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Dec 17. 2016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영화감독 '사라 폴리'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Stories We Tell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팀 중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폴 골드슈미트(Paul Edward Goldschmidt)라는 선수가 있다. 처음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정말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이 무슨 피자헛 신제품 같은 게 화려한 플레이에 걸맞았다. MLB 팬이 아니라면 생소하겠지만, 리그의 수위 타자 중 한 명으로 공수주 모두 뛰어나다. 게다가 덤으로 얼굴까지 미남에 날렵한 보디라인을 지녀 MLB 대표 스타 중 한 명이다. 이 선수는 유독 LA 다저스의 류현진에게 강해 마치 배팅볼을 쳐내듯 안타를 날린다. 애리조나 D백스의 에이스이자 텍사스 주립대를 나와서 실패 한 번 없이 메이저리그의 거물급 스타가 된 선수다. 

폴 골드슈미트(Paul Edward Goldschmidt)

이렇게 이름만 들어도 묘하게 끌리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를 알기 전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난 이름만으로 느낀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끝까지 품고 가는데 익숙하다. 몇 해 전 혼자 광화문의 '스폰지하우스'(지금은 없어졌다.)를 찾아가서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전국에서 딱 한 곳 개봉하는 '사라 폴리' 감독의 신작이었다. 내가 유독 '사라 폴리'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근사한 멜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름이 주는 어감이 온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 폴리, 따듯한 감성을 품게 하는 좋은 이름이다.

사라 폴리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불법 다운로드 영화를 구하던 중 처음 만났다. <나 없는 내 인생, My Life Without Me, 2003>이란 영화였는데, 신비로운 눈빛과 차분한 말투가 관객을 귀 기울이게 만드는 배우였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캐나다 영화여서 스쳐 지나갈 법도 했지만, 특별한 이름을 가진 특별한 어감의 그녀를 보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눈 떼지 않고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후 사라 폴리의 꾸준한 팬이 되어 지금까지 그녀가 나오는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본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세계적인 감독이자 배우가 되었다. 내가 ‘사라 폴리’라는 이름의 느낌을 좋아한다고 해서 영화까지 좋아졌다는 것은 억측이지만,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그 누가 봐도 훌륭한 영화라고 보증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하게 시작돼서 그녀의 가족사를 모조리 훑고 나서야 끝이 난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서며 이름에 관한 말도 안 되는 내 믿음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사라 폴리'라는 이름은 어떤 우연의 연속으로 영겁의 세월을 거쳐 내게까지 왔는지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돈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Stories We Tell, 2013

사라 폴리는 어려서 아빠와는 별로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어왔다. 가족들은 귀여운 늦둥이 막내 동생이 귀여워 연신 신나게 그녀를 놀려댔는지 몰라도, 사라로서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기 몇 달 전 엄마와 연극을 공연했던 세 배우들 중 누가 진짜 아버지인가에 대해 농담을 듣던 그녀는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후까지 그 농담을 잊지 못한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그녀의 이런 자의식에서 시작한다. 엉뚱한 그녀의 성격답게 사라 폴리는 진짜로 친부를 찾아 나서게 되고, 영화의 중반 그녀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진부한 출생의 비밀이 스크린을 넘어선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비교적 명확하다.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허구의 세상 속에서 연기를 하던 그녀의 이름이 현실이라는 통로를 타고 내 귀로 안착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배우이자 한 명의 아내,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던 영화감독 사라 폴리는 이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관객에 제시한다. 이는 명백한 관음의 즐거움이자 스크린의 틀을 깬 역사의 엄습이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가족부터 시작한다고 했던 그 누군가의 말처럼, 모든 비밀은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피어난다는 말까지 자연스럽게 변주된다.

자신의 가족사를 모두에게 들려주기로 한 그녀의 덤덤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숨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이 두 손 두 팔 다 벌려 진실을 카메라에 품어낸다. 사랑하는 엄마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힘든 결혼을 어떻게 버텼으며 사랑의 종식을 어떤 표정으로 받아들였을지에 관해 에 관한 비밀들을 모두의 입장에서 들어보기로 했을 때, 그녀는 심정을 생각하며 참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자의식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쩌면 그것이 성숙한 예술가의 서술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아버지인 마이클은 자신의 딸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아랑곳 않고, 딸의 연출작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글쓰기 할 수 있는 기력을 얻었노라 고백한다. 인생을 뒤흔들 엄청난 충격에 반응하기보다는, 젊은 시절에도 결코 해내지 못했던 작가로서의 꿈을 이 사건이 주는 깨달음으로 비로소 실현코자 용기를 낸 것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의 추동을 보며 마이클은 뭔가 써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는 이야기(인생)가 그저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창문에서 윙윙거리는 파리를 바라보며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계속할 거라고 다짐하는 마이클의 표정이 생각나 짐짓 미소 짓게 된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고 참. 두 사람은 모두 있는 대로 털어놓고 애써 결론짓지 않는다.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Stories We Tell, 2013

최근 내 인생에서 어떤 중대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주변 사람과 가족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아직은 믿지 못하겠다. 덤덤한 목소리로 이별이 다가왔기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주말엔 가족의 결혼으로 인해 바쁜 하루를 보냈는데, 결코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일을 한 후에는 영화와 게임 그리고 스포츠에 몰두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블로그에 많은 것을 끄적대고 있는 걸 보면 정리가 필요한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난 이대로 놔두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실들이 좀 더 객관적인 이야기로 다가오기까지 놔두고 싶다. 끝과 시작을 논하기 전에 난 흘러가는 이 이야기를 지켜보고 싶다. 사라 폴리의 영화를 보며, 그녀가 우리라는 주체로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판단의 유보로 밀어 넣은 것처럼, 나 역시 지금 이 혼자가 된 상황을 자책하거나 비난하기를 멈추고 그저 가만히 있어 보는 덤덤함을 요한다고 생각했다. 다 어떤 형태를 가진 스토리가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코엔 형제의 겨울 판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