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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10. 2016

바래진 기억을 어루만지며

영화 <환상 속의 그대>  DEAR DOLPHIN , 2013

며칠 전 늦게까지 야근하고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난데없이 보고서를 앞당겨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몸이 무리를 해서 무척 피곤했는데도 내 머리는 부지런하게 꿈에 접속했다. 근데 웃긴 건 난데없는 사람과 야한 꿈을 꿨다는 사실이다. 평소 행정업무 때문에 접할 일이 많았던 네 살 많은 근처 사무실 여직원과 꿈에서 야한 짓을 했다. 평소 그 어떤 성적인 느낌도 받지 못했던 대상과 거사를 치르고 나니, 아침에 침대에 앉아서 몇 분간 나라는 인간의 이상함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 친구도 있는 놈이 도대체 사춘기도 아니고 이런 꿈을 꾼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실 꿈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어떤 개연과 맥락을 따질 수 없는 무의식의 공간. 그 날 하루 종일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그 생생한 꿈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영화 <환상 속의 그대>  DEAR DOLPHIN , 2013

꿈은 거의 대부분 깨어나면 급속도로 잊힌다. 하지만 현실과 같이 생생한 꿈은 마치 과거에 경험했던 것처럼 잊히지 않는다. 희미한 기억보다 생생한 꿈이 오히려 더 내 기억 체계에 큰 주름을 새긴다. 그래서 현재의 나를 만드는 기억들이 머리에 저장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과거보다 꿈이라는 허구가 더 크게 자리를 잡기도 한다. 나는 분명 꿈에서 여직원을 만났지만, 막상 식당에서 마주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몇 달 전 강진아 감독의 영화 <환상 속의 그대>를 보았다. 요즘 주가를 올리는 한예리의 과거 작품들을 살펴보다가 접한 작품이다.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질척거리는 이야기가 궁합이 안 맞아 후반부 다소 지루해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약혼자를 불의의 사고로 잃은 혁근이라는 남자다. 그는 약혼자 차경의 품에 누워 편안한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는데, 그녀의 죽음 이후 환청과 불면증에 시달린다. 약혼자에 대한 그리움이 빚어낸 증상들은 그의 기억 체계를 뒤집어 놓고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한다. <환상 속의 그대>는 꿈과 현실 그리고 과거의 삼위일체가 한 남자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영화 <환상 속의 그대>  DEAR DOLPHIN , 2013

인간은 현실이 가장 중요하고 미래를 위해 사는 동물이라고 누군가 말하지만, 사실 과거는 한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과 다름이 없다. 과거는 지나가버리고 죽은 시간이 아니다. 이것이 영화 <환상 속의 그대>가 말하려는 속삭임이라고 나는 느꼈다. 과거를 토대로 꿈과 현실 그리고 환상이 빚어지니 우리는 기억과 이별하기 어렵다. 오히려 영화 <환상 속의 그대>의 과거란 면밀히 살아서 움직이는 선연한 시간이다. 약혼자의 죽음로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린 혁근은 그녀의 친구인 기옥과 잠자리를 가지지만 이내 후회한다. 과거에서 헤매는 혁근이 안타까워 기억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접근하지만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의 질척거림은 과거 속의 차경을 더욱 선현 하게 할 뿐이다.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면 꿈을 꾸는 해원이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냉혹한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약한 사람이다. 해원이는 자신이 겪었던 과거도 싫고, 앞으로 닥쳐올 미래가 두렵다. 그녀는 이쁘고 사랑스럽고 재능이 충만한 젊음이지만, 그녀 스스로 자신의 과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잠을 청해 현실에서 도피해낸다. 그리고 어떤 과거보다 생생한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게는 그 꿈이 고달픈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개찰구였을 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꿈이 해원이의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영화 <환상 속의 그대>  DEAR DOLPHIN , 2013

일반적으로 노인은 어느 한 시절부터 기억력이 급격하게 퇴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연구에 의하면 그 말이 모두 맞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기억은 분명 퇴화하지만, 아무리 늙어도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주 오래된 인상적인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그 부피를 키워나간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망각의 역현상’이라 부른다. 내 생각에 아마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명백한 기억만 머릿속에 남는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노인은 기억(과거)이 퇴화하면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지만, 가장 중요한 알맹이만은 남겨두어 자신을 식별해낼 수 있는 정체성만큼은 쌈짓돈처럼 주머니에 지니고 관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아마 그렇다면 내가 어젯밤 꾼 꿈도, 내가 빚어낸 상상 속의 사건도, 주말마다 보는 영화에도, 그녀와의 여행길에도 분명 죽음으로 가는 소지품이 될 후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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