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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11. 2016

삶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것들

작가 김훈의 소설집 <강산무진>,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

중학교 시절 <칼의 노래>를 읽다가 포기했다. 중고 서점에서 구입한 <남한산성>도 어렵사리 읽었다.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많아 잘 읽히지 않았다. 관념적인 표현과 에두르는 듯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묘사들이 어려웠다. 한국 문학사에 굵은 선을 그었다는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조차 내겐 먼 곳의 맥락이었다. 조사 하나로 모든 세계관이 결정되는 세계에 발을 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소설의 첫 문장이 가진 역할이 두 번째 문장을 읽게 만드는 것이라면, 김훈은 그 한 문장으로 내게 철저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난 영원히 넘지 못할 지적 체계를 체감했다. 아무리 노력하고 다다르려 해도 넘나 볼 수 없는 곳이 문학적 허영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문장과 언어의 조탁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쉽고 잘 읽히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 믿지만, 김훈의 문장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손사래친다. 대서사의 드넓은 대지의 황량함에 내가 발 붙일 공간이 없다.

김훈 작가의 소설집 <강산무진>

내가 김훈의 책을 다시 사게 된 이유는 '임권택' 감독의 <화장> 덕분이다. 내가 김훈을 다시 찾게 된 연유가 문학이 아닌 영화라는 게 우습다. 또한 그 매개가 <명량>이 아닌 <화장>이라는 것 또한 아리송한 일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사 들고 나와 소설집 <강산무진> 중 한 편인 <화장>을 단숨에 읽었다. 김훈의 작품에 처음 재미를 붙였달까.


화장품 대기업 중역인 오상무는 헌신적이고 충실한 간병인이자 남편이었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아내는 독한 약물에 의존해 삶의 종료시키는 중이다. 남자는 메마른 아내의 몸을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았다. 몸 상태가 괜찮아지면 근처 별장에 가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비아그라를 먹고 병든 아내를 안기도 했다. 전립선 비대증에 시달리는 그는 회사의 젊은 사원 추은주에 빠져있다. 아내와 잠자리를 하면서도 그녀를 떠올린다. 여전히 남편에게 여자이길 바라는 아내는 여간 힘을 쓰지만, 그가 모든 신경을 쏟는 부분은 상상 속의 추은주와 함께하는 욕구뿐이다.


아내와 젊은 여자, 그 사이에 놓인 한 중년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 속에 꿈틀거리는 내면의 소용돌이가 지극히 문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공기를 잊지 않는다. 영화가 좋았느냐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그보다 주제와 표현양식이 곡진해 디테일을 따라가다 보면 느껴지는 바가 크다.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인생은 늙은 남자가 걷는 황량한 거리의 네온사인처럼 부박하게만 보인다. 회사의 사무실 안에 느껴지는 허위의 공기가 문장마다 묻어 있다. 아내의 병, 젊은 여성의 침입, 죽음이 다다르는 중년의 공기들이 별다른 스토리텔링 없이도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화장 REVIVRE, 2014

죽은 아내의 화장과 젊은 여자의 화장을 대위시키며 삶의 양면성을 풀어 넣는 방식 또한 신선하다. 병든 남자는 아내는 현실에 거부감을 느끼고, 젊은 여직원 추은주는 다가설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는 아무런 일탈도 할 수 없는 기성이기에 모든 생각 앞에 무능하다. 책임감이라는 인간적인 덕목과 남자라는 남근을 가진 동물의 딜레마가 노골적인 단어들로 펼쳐진다. 죽음과 욕망 앞에서도 돈과 가족들의 치기와 일의 속된 측면들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 책을 읽는 나마저도 지쳐버린다. 매주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샐러리맨의 하루처럼 모든 사건들 앞에서 시간은 후드득 떨어져 나간다. 납골당에 아내를 맡기고 오는 차 안에서 오상무는 추은주의 사퇴 소식을 듣는다. 그는 눈을 한 번 감아볼 뿐 이내 내색조차 못한 옅은 숨을 내쉴 뿐이다.
<강산무진>의 이야기들은 그 나이 때(김훈의 50대)에 다다르지 않으면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벽이 있다. 표제작 <강산무진>은 <화장>과 함께 죽음에 관한 노쇠한 자들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강산무진의 주인공은 대기업 중역 출신의 간암 환자다. 그는 재산을 처분하고, 가족들에 자신의 병을 알리며 동시에 회사를 퇴직한다. 치료할 요양원을 알아보고, 삶의 흔적들을 처분하는 과정들이 무미건조한 문자에 담겨 있다. 그러던 중 남자는 우연히 이촌역 앞 국립박물관에서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보며 감회에 젖는다. 강산의 고색 청연 한 대자연 속에서 모든 것들은 무력하다. 이내 끙끙거리며 소멸해가는 자신이 우스워진 그는 하나의 점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길 희망한다. 이 우주에 없음으로 수렴되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세계의 소멸도 인생의 마감도 그저 1초 1초 흐르는 시간이 쌓여 만드는 현실의 깨우침이다.

화장 REVIVRE, 2014

이 한숨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엔 속된 것들을 놓치지 않는 김훈의 묘사 덕분이다. 대기업 중역, 뱃사람, 복서, 형사, 등대지기에 스님까지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 대기업 중역도 한창 일하는 사람과 퇴직을 앞두고 병에 걸린 사람이 있고, 식품회사와 전자회사까지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기자 출신의 김훈이 가진 장점을 적극 활용해서 해당 직업군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자리한 느낌이다. 한 직업을 오래가진 자의 태만과 무료함이 잘 살아있고, 배경을 작품의 핵심으로 가져다 놓는 그 고된 생계의 고됨이 세상을 둘러보는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세밀한 묘사에도 섣불리 무언가 단언치 않는 자의 조용한 시선에 믿음이 간다. 앞서 얘기한 대로 <강산무진>의 이야기들엔 돈을 벌고, 지불하고, 처분하고, 치르는 것이 주된 이야기의 소재다. 돈이 작품의 핵심에서 비껴가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 의식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과거의 연인 앞에서도 수납금을 채워야 하는 택시기사의 속 사정이 전해지고, 자신의 죽음을 통보받은 시한부의 중년도 자신의 유산을 어떤 방식으로 처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떨쳐내지 못한다. 내 생이 끝이 나고, 오늘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해도 숭고한 죽음을 맞으려는 남자들은 부박한 현실 앞에 할 말을 잃는다. 누구나 적정한 위엄과 사랑하는 이들의 추도 속에서 죽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돈을 벌다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진술한다. 이 현실에 산적한 문제들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 여간 마음이 쓰인다. 죽음이 지천에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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