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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23. 2016

현대미술과 표절의 개념

도서 <발칙한 현대미술사>, 영화 <대부>, 조영남과 신경숙의 사건까지

신경숙의 표절 사건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올해 예술계라고 통칭되는 곳에는 두 가지 사건이 화두가 되었다. 첫 번째로는 신경숙의 표절논란이고, 두 번째는 조영남의 대작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예술 문화계의 절대 권력이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벌인 짓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이 두 사건이 공명하는 지점은 바로 모방과 창작의 범위의 불분명한 지점이다. 신경숙의 사건이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라 논란의 여지는 없었다. 표절이 된 텍스트를 읽어봤을 때 텍스트의 의미와 표현방식, 맥락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탐미주의라는 고유의 스타일 때문인지 유독 튄다. 마치 신경숙의 소설 안에 그녀의 작품 속 몇 문장을 인용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것을 작가 자신이 모르고 넣었다는 혹은 읽고 나서 기억해 적었다고 하기에도 너무 유사해 여러모로 의심만 자아낸다. 사실 표절 여부보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문학계의 권력이라 불리는 거대 출판사의 딴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비평의 영역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니 스타작가들이 횡포를 부려도 덮고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로 말미암아 문학동네의 신형철과 같은 스타 평론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마치 영화계에서 심형래 감독의 출신 논란과 더불어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평하지 않는 지점에 대중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과 유사한 사건으로 보였다. 어떤 면으로든 긍정적인 논의로 발전되는 것 같아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보인다.


심형래와 진중권

영화 디 워, 심형래 감독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개봉했을 때 역시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디 워 개봉 당시 뜨거운 국민적 성원과는 다르게 영화평론가라 불리는 가방 끈 긴 이들이 그에 화답하지 않자 네티즌들이 작정하고 달려든 사건이었다. 결국 인터넷의 조자룡 진중권이 100분 토론에 나와 손석희 앞에서 아리스토텔리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강의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이 내게 남긴 건 과연 평론할 가치가 없는 영화라는 것도 있는가. 평론의 영역이 그들 개인이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혹은 한 마디 할 경우 피곤한 일이 벌이질 것이 뻔한 지점에 꼭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현대 예술평론가들의 입지가 약화된 이유가 지속적인 논쟁거리에 뛰어들지 않기 때문이라 믿는다. 적극성을 띈 평론의 영역이 줄어들다 보니 그들이 발언할 수 있는 매체도 사라지는 건 아닌가. 평론가가 대중들이 떠들 수 있는 화두를 제시하고 풀어가는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는 희망이 디 워 사건을 만든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보기 싫고 말하기 싫은 영화에도 평론가들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꼭 대중이 원하는 곳에 머물러 주길 바란다.


조영남 대작 사건

조영남 화투 그림

사실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조영남 대작 사건에 관한 것이다. 최근 현대미술사에 관심을 가지며 읽은 <발칙한 현대미술사>(부제 :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 저자 윌 곰퍼츠, 원제 What are You Looking At?)를 읽고 나니 더욱 이 사건이 흥미롭게 보였다. 우선 대작이라는 개념이 이제 거의 표준 공식화된 현대 미술계에서 이 사건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느냐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조금 더 살펴보면 간단하게 표절 여부로 해석되는 사건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는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에서 대중들이 미술에 대해 가지는 심정까지 연계된 일이다. 예술에 본인의 터치가 없이 누군가의 손재주로 완성된 작품을 판매하고 부를 쌓는 행태에 대한 반감이 미술에 대한 해석으로 번진 사건이다. 실제 미술계와 평론계의 의견들도 엇갈리고 있는 데다, 현대미술의 개념이란 게 대중들에게 화두가 된 첫 번째 사건이라 기념비적이라고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무지라고 표현하면 슬프다.)에 의해 이 사건이 법적인 문제로까지 촉발된 것을 ‘결국’ 이해했다. 여기엔 어쩌면 조영남을 향한 괘씸죄가 더해졌으리라. 바람둥이 이혼남에 한강 앞의 저택에서 이젤을 앞에 두고 폼을 잡는 이 늙은이에게 대중이 반감을 가진 지는 오래되었다. 거기에 조영남의 조수라는 분이 당한 부당한 처우까지 논란이 되니 이것이 대중 심판으로까지 번진다. 나 역시 처음 이 사건을 듣고 기가 막혔으나, 우연하게 접한 <발칙한 현대미술사> 덕분에 좀 더 현대미술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 저자 윌 곰퍼츠, 원제 What are You Looking At?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발칙한 현대미술사>가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을 순차적으로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무척 대중적이고 현대미술의 거대 개념을 다 담을 수 없는 지당한 이유로 이 책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조수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얘기다. 독일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년 6월 28일 ~ 1640년 5월 30일)는 고향인 안트베르펜에서 대규모의 공방을 운영했다. 그의 수많은 조수와 제자들로 매우 번창했던 이 공방은 루벤스가 밑그림을 그리면 다른 화가들이 그것을 채색하는 방식으로 수백 점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화가와 직원들을 통해 대량생산체계가 갖춰진 사업형태의 예술가들이 등장한 것은 미니멀리즘 예술 사조부터다. 이후로 쿤스, 허스트, 워홀처럼 아예 Art Factory라는 용어를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하기에 이른다. 이는 그림에 묻은 얼룩을 통한 우연성에 기초해 작품을 완성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패인팅이 가진 추상표현주의와 정반대의 지점으로 변모한 예술이다. 이런 대량생산구조 사업화는 미술시장을 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런 추상적 통일성으로 시작된 미니멀리즘은 콘셉트와 아이디어의 제공으로 미술이 가능하다는 개념적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의 예술적 본질이라 불리던 손 터치의 예술에서 관리와 감독의 예술이 된 것이다. 이는 예술의 순수성과 독자성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많은 이들이 진품 운운 않고 다양한 곳, 장소, 모방에 의해 예술에 스스로 참여하는 대중성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순수한 예술에 대한 동경

Modular-Structure Sol LeWitt

실제 우리가 믿는 예술은 빈곤한 작가가 피를 토해내며 자신의 창작력을 발휘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한 조각의 빛을 그려내는 것을 예술이라고 믿는다. 돈과 권력이 개입되고, 개인적 고독 없이 타인의 성취를 앗아가는 모습이 예술로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조영남은 자신의 이런 사실을 대중에 숨겼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대중들은 현대미술의 개념적 전환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파렴치한 조영남의 처벌에 힘을 쏟는다. 하지만 어디 쿤스, 허스트, 워홀만큼 부와 권력을 쥔 에술가가 있을까. 그의 작품을 모방하기 위해 수많은 직원들이 공장에서 뚝딱거리며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미니멀리즘 작가 댄 플래빈은 말한다. 작품 자체와 그 구현은 순간적인 쾌락에 불과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적어 서랍에 넣어둔 종이 한 장이다. 그래서 학생의 필통에도 건축물의 벽면에도 워홀의 통조림 수프 형상이 새겨지지 않았던가. 조영남의 화투 그림이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질 리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구속시킬 순 없다. 이런 반감은 미술이 돈이 많은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대중적 반감도 한몫한다. 설치 공간에 대한 예술가들의 간섭이 커지면서 미술은 이제 미술 한 점 정도는 걸 수 있을 정도의 집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러니 미술은 재벌과 권력자들의 부를 상징하는 수단이 되었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재벌이 만든 미술관의 위용에 주눅 든다. 그들이 하는 다른 세상 이야기에 대한 반감은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한 가지 더 짚을 필요가 있다. 미니멀리즘 예술가 솔 르윗은 작품의 제작과정에서 관리/감독을 하면서 자신의 기획대로 갤러리에 설치하는 기술자들을 공동 제작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예술경력에 도움을 주고, 일정 부를 공유하는 자세였다. 실제 쿤스, 허스트, 워홀 역시 자신을 감독, 제작자 여럿을 공동으로 표기함으로써 미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공을 들였다. 밥을 굶는 예술가를 향한 배려, 이것이 가진 자의 분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현대 예술에서 가장 대중적이라고 불리는 영화는 어떠한가. 이보다 더 불공평할 수 없다. 영화에서 순수한 의미의 감독이 가진 역할은 모든 분야의 스텝들을 통솔할 뿐(시나리오를 집필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지휘자에 불과하다. 제작, 기획, 미술, 의상, 각본, 배우진 등 감독이 행한 결과에 대한 간섭 역할일 뿐이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음으로 거의 모든 명성과 부(혹은 비난)를 자신이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파렴치한 것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순수예술과 다르게 영화는 상업화된 수단이고, 감독의 능력으로 그것을 종합하여 지휘하는 과정을 우러러본다. 과거 스튜디오에서 모든 과정을 통솔했던 시절에는 감독의 영향력이 지금 같지 않았다. 그 당시엔 감독 역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화로 늘 꼽히는 <대부 1편>의 경우를 살펴보자. 당시 촬영감독인 고든 윌리스는 지금까지도 이 영화는 자신의 것이라 말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기조를 본인이 형성했다는 주장이다. 마리오 푸조의 시나리오는 어떠한가 그는 이 이야기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제작 초기부터 늘 감독 교체를 염두에 뒀던 스튜디오 파라마운트 픽쳐스의 제작자가 가진 입김은 감독 이상의 것이었다. 이태리 마피아를 그대로 재현한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의 지분은 이 영화에서 어느 정도던가. 당시 프랜시스 코폴라는 이 영화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그저 감독이라는 역할을 한 초짜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위대한 감독들의 출현으로 인해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사조로 굳혀지자, 프랜시스 F 코폴라의 지위는 올라갔다. 대중예술로 늘 우리 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영화의 개념적 전환엔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하지만 미술은 지금도 우리와 너무 먼 미술관 안에 자리한 관념적인 대상이고, 미술이 멀어질수록 고상하고 돈 많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소설이 작가 스스로의 1인 예술이고, 영화가 다수의 인원들이 만드는 집단의 예술이라는 특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미술계가 가진 관행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미술도 이제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거대한 체계를 구축한 지 오래다. 미술과 멀어진 우리가 오해하는 것과 반대로 예술의 명목 하에 돈을 좇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금은 관대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회사와 조직에서 상관의 밑에서 그가 지시한 방향대로 일을 한다. 야근하고 밤을 새워도 결국 공은 빅 브라더의 몫이다. 우리 같은 스몰 브라더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악다구니의 경쟁을 하지만, 성취는 그들에게 넘어가고 없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불안함에 지하철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에서도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켜보니 땅콩을 집어던지는 파렴치한 재벌의 모습에 속이 뒤집힌다. 근데 그도 알고 보니 서울 현대미술관에 깊숙이 참여하는 자칭 예술재단의 일원이란다. 또 다른 뉴스를 보니 미술의 미자도 모를 것 같은 늙은이가 돈 없는 화가를 등 처먹어 미술가라며 저택에서 떵떵거리며 산다. 이 울분과 부조리함을 타파하는 길은 우선 댓글 한 줄의 비난이며, 이어진 여론 심판으로 그를 매장시키면 속이 시원하다. 어쩐지 모를 찝찝한 생각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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