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Oct 11. 2016

기적을 꿈꾸는 러너들을 위한 말들

러닝을 즐기기 위한 몇 편의 영화들

평소 달리기를 하러 집에서 나가기 전에 1~2분 정도 고민한다. 라디오 들을까? 음악을 들을까? 그냥 냅다 뛰는 게 나으려나. 각자 장점은 있다. 라디오는 대화하는 기분을 주어 지루함이 적다. 스토리가 있는 러닝이 가능하다. 가령 라디오에서 문학을 얘기하면 그 속으로 뛰어들면 그만이고, 라디오 패널들의 수다를 들어도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하면 된다. 러닝 강도를 떨어뜨리고 흐름에 맡기는 방식이다. 간혹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운동 강도를 높일 때도 있다.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리듬을 탄다. 빠른 속력으로 도심을 질주할 때 쾌한 기분이 극대화된다. 간혹 맨 귀로 뛸 때가 있는데, 보통은 깜빡 잊고 헤드셋을 챙겨 오지 않을 때다. 이럴 땐 풍경과 하늘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하늘이 내 눈 주위로 쏟아진다.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고, 오늘 저녁 메뉴를 그리며 오늘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실감을 느낀다. 모든 달리기는 옳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 50/502011, 감독 조나단 레빈, 주연 조셉 고든 레빗

난 혼자 하는 운동을 선호한다. 헬스장에서 바벨을 들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는 걸 단체운동보다 선호한다. 요즘엔 팀을 이뤄 운동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과 사람을 찾기 어렵다. 축구 11명, 농구 5명 그게 또 2팀이나 있어야 한다. 웬만한 동네 운동장은 예약을 꽉 차있고, 시설 좋은 곳들은 대통령 아니면 테니스 코트도 맘대로 대여하기 어렵다. 누군가 나의 혼자 운동을 각팍함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단순히 여건에 맞는 선택할 한 것이다. 조깅을 한다는 것은 가장 간편하게 내 운동량을 채워주는 것이고, 방에서 라디오스타를 보며 아령을 드는 것은 킬링타임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가끔 단체 활동으로 등산과 축구를 할 때 눈치를 보며 쓱 빠지는 게 영 눈치가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요즘은 도시에도 러닝 코스와 자전거 코스가 보기 좋게 뚫려있다 보니 혼자 운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쉬워졌다. 다행히 내가 일하는 동네 앞에 자그마한 조깅 코스가 있어서 종종 퇴근 후에 뛰곤 한다. 영화에서처럼 맨해튼 센트럴파크의 우아한 조명은 없지만,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적막과 고요가 있다.

영화 50/50 2011, 감독 조나단 레빈, 주연 조셉 고든 레빗

최근엔 두 발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던 조깅에도 많은 돈을 투자하게 된다. 단순하게 운동화 한 켤레만으로 즐거운 러닝이 되지 않는다. 골프나 자전거만 장비병이 있는 게 아니다. 우선 나이키 쇼핑몰을 들어가면 러너들을 위한 수많은 용품들이 당신을 자극할 것이다. 코스에 따른 운동화는 20만 원이 훌쩍 넘고, 계절별로 윈드브레이커부터 봄버, 후드, 플리스, 고어텍스까지 운동량을 높이기 위한 의류가 가득하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위한 장갑, 거치대, 블루투스 이어폰도 필요하다. 어디 그뿐인가 모자, 가방, 물병도 러너들에겐 기분 좋은 사치를 부르는 아이템이다. 그중에서도 좋은 러닝화는 언제나 탐이 난다. 운동화가 몇 켤레나 있으면서도 하얀색의 날렵한 러닝화를 볼 때마다 감복하고 만다. 전 세계적으로 러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다 보니 난다 긴다 하는 업체들이 러닝화 전쟁에 참여 중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커졌고, 신소재 발굴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아디다스의 ‘에너지 부스트’는 바닥의 EVA 소재 중창 대신 신소재 부스트 폼을 사용해 쿠셔닝 효과를 높였다. 나이키의 패셔너블한 러닝화 플라이니트 루나원은 미적 감각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탐내지 아니할 수 없는 이미지다. 누군가 혀를 차도 어쩔 수가 없다.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 2012

어제 창경궁 앞을 느릿느릿 거닐며 걸어가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재빠르게 뛰는 여성을 보았다. 어둡고 깜깜한 도로 옆에서 저렇게 뛰면 치여 죽기 딱 좋다. 러닝화도 중요하지만, 형광물질이 있는 머리띠나 모자, 운동복으로 야간 러닝의 안전도를 높여야 한다. 나이키의 실드 러닝 운동화는 반사체 디테일 덕분에 어두운 곳에서 뛰어 난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역시 구매에는 명분이 필요하고, 단호한 결재만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렇게 비싼 옷을 입고 도심에서 뛰다 보니 패션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러닝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영화 <마지막 4중주>를 보면 아내와 다툰 한 남자가 러닝을 하다가 미모의 여성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데, 그런 상상이 가능할 정도로 요즘은 젊고 이쁜 여성들이 러닝 코스에 동참하여 날 북돋아 주고 계시다. 눈이 즐거우니 힘이 더 나는 건 당연지사라 난 곡진한 표정으로 그녀들에 화답한다. 그리고 요즘엔 워낙 패셔너블한 러너들이 많아서 옷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미끄러운 그녀들의 꽉 끼는 타이즈도 블록버스터 급 볼거리다.

아침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조셉 고든 레빗'이 주연한 50 대 50(50/50)을 보며 조금은 겁이 났을 것이다. 영화는 실화에 근거하여 항상 건강하고, 좋은 몸매를 유지하는데 힘을 쏟던 전문직 남성이 어느 날 암에 걸려 고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 아담은 온순한 성격과 주기적인 운동으로 몸과 정신이 건강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 없이 덜컥 척추암에 걸려 인생 종 치기 직전까지 몰린다. 그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매일 아침마다 조깅을 하는 저 남자에게 왜 이런 시련이 오는지 알 턱이 없다. 주기적인 러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몸매나 건강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달리기라는 활동이 주는 신체의 쾌함이 더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몸무게와 몸매 관리에 집중하다 보면 운동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육체를 혹사시켜 얻어내는 상승곡선을 바라보며 달리면 잡념이 사라지고, 고민들이 단순화된다. 러닝은 정신적 측면으로 더 큰 효용성을 지닌 운동이다.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 러닝을 한다는 하루키의 말을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奇跡, I Wish, 2011

미국의 심리학자 A.J 맨델에 의하면 30분 이상의 러닝을 하게 될 경우 사람은 ‘러너스 하이’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러너스 하이는 오래 달려도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맘이 드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한다. 달리기가 신체는 고통을 잊게 해 주고, 뇌에서 엔도르핀을 분비시킨다. 피곤할수록 달리게 된다는 러너들의 잘난 체는 헛말이 아닌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기적(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 奇跡, I Wish)을 보면 어린 마에다 형제와 친구들은 계속해서 동네를 달린다.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숨을 헐떡이며 전력 질주한다. 아이들은 누군가 뛰면 같이 우르르 몰려 뛰어다닌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기적을 믿기 때문이다. 거리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적을 찾으려는 외침이다. 일상의 템포를 뛰어넘은 그 순간에 삶의 전환이라는 계기가 생긴다.

작가의 이전글 바래진 기억을 어루만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