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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Dec 02. 2016

너희가 힙합을 좀 아느냐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Straight Outta Compton

채널 Mnet의 ‘쇼 미 더 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시리즈를 좋아한다. 악마의 편집과 난데없는 아이돌 범람으로 계속 욕을 하면서도 본다. 이게 아침드라마 보는 재미라고 추측할 뿐이다. 유사 프로그램인 <힙합의 민족> 같은 프로그램 역시 빈정대면서도 찾아보느라 정신없다. 아마도 자극적인 랩을 듣는 재미가 있어서일까. 요즘처럼 랩 음악이 주목받는 시절이 없었고, 중학교 시절 좋아했던 '가리온'과 '버벌진트'가 마치 도인처럼 심사위원으로 나와 거만을 떠는 것도 재밌다. 디아블로 플로, 네이버 검색어 1위 집착 버벅 진태형 무지하게 찌질 했는데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평소 주목받지 못하던 언더 래퍼들의 약진을 보며 감탄하고, 인기 많은 아이돌을 욕하며 언더가 최고라고 허세 부려도 귀엽다. 난 그저 랩 실력보다 1차원적 레드불 같은 랩에 환호한다. 욕이나 퍼포먼스 없이 음원 순위에 오르기 힘드니 방송사나 참가자나 각성을 멈출 줄 모른다. 미친놈들 잘 한다 그래. 그렇지만 최근엔 너무 유치해져서 낯이 뜨겁다. 대한민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아메바컬처, 이센스, 스윙스의 컨트롤 비트 디스 대전 이후 유행처럼 번진 디스곡들 역시 물리긴 마찬가지. 오디션 참가자들을 싸움 붙여 예고편을 통해 낚시를 하는 게 영락없이 망할 꼴이다. 은유와 창의적 묘사, 라임의 신선함을 기대하기엔 두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수준은 떨어진다. 그러니 편집으로 기적을 기도하는 PD의 맘도 이해는 간다.


나처럼 방송국의 횡포와 약 빨 떨어진 MC들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추천한다. 래퍼들의 조상님 격인 N.W.A의 창시부터 종말을 볼 수 있고, LA 컴턴에서 갱스터 랩이 생겨나던 1980년대 힙합 신에 대한 레전드 스토리까지 학습할 수 있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 2015

마약이 창궐하고 범죄가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당시 아이스 큐브(Ice Cube)는 랩 작사에 재능이 있는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닥터 드레(Dr. Dre)는 클럽 이브스 애프터 다크에서 음악을 트는 DJ였다. 둘은 원래 자주 어울리는 사이였다. 한편 이지-E(Eazy-E)는 어린 마약상으로, 클럽 이브스 에프터 다크의 단골이었다. N.W.A의 결성을 주도한 건 이지-E였다. 랩 그룹 매니지먼트로 대박을 내 마약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가 끌어들인 건 바로 음악을 만드는 재능은 있으나 자본이 부족한 닥터 드레였다. 여기에 작사를 할 줄 아는 래퍼인 아이스 큐브와 MC 렌(MC Ren), 그리고 닥터 드레와 함께 클럽에서 음악을 틀던 DJ 옐라(DJ Yella)가 가세해 결성된 그룹이 바로 N.W.A였다. 평소 미국 랩 음악의 가사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힙합을 멀리했던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수준 높은 자막해설에 안심해도 좋다. 가사는 쫄깃하고, 비트는 스피커를 찢는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미국 사회 정황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컴턴이란 지명은 당시 LA의 대표적인 게토지역으로 유명한 동네를 뜻한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대부분이고, 경찰들은 그들을 들쑤셨다. 마약거래가 잦으니 흑인만 보면 몽둥이를 들었고, 집들은 굴삭기로 쓸어버렸다. 1980년대 극우에 가까운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신자유주의라는 깃발을 꽂고 부국강병을 위해 소리쳤지만, 정작 가장 가난한 흑인들에겐 피폐한 현실을 부추기는 꼴이었다. 컴턴을 지탱하던 자동차 산업은 붕괴되었고, 세금은 치솟았다. 흑인 노동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부유한 백인동네에서 절도사건을 일으켰다. 정부는 국방비에 모든 돈을 쏟아붓고, 이에 결탁한 기업들은 자신들 배만 불렸다. 아무도 흑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 그 시절 N.W.A가 결성된 것이다. 이런 설정은 또 다른 걸작 힙합 영화인 에미넴 주연의 <8 마일, 8 Mile 2002>의 디트로이트 90년대 초반 경제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고된 여건에서 가장 강력한 힙합 영웅이 탄생한다고, 겉만 번지르르한 허세 가득한 한국 힙합 뮤지션들을 보면 조금 한숨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건 마치 한국에 할렘이 없으니 홍대입구역에서 아무리 거친 세상을 논한 들 힙합스러울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와 같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 2015

이름만 알던 전설들의 이야기를 통해 '에미넴'과 '카니에' 형들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아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근본을 모르는 힙합씬의 태동이 어느 시점부터 시작됐는지 사회와 문화적 영역에서부터 접할 수 있는 영화다. N.W.A의 한 멤버가 에이즈로 죽고, 총질을 해대며 경찰을 까는 에피소드는 모두 실화에 기반한 장면이다. 흑인 폭동을 주도하고, 사회적 약자인 흑인의 처우개선을 위해 힘썼다고 그들은 스스로 힘줘 말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돈맛을 본 멤버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상업적인 랩으로 변질된다. 환락과 부를 쫓던 팀원들은 분열하고, 사업 논리에 따라 이지. E는 친구들을 따돌려 돈을 독식해서 팀을 아작낸다. 아이스 큐브는 코믹영화배우가 되며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외롭게 음악 외길을 걷던 닥터 드레는 갱단과 엮여 음악시장을 혼탁하게 했다. N.W.A는 전설이 되었지만 마약과 폭력을 비롯한 사회적 문란행위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 건방진 문화가 힙합이라며 떠벌일 뿐이다. 아직까지 힙합을 향해 존재하는 ‘보호자의 조치가 필요한’ 19금 딱지를 만든 것도 난폭하고 난잡한 이 전설들의 사생활이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폭력과 섹스를 찬양하고, 마약을 밥처럼 먹는 그런 삶이 힙합인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을 자위했다. 영화는 지친 영웅담으로 미화될 수 있는 소지를 없애고 오로지 그들의 인생이 변질되고 결국엔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스토리에 탐닉한다. 래퍼들 뮤직비디오 보면 반쯤 벗은 여자들이 엉덩이를 흔들고, 돈다발을 가지고 나와 고급차 안에서 뿌려대는 꼴이 보기 싫다고 말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보지 말고 꺼져.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 2015

1980년대는 뉴욕 동부 힙합이 대중들을 사로잡던 시대다. 이때 진짜 깡패가 랩을 한다는 소문을 타고 음반계는 웨스트 힙합신을 주목한다. MBC '라디오 스타'를 즐겨보는 분들이라면, 한국 갱스터랩의 시초라고 부를 수 있는 데프콘이 당시 닥터 드레의 더 크로닉 앨범을 듣고 힙합을 시작했다는 얘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간지 나는 주인공은 이지. E도 아니고 아이스 큐브도 아닌 닥터 드레다. 외모도 가장 잘생겼고(실제로도), 사업 감각도 가장 뛰어난 프로듀서다. 그가 등장하는 첫 등장신은 감독 자체가 그를 편애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감독 F. 게리 그레이는 한국 프로듀서인 동명의 그레이와는 다르게 험악하게 생긴 흑인 감독이다. 수 십 편의 흑인 음악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경력이 있고, 아이스 큐브가 영화배우로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영화 <프라이데이>를 연출하기도 했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의 미덕은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이지. E의 아내를 영화 제작에 참여시켜 작품의 리얼리티와 힙합곡들의 수준을 높여놨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 폰으로 음악을 트니 역시 힙합곡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힙합 음악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난 10년 넘게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 처음엔 컴백홈부터 시작했고, 듀스를 지나 드렁큰 타이거, 가리온, IF, 바스코, CB MASS, 다듀, 주석, 데프콘, 버벌진트, 소울 컴퍼니까지 추억의 이름들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힙합이 발동하고 있는 요즘 이 영화 꽤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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