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뱉고, 주억거리고

대화에 대하여, 시어도어 젤딘 저

by 박민진

난 어릴 적부터 호들갑을 질색했다. 모든 걸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좋았다. 매사에 덤덤한 게 왠지 더 멋스럽게 보였다. 같은 맥락으로 속상한 일을 누군가에게 터놓는 걸 못한다. 얼굴엔 그늘이 지고, 말투에 다 드러나도 별거 아닌 것처럼 위악적인 말을 뱉는다. 다 같이 모인 술자리에서 괜히 잘 놀다가도, 조금만 취하면 냉소 반 염세 반으로 일관한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친구는 그런 모습에 익숙한 듯 히죽거린다. 고마운 일이다.


재작년 이맘때쯤 속상한 일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지만, 그 당시만큼 아프진 않다. 지금 떠올리면 슬며시 웃을 일처럼 느껴진다. 당시엔 집에 혼자 있는 게 두려워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귀가했다. 책을 읽으려 해도 단어 하나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입을 꾹 닫고 혼자 견뎠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드물다. 오래된 친구도, 가족에게도 속내를 비치지 못한다. 언제나 알아서 잘하고 싶고, 누구 도움 없이 그럭저럭하고 싶어서다. 강한 척 떨던 허세가 어느새 성격처럼 굳어졌다.

그날 역시 혼자 속을 끓이고 있었다. 식당 의자에 앉아 잘 넘어가지 않는 햄버거를 씹으며 백색 소음으로 피신했다. 낯익은 녀석이 햄버거 봉투를 들고 옆에 앉았다. 이 거구의 친구는 그간 몇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외국 친구였다. 잘되지도 않는 영어를 하기엔 내 머리는 너무 복잡했다. 햄버거를 목구멍에 쑤셔 넣고 얼른 자리를 피해야지 싶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잠시 대화를 이어갔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온갖 손짓을 하며 그간 못했던 얘기를 하고 있더라.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지 서른 넘어 처음 알았다. 이 친구도 뭔가 심각한 걸 느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알아듣기는 한 건가 싶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속이 텅 비어버릴 만큼 쏟아냈다. 녀석의 햄버거는 점차 차갑게 식어갔다. 딱 한 입 베어 먹고는 내 얘기를 열중해서 듣느라 햄버거를 외면했다. 배고파서 치즈버거를 두 개나 사고, 먹음직스러운 머핀까지 앞에 두고서 만사 제쳐두고 내 얘기를 들어준 녀석이 고마웠다. 이후 만났을 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다. 이 망할 영어는 왜 이렇게 안 느는지.

난 속으로 앓던 생각을 잘 알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털어놨다. 보름가량 삭이던 마음이 유치한 언어로 표출됐다. 녀석이 두드려주는 손짓에 울컥했다. 순간 서울 시내 무수한 정신과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상처 받은 이들이 정신과를 찾아 생판 모르는 의사라는 작자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려움을 직접 경험케 하는 거다. 파블로프 개처럼 환한 불빛에 침을 흘리는 조건 삽입 원리와 같다. 두려움에 지속해서 노출돼 상처에 익숙해지면 동요를 멈출 수 있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완전한 타인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야기를 하는 내 심보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치는 간신과 다를 바 없다. 무책임하게 떠넘기고 자리를 뜨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녀석은 예기치 못한 환대로 날 대했다. 얘기를 들어주고 은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시간을 보태어 나아졌다.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로, 글을 쓴다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다독인다. 내 글을 읽을지 모를 타인을 상상하며 끄적인다. 말끔하게 상처가 아물진 않지만, 연고를 바른 듯 점차 아물어간다. 이건 호혜가 아닌 끄덕임이 준 뜨끈함이다.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데 나름 자신을 가지고 살았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회의실에 들어서면 말문이 막힌다. 대화로 풀자고 모여 향긋한 커피를 앞에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인다. 일로 하는 대화가 나긋나긋할 리 없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니 마땅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 시어도어 젤딘은 독창적인 역사 연구와 인간을 향한 따뜻한 관심으로 유럽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학자다. 대화는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지 학술 용어 없이 예시를 통해 쉽게 그 방향을 가리킨다. 다 알겠고 수긍하면서도 어쩐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대화라는 게 이렇게 답이 정해져 있다면, 생각처럼 풀려간다면 내 일상이 이리 부대낄 리 없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를 앞에 두고 동요의 기미를 살피며 아슬아슬 대화하는 긴장감도 없겠지. 시어도어 젤딘의 <대화에 대하여>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과거 술자리를 떠올리게 했다. 실패로 점철한 관계의 뒤안길이 눈에 밟힌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태도로 일관해 놓쳐버린 이가 어디 한둘인가. 내 마음 하나 가꾸기 급급해 내 앞에서 어두운 표정을 한 그의 신호를 무시해버렸던 오만한 시간. 눈치가 없어 그가 보내는 말 없는 요청에 무딘 소리만 지껄이는 못난 입. 잘해가고 싶지만, 다시금 꼬꾸라질 실패의 연대기다. 늘 이상적 대화를 꿈꾸지만, 현실은 늘 급급하고 버겁다. 박사님 죄송해요.


내가 대화에 점점 더 무딘 사람이 되는 건 상대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점차 작아지기 때문이다. 풀어 말하면 호기심이 적어지니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진심이 잘 섞이지 않는다. 세상은 살면 살수록 의문투성이인데 타인을 향한 열정은 사그라든다. 그러니 점차 생각이 속에서만 빙빙 도는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대화 욕구가 점차 사라지니 관계에 대한 열기도 예전만 못하다. 그럴수록 말이 잘 통하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은 더 커진다. 드물고 찾기도 어려워 우연히라도 만나면 바지 끄덩이라도 잡고 호감을 표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십중팔구 게으른 마음은 술잔을 내려놓고 쓸쓸한 귀갓길을 종용한다. 반대로 내가 좋은 대화 상대이고자 하는 의욕은 여전하다. 잘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화답하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다. 내가 받았던 글쓰기 수업엔 상대의 어떤 말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화답하는 작가님이 계셨다. 그분의 격려와 제스처에 처음 글을 쓰고 자신에 대해 말하던 이들이 고무되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다. 사실 누구라도 그의 호응이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칭찬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막상 그 환한 미소 앞에선 흐뭇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사람이 다 그런 건가 보다. 들어줘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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