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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Dec 11. 2019

맺음말

에필로그

 이 책을 다 읽으신 분들이라면 모두 아시겠지만, 저는 극장과 카페, 서점에 애착을 가져요. 하지만 그 외에도 마음을 준 공간들이 더 있어요. 요즘엔 점심시간에 들르는 헬스장이 그래요.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네 번 이상 규칙적으로 들르죠. 제가 꾸준히 하는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예요. 마치 글을 쓰고 소설을 읽듯 같은 시간에 체육관에 발을 디뎌요. 편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묶으면 삶이 잠시나마 단단해진 것처럼 느껴져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준비해온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풀어요. 주위엔 저마다 생각에 잠겨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눈을 흘깃거리며 그들을 훔쳐봐요. 표정은 누구라도 죽일 듯이 심각하지만, 그들에게도 지금만큼은 평온이 찾아온다는 걸 잘 알아요. 그리 넓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작은 헬스장이지만 각자 위치에서 힘을 쏟는 광경은 정겹게 느껴지죠. 온전히 개인이 되기 어려운 일상이잖아요. 현대인의 삶이라는 게 늘 부대끼고 서로에 생채기를 내죠. 그럴 때 전 도시에 혐오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체육관은 보기 드문 사유와 사색의 공간이에요. 맑은 공기와 개울, 드넓은 대지는 아니지만, 바벨 하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요. 오로지 통증만 생각하며 정해진 세트 수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가요. 의심의 여지없이 온전한 내 1인분을 보장받는 시간인 거죠. 각자의 위치에 선 우린 서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지만, 적정한 거리에서 근면하게 움직여요. 누군가의 아버지, 어느 사무실 김 대리, 저 옆 식당 사장님. 전 이렇게 느슨한 연대로 묶인 공동체에 애정을 가져요. 이런 마음을 이 책에 녹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전 눈을 뜬 동안 스마트폰을 두드려요.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 둥지를 틀고, 카톡 메시지에 아침잠을 깨는 식이죠. 멜론이 만들어내는 음악으로 하루의 기분을 판가름해요. 이제는 희미해진 과거가 그리울 때도 회상을 하기보다는 아이클라우드에 새겨진 흔적을 찾는 데 더 익숙해요. 전 인터넷과 멀어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껴요. 오직 샤워하러 들어가는 순간을 제외하곤 늘 연결된 셈이죠. 이런 삶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결국 이렇게 살고 있어요. 제게 아날로그는 끊긴 상태예요. 이제 아날로그적인 삶이란 의식하지 않으면 취하기 어려운 먼 이야기가 됐어요. 그래서인지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 잠시 떨어지고 싶을 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아날로그 물체를 찾는 것 같아요. 가령 몰스킨과 연필, 페이퍼백과 레코드판은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어쩐지 세상과 동떨어진 단독자의 시간을 선사하죠.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시간을 얻는 기분이랄까요. 터치와 반응으로 이루어진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사색을 선물하는 오프라인이죠. 일상의 속도전에 지친 분들에게 멈춰 설 여유를 가져다줘요. 최근 많은 사람이 저와 비슷한 이유로 아날로그를 찾으시는 것 같아요. 덕지덕지 붙은 연계를 떼어내고 스스로 고립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제 글 역시 분리된다는 것이 주는 기쁨을 자주 언급해요. 저는 이 책을 통해 효율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잊힌 것들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어요.  


 전 괴테의 말처럼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파우스트 중)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종일 찌들어 퇴근하면 머릿속이 복잡하죠. 지금 잘살고 있는지, 오늘 느낀 감정이 뭔지 헷갈려요. 그런 찜찜한 마음은 동료들과 술 한잔을 걸친다고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숙취는 미역국에 풀려도 어느새 음침한 기분이 다시 찾아와요. 고민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항상 불안에 시달려요. 퇴근하고 늦은 밤 잠들기 전에 적은 글들은 그래서 대체로 기운이 없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우렁찬 목소리가 되기보다는 나지막이 여러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실 수 있었으면 했어요. 


 도시는 수많은 고독이 공존합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온 이들은 고독을 마치 삶의 조건처럼 여겨요. 전 도시인에게 영화와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고 믿습니다. 예술은 도시인이 관계에 지칠 때 숨을 돌릴만한 시간을 선사해요. 그래서 전 문화생활을 무척 중요시합니다. 사회의 부속품이 아니라 각자의 취향을 드러내고 일상을 벗어나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제격이죠. 결국 이 책은 도시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는 '혼자'에 관해 적은 글입니다. 제법 숨이 가빠도 나만의 리듬을 지키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1인분의 몫을 드러내는 글들이죠. 대단한 걸작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마음을 붙잡는 바가 있으셨길 바랍니다. 지극히 사변적인 제 글에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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