 일상의 흔적들을 직접 찾아가 보곤 한다. 내가 평생을 살아도 어떤 개연도 갖지 못할 그런 공간에서 힘껏 숨을 들이마시길 원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일상과 비일상이 모자이크처럼 뒤얽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낯선 동네에 가서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신다. 남의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행로를 정한다. 오래 걷고, 많이 보고 그러다 지치면 싸구려 커피집에서 목을 축인다. 서울의 동네 곳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공원도 좋다. 동네마다 사람 사는 분위기가 달라 내내 구경하느라 허기질 틈이 없다. 이번 추석 연휴 역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종로의 영화관을 찾아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를 보았다. 물론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처럼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세계 곳곳의 호텔을 누비면서 재즈를 듣고, 맛있는 굴 요리를 먹진 못한다. 하지만 내게 서울의 모든 장소가 그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가지고 나를 맞아주었다.

건대 앞에 저 치킨집은 매번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곳이다. 아직도 가보진 못 했다.

지난 주말엔 창경궁을 걸어봤다. 경복궁을 수없이 걸어봤지만 창경궁은 처음이었다. 경복궁에 비해 사람이 적어서인지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기가 좋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단풍과 갈등의 찌꺼기를 보잘것 없게 만드는 고적한 시간들이 있다. 다소 덥기는 했지만 한적함을 선물 받았다. 궁궐은 내게 순수하게 어떤 목적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창경궁을 걸으며 영화 <우리 선희>의 등장인물인 문수, 재학, 최 교수가 두리번거리던 공간들을 찾아가 봤다. 그리고 궁을 나와 영화 속에 등장했던 주요 공간인 아리랑 카페, 공드리 커피집, 재학이 살던 북촌의 빌라, 골목길의 모습까지 직접 걸어보았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북촌을 헤매다 보니 난 홍상수의 영화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홍상수의 전작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개봉했을 때도 배경인 서촌 마을에서 여자 친구와 땀을 뻘뻘 흘리며 걷던 기억도 났다. 사직단에서 영화 속 해원이가 앉았던 벤치에 앉아 커도 너무 큰 동상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북촌방향>에 나오는 고갈비 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셨고, 다정이라는 한정식집에 혼자 찾아가 비싼 돈 주고 점심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극장전>, <자유의 언덕>도 마찬가지다. 난 홍상수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종로, 건대, 수원까지 직접 체험했다. 홍상수의 영화는 산책을 부르는 마스터의 신호가 있고, 난 그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순간들이 그리워 옥희와 해원이를 찾아 길을 헤맸다.

창경궁 안에서 골똘히 추천서를 읽는 선희

이런 체험들의 욕구는 아마도 홍상수가 선물하는 일상의 빈틈 때문일 것이다. 우리 선희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내 앞에 앉아있는 당신이다. 영화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술자리 신에는 당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무언가 통하길 바라는 강렬한 의지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것을 쉽게 정의해내려는 불필요한 말들의 천착은 분명 고통스럽다. 홍상수의 영화는 그 답답한 순간을 리얼하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유사성으로 묶어내며 처절하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제목 <우리 선희>가 주는 중의적 뉘앙스처럼 정의되지 않는 이물감이 서로의 대화에 막을 친다. 선희라는 여성을 정의하는 남자들(최교수, 문수, 재학)과 자신을 규정하는 그 말들을 훌쩍훌쩍 뛰어다니는 선희의 태도는 이 불통의 도돌이표다. 그래서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헤매고, 소화되지 않은 이물감을 제거하려 술을 마신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홍상수 감독의 이 사진을 보고 실제 저 술집을 찾아가 봤다. 북촌의 법원 옆에 자리한 이 자그마한 가게를 찾았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그렇게 일상의 유사성으로 우리를 이끌고,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늘 함께 있었던 삶의 조각들에 한껏 취해 영화관을 빠져나오게 한다. 하늘을 힐끗 올려다보고는 가을볕을 즐기는 최 교수의 모습, 명정전을 올라서는 세 남자의 엉거주춤한 상념들, 카페 아리랑에서 무언가를 계속 파내는 문수의 손동작과 뒤도 돌아보지 앉고 재학을 떠나는 선희의 단호한 발걸음까지 모두 정겹다. 난 그런 모습에 위로받는다. 스스로 정의하기 힘들었던 홍상수의 영화에 관한 내 솔직한 심경들을 짧게나마 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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