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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10. 2016

개츠비는 왜 매일 파티를 열었을까

영화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 2013

혼자 사는 남자들은 끼니를 걱정한다. 잘 먹고살고 싶은데, 언제나 부실한 상차림으로 때운다. 몸에 좋은 영양소와 그럴싸한 기분은 포기한 지 오래다. 혼자서 먹는데 한계가 많다. 우선 혼자 먹는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는 데다가, 가끔씩 간단하게 때우고 싶을 때 밥을 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식당이 김밥천국인데, 조악한 음식의 질이 혼자 먹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혼자 사는 남자 하면 의례 떠오르는 라면과 걸어가며 먹는 삼각김밥, 전자레인지 속 햇반과 통조림 같은 것들은 정말 진저리가 난다. 나 같은 독신들은 안과 밖으로 혼자 먹는다는 것에 일종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 사는 것도 피곤한데, 먹는 것까지 참. 수년째 퇴근 후 혼자 밥을 먹어온 나는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더욱 우려되는 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혼자 먹는 행위 자체가 힘겨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정우의 먹방

오해할지 몰라하는 얘긴데 난 절대 혼자 먹는 밥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상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누가 따듯한 집 밥 놔두고 밖에서 밥을 먹고 싶겠는가.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는 30대 초반의 나는 그렇게 혼밥족이 되었다. 직장 상사와 먹는 밥은 어렵고, 직장 동료와 먹는 밥은 신경 쓸게 많다. 기사 식당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돼지불백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기사들 역시 그런 상태에 몰린 것이다. 운전 중 화장실을 들리기 쉽지 않으니 국물 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다. 노량진의 수험생들이 혼자서 컵밥을 먹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은 시간이 없고, 돈이 적고, 인간관계는 사치이기에 그저 컵밥으로 때워 배를 채우는 것이다. 그저 그런 상태로 몰린 것뿐이다.

편의점 라면은 독신자들의 단골 메뉴다.

MBC의 <나 혼자 산다>

우리의 노동환경은 혼자 먹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혼자 먹고 있으면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물어보고, 혼자 영화 보면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우리'이길 강요하는 사회에서 '혼자'가 되면 마치 남과 어울리기 힘든 사람을 보듯 쳐다보듯 하니 불편하다. 편의점 도시락이 불티나게 팔리고, 먹방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총각들이 라면물을 끓이는 덴 이유가 있다.
요즘 MBC에서 하는 <나 혼자 산다>가 상당한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나도 몇 번 찾아봤는데, 요즘 인기를 끄는 아프리카 TV 개인 먹방에서 모티브를 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억나는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배우 이성재가 스스로 편의점에 가서 이게 편하다며 도시락을 먹는 장면이었다. 화면에서는 쓸쓸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는 그것이 머쓱함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카메라에 변명을 한다. 그렇다 아직 대부분은 독신들은 혼자 먹는 것이 어색하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면 연신 성대한 파티를 여는 개츠비를 볼 수 있다. 그는 이 성대한 파티를 통해 첫사랑 데이지의 관심을 끌어 그녀와 조우하려 한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굳이 이런 성대한 파티가 필요할까. 사실 그녀를 만나는 최적의 방법은 조용히 그녀에게 따라붙어 밀회를 하는 것이다. 실제 원작에서도 개츠비가 데이지와 컨택할 수 있게 된 계기는 친구를 통해 몰래 만나는 것이 아니었던가.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는 더 없이 잘 어울린다.

개츠비는 성대한 파티를 열어 그 시대의 사치성과 허황된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종전과 대공황 사이의 들뜬 분위기는 대부호 개츠비의 지갑을 자극한다. 개츠비는 2층 난간에 서서 난잡한 파티를 바라본다. 내 생각에 개츠비가 파티를 여는 이유는 데이지 때문이 아니다. 아마도 개츠비는 사교계를 접수해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은 것이다. 자신이 직접 성대한 만찬의 장을 만들고 그들과 얘기하며 즐겁게 밥을 먹고 싶어 파티를 연 것은 아닐까. 개츠비 역시 아무리 돈이 많아도 혼밥은 어려웠던 것이다. 막상 데이지를 다시 꼬시기 위해 ‘너 때문에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야.’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사실 입에 발린 거짓말이다. 실은 혼자 밥을 먹는 머쓱함과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스스로 파티를 연 것이다. 개츠비는 오늘날처럼 먹방을 보며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컵밥을 먹으며 배를 채우기엔 신흥 부호라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개츠비가 여는 성대한 파티는 <물랭루주>로 유명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화려한 무대 연출을 통해 더없이 화려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얼굴이 더 늙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배고픔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배가 고프니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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