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글쓰기로 삶을 잠깐이나마 비껴가는 방법
매일 글을 쓸 때 겪는 고민은 품질이다. 애는 쓰는데 결과가 신통찮아 골치를 썩힌다. 대체 무슨 글을 쓰겠다고 이러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만 뭘 쓰는지도 모르는 밀고 나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우선 무턱대고 써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멈춰 세우고 생각을 더 깊이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가 펄럭인다. 어딜 가나 행동주의자와 원리주의자는 싸우게 되어있다.
오늘 쓴 글도 가만 보니 흉측해 보였다. 초고는 늘 신나게 적는데 쓰고 보면 구상과 달라져 있다. 그 영롱한 첫 느낌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이렇게까지 감정을 낱낱이 드러내서 뭘 어쩌자는 걸까. 나를 빨가벗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냥 내다 버릴까. 아니 그래도 내 배로 낳은 혈육인데 두고 봐야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려했더니 왜 자꾸 울어대는 거야. 결국 이런 식으로 회의감과 무력감을 맴돌다가 미련을 못 버리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 저녁나절부터 투여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아까워서 놓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콩코드 오류였다. 고쳐보겠다고 손을 댔지만 갈수록 병적으로 굴었다. 난 신경이 곤두서서는 구두점도 찍지 못하고 다시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허리도 아프고 목도 뻐근하니 못 해 먹겠네. 그냥 넷플릭스나 틀자.
개성이 결여된 글이 나왔다. 주말 내내 씻지도 않고 버티다가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은 몰골. 아니 못 볼 꼴. 물줄기는 요란한데 어안이 벙벙해져선 그 초라함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매번 새로운 걸 쓰려고 노력하는데, 말이 입속에서 돌고 돌다가 고정관념으로 포장돼서 나오는 기분이다. 오늘도 쓰는 도중에 뭐에 홀렸는지 애초에 쓰려던 글과 완전히 다른 게 나와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참신한 아이디어였는데, 내가 손을 대니 계절을 넘긴 이월상품처럼 시시해졌다. 이제 자정인데 언제 고치냐. 마감 시간에 몰리면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기지 쉽다. 간이라도 쌔야 누가 읽어줄까 싶어서 악수를 뒀다. 그 흔한 연애담과 직장 얘기로 분량을 채웠다.
오늘도 가까스로 원고지 15매 분량을 써냈다. 도무지 소생 불가능해 보이는 헛소리가 사천 자 가까이 들어찼다. 인간의 통념을 비꼬려던 글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내가 통념에 휘둘려서 양념 통닭을 튀겨버렸다. 얘를 살려내려고 얼마나 어르고 달래고 뽀뽀해주고 비행기까지 태워줬는데 이 모양인지. 조기교육에 매달 이백씩 썼는데 속세를 떠나 비구니가 되겠다는 딸내미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기대대로 자라지 못한 건 내 업보일까.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셔츠 소맷자락으로 콧물까지 닦아줬지만, 여전히 딱해 보였다. 너는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으니 우리 인연을 끊자.
나는 왜 가망 없는 글에 계속 집착하는 걸까. 이게 뭐라고 내 소중한 밤을 탕진하는 걸까. 왜 팔자소관대로 내버려 두지 못하고 잔소리를 보탤까. 내가 쓴 글을 딱하게 여겨 보살피면서도 끝내 미워하는 걸까. 역겹고 짜증이 나면서도 왜 포기하지 못할까. 그건 어쩌면 내 글이 그냥 나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생김새도 성격도 심지어 성별도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랑 비슷해서 모른 척할 수가 없다. 혈육이라 그런지 몸이 반응한다. 거둬 먹이고 사람 구실은 하게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시간을 붙잡고 나니 드디어 아귀가 맞기 시작했다. 이야기에 기틀이 잡히는 대목에 이르렀다. 내가 이 길을 찾으려고 개고생을 했나 싶었다. 에피파니! 식욕이 사라지면서 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타격감이 살아났다. 글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 초라도 딴 데 봤다가는 이 기분이 영영 사라질까 두려웠다. 기회를 봐서 너저분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욕망 하나하나를 다 적어냈다. 그런대로 봐줄 만한 글이 되었다. 심폐소생술로 가망 없는 환자를 살려낸 의사처럼 긴 숨을 내쉬었다.
글은 집으로 가는 길을 달리한다. 맘껏 써내면 신성한 기쁨에 보폭이 커지고, 망치면 하늘을 저주하면서 비틀거린다. 글의 품질이 하루를 보상하기도 하고, 헛살았다는 허탈감을 주기도 한다. 글을 게시하고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땐 우울감을 떨치지 못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는데 아무런 동요가 없으면 서글프다. 내가 가진 애착만큼 반응이 따라오지 않으니 무력해진다. 읽어주기를 바라지만 읽어달라고 호소할 곳이 없으니까. 내 글이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고 회자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난 타인 없는 글은 못 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가 읽고 있다는 기분 없이 매일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악하고 값싸 보이는 제품이지만 팔 궁리에만 혈안이다. 제목을 요렇게 붙이면 그럴싸하지 않나. 마무리에 멋들어진 인용문을 하나 넣으면 조회 수가 높아지겠지. 언젠가 지하철에서 내 책을 읽는 직장인을 본 적이 있다. 그 힘든 출근길에 내가 쓴 문장을 읽는다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땐 정말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글쓰기가 훨씬 더 재밌어졌다. 읽는 사람이 있구나. 의식할 눈이 진짜 있었구나. 하지만 그 재미가 길지 않았다. 그때부터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형체 없던 독자를 떠올릴 수 있게 되자 남을 위한 글이 시작됐다. 처음 자위하는 글을 쓸 땐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만, 이제 상대가 보이니 유혹하는 문장을 적어야 했다. 상대를 만족시켜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더는 속 편히 옷을 벗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제 매무새도 챙겨야 했고, 군살도 신경 써야 했다.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좋다고 얘기해주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알아버렸다. 오직 업로드만을 위해 달리는 글이 되었고, 나를 훌륭한 작가로 여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해졌다.
그렇게 독자를 의식하는 글을 쓰지만 내가 드러날까 두렵기도 하다. 내 글이 지닌 음산하고 축축한 생각을 고스란히 나로 여길까 봐 우려된다. 내 글을 읽고 날 오해하고 학을 떼면 어쩌지. 정확하게 쓰려고 그렇게 노력하지만 독자에겐 희미하고 모호했으면 싶다. 그래서 퇴고할 땐 사실관계를 흩트려놓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어사무사하게 양념을 친다. 솔직한 게 좋은 글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감추고 싶다. 읽히기를 바라지만 드러내 놓고 싶지는 않은 이상한 심리다.
단순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습관처럼 굳어진 일만 하고 산다. 출근하고 일하다가 퇴근하고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편다. 의도적으로 만남은 줄였고, 글을 놀이로써 즐기고 산다. 글을 계속 쓰니 외부의 영향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속은 더 시끄러워졌다. 스콜세지 옹 말처럼, 개인적인 게 제일 창의적이라고 믿으며 하는 짓이다. 요즘엔 누구도 몰랐으면 하는 얘기들을 겁 없이 적고 있다. 나에 대한 얘기는 쓸 만큼 다 썼으니 이제 허구를 끌어 오기도 한다. 잔고가 없어서 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라 가릴 처지가 못 된다. 속 모르는 독자 따윈 잠시 잊고 한낱 보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끄집어내고 있다. 우선 난 저지르고 생각한다. 오늘도 한 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