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닥거리며 사는 녀석들

소설 <피프티 피플>

by 박민진

종종 권태가 온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선 속을 헤집는다. 지루함인지 무기력인지 단어도 고를 새 없이 어리둥절하다 당한다. 그럴 땐 매일 반복하는 일과가 볼품없어 뵌다. 마치 쳇바퀴에 놓인 햄스터처럼 힘차게 발을 구르다 영문 모를 허기에 시달린다. 어제도 퇴근길에 늘 가던 카페를 가려다 발길을 돌렸다.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쏘다녔다. 갈 데가 없는데 어디든 닿고 싶었다. 음악을 귀에 꽂고 잡념을 길에 흘리며 어슬렁거렸다. 이제 여름도 막바진지 생각보다 덥진 않았다. 감상에 젖기보다는 당혹감이 들었다. 이 나이에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는 미욱한 감정에 시달리다니. 사춘기도 아니고 별스러운 기분에 난데없는 주먹세례를 당하다니. 세상 다 아는 척 건방을 떨며 술자리에서 침을 튀겼는데, 이게 뭔 낭팬가.


내가 사는 삶, 더 자세히는 내가 두드리는 문장에 온갖 의미를 부여한다.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되는 게 가장 두렵다. 그래서 차곡차곡 연탄을 쌓듯 독서량을 늘리고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글은 연금보험처럼 실체가 없더라. 십 년을 넘게 부어도 만기는 멀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번뜩이는 사고는커녕 동어반복으로 매몰한다. 뭔가를 바라고 쓴 게 아닌데도 괜스레 서글프다. 가뜩이나 시간에 쪼들리는데 틈만 나면 노트북을 펴니 인간관계는 날로 좁아진다. 뭔가 그럴싸한 걸 남기고 싶지만, 백지를 채운 문장이 초라하다. 좀 다듬어 보지만 백스페이스가 나한테 닥치라 한다. 타타타타타. 온통 콩고물에만 눈이 돌아간다. 애당초 승산 없는 인정 투쟁임을 알면서도 요행을 쫓는다.


환절기 감기처럼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 어두운 감정을 적을 차례다. 반박할 여지도 없이 궁지로 모는 이 느낌을 캐치해서 쓴다. 나를 떠나간 그 보란 듯이 미려한 어휘를 잔뜩 칠한다. 노트북을 붙잡고 한참을 카페에 있었더니 에어컨 바람에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근처 버거킹에 찾아 들어가서 대충 눈에 보이는 세트를 시키고 책을 꺼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중간까지 겨우 읽었는데 통 집중이 안 된다. 주인공이 50명이라 정신이 산란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녀석과 마주해야 한다. 안 그래도 사람에 시달리다 퇴근했는데 이러기냐. 그래도 달리 할 게 없어 꾸역꾸역 읽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계속 책장이 넘어간다. 한 사람 두 사람 안면을 트니 다 괜찮은 녀석들이더라.


50명을 다 통과하고 나서 소감을 적는다. <피프티 피플>의 미덕은 삶과 밀착한다는 점이다. 다들 별스러운 고민을 하며 바삐 사는 걸 듣고 있으니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이런저런 말을 보탤 수 있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당신의 서글픈 사연을 나 역시 이해한다고. 이렇다 할 서사랄 게 없고 뚜렷한 기승전결도 찾기 어렵다. 위기나 반전과 같은 극적 요소도 멀리한다. 현실을 최소한으로 극화하는 느낌이 들어 자꾸 내 주위 누군가의 일과 비교하게 된다. 사회문제를 가감 없이 소재로 끌어들이고, 한 번쯤 뉴스에서 들어봤을 법한 사건을 잘게 썰어내며 서울의 혹독한 삶을 상기한다. 꼬인 인물이 없어 다소 계몽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나 그래서 속이 편한 맛이 있다. 난 이 짧은 토막들을 몸으로 살며 책장을 넘겼다.


정세랑은 제각각 다른 인물들을 멀찍이서 살핀다. 낯익은 일상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감각을 서술하고자 솜씨를 발휘한다. 정세랑이 구축한 리얼리티는 내 보잘것없는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이 느끼는 고유한 감각이다. 난 50명의 주인공이 같은 시공간에서 자아내는 각기 다른 속내를 실감했다. 그런 다름이 모여 적정 거리를 둔 채 복닥거리며 산다는 게 어쩐지 감동적이다. <피프티 피플>엔 내 안위만 살피느라, 돌아볼 생각도 못 했던 사무실 옆자리에 앉은 김대리의 삶을 들춘다. 별거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도 못지않은 우주가 있음에 감복한다. 모든 게 허구임에도 오래 그들을 떠올리며 안부를 물었다.


소설에서 사건이 인과 사슬에 놓이지 않으면 리듬이 듬성듬성하기 쉽다. 선형적이지 않은 걸 우린 불편해하니까. 마치 영웅 서사가 악당 출현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피프티 피플>엔 정의를 회복하고 불의를 무너뜨리는 익숙한 필연이 없다. 오로지 우연에 의지한 플롯으로 구성된다. 소설은 핍진성을 사명처럼 받들지만, 우리 생은 무턱대고 찾아온 우연에 휘둘리며 변모한다. 문득 떠올리는 사소한 감정이 그날 하루를 잡아먹는다. 그런데도 삶은 비슷한 모양새로 반복되고, 우리 자신 답습하며 살고 있다는 건 인간이 늘 제 궤도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날 뒤흔드는 변수를 상수를 환원하고, 다시 출근길 만원 버스에 오르며 지도 앱에 목적지를 지정한다. 하루하루 뭐가 바뀌는지도 모른 채 영문 모를 피로에 시달리면서 나는 내가 받아 든 삶을 찬미한다. 그래서 소설은 내가 흔들릴 때마다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책장에 꽂혀있다. 내 앙상한 속내를 알아채곤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시간을 잠시 엿보게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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