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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16. 2017

영화 속 남자들의 밀회

영화 <그녀, 2013>,  <베스트 오퍼, 2013>

영화 <그녀, her>에서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져 목소리뿐인 운영체제와 섹스(사실상 수음)를 하는 남자 테오도르가 등장한다. 이름처럼 섬세한 취향을 지닌 이 남자는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최첨단 운영체제의 공세에 몸까지 허락하고 만다. 이런 쉬운 남자 같으니. 꽤나 거북한 장면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진 않았다. 우선 섹스의 절정에서 화면을 암흑으로 처리하여 거북함을 피했고, 결정적으로 섹스 상대인 운영체제의 목소리가 스칼렛 요한슨 버전으로 세팅되었기 때문에 나의 상상력으로 고난을 극복했다. 그녀의 목소리 덕분에 목소리 뒤 희미한 육체성이 절정의 순간에 다가왔다. 우리는 그가 컴퓨터 운영체제(OS)를 구매해 처음 여성의 목소리로 '스칼렛 요한슨' 버전으로 설정하는 순간부터 목소리 이면에 육체파인 그녀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본다. 그래서 이혼한 독거남의 수음 장면이 스칼렛 요한슨과의 야릇한 하룻밤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그녀 Her, 2013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베스트 오퍼, 2013>(La migliore offerta, The Best Offer, 2013)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예술품 감정사인 버질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삶을 즐기는 골드 싱글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감정사로서 능숙하게 고가의 미술품 경매에 참여하는 장면은 그가 노년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유머러스한 말투와 여유로운 미소, 프로페셔널한 직업관은 버질이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정의한다. 그는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에서도 자신이 영민함을 잃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를 즐기고, 특유의 결벽 증세와 근엄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에게 일은 인생의 모든 것처럼 되어 버린 건 직업과 취미다. 늙어서 혼자 산다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베스트 오퍼La migliore offerta, The Best Offer, 2013

버질은 까다로운 성격으로 친구도 거의 없지만, 엄청난 재력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버질은 혼자 사는 남자들이 늘 그렇듯 자기만의 공간에 집착한다. 좀 지질한 버전의 노인네였으면 아시아 포르노 잡지나 모으고 있겠지만, 돈 많고 지적인 버질은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려진 명화를 방 한가득 수집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명화들에 둘러싸여 죽어버린 욕정을 시험하는 영화의 장면은 포스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장면에서 명화 속 여인들은 마치 현연히 살아있는 육체성이 느껴진다. 감각적인 연출 덕이겠지만, 그의 집착을 어느 정도 순응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부감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시야 아래 버질의 얼굴까지 스며드는 카메라 워킹은 영혼까지 해방되는 시간을 공유하게 한다. 죽어있던 한 폭의 그림은 어느 인간이 그 예술성을 알아봄과 동시에 현현한 육체성을 가진다. 영화 <그녀>가 운영체제가 세팅된 목소리를 통해 어느 유명 배우의 육체를 빌려왔다면, 명화 속의 그녀들은 시간이라는 겹겹이 쌓인 아우라 Aura를 통해 생명력을 얻어 한 노인의 죽어버린 육체에 숨을 불어넣는다.


내가 이 두 영화를 좋아하는 건 혼자 사는 남자들을 지켜보는 흥미 때문이다. 난 나와 다른 싱글남들이 혼자서 도통 뭘 하고 사는지 관심이 많다. 점점 혼자서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영화에서 그들을 구경하며 생각한다. 내 생각에 두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을 즐기는 양반들이다. 안정된 직업과 풍부한 예술적 소양,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수단이 분명한 싱글이다. 각자 관심을 두는 분야는 다르지만 오늘 퇴근한 후 아 뭘 하고 싶은지 그들의 사고는 명징하다. 역시나 혼자 사는 남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랑이라는 욕망 덩어리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은 그녀를 만나는 것 이외에는 없지만, 그들은 쉽게 나서지 못한다. 잃을 것이 많을 나이, 명예와 헛된 기개는 식을 줄을 모른다. 단순히 성욕을 분출하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얘기지만, 마음을 공유하고 나를 위하는 여성을 향한 그리움이 어찌 한순간의 쾌락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운영체제와 대화하고, 명화 속 여성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녀 Her, 2013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모든 갈등은 부대끼는 것에서 나온다. 특히 사랑하는 여성이 생기면 평소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관념들이 무너지고, 결국 실패에 다다랐을 때 황폐하게 남은 잔해들은 복구 불가능한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최근 혼자 사는 남자를 다룬 영화들은 외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대상을 여성이 아닌 유사한 대체물로 손쉽게 소비하는 것이다.

최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20세기 미술사를 정리하는 콘셉트로 기획된 '르누아르'부터 '데미안 허스트'까지 쉴 새 없이 관람했다. 얇은 미술사에 대한 지식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점검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전시회를 보며 느꼈던 사실은 세월의 흐름과 특정 분파에 상관없이 미술가들은 늘 에로틱한 여인의 육체를 그림 속에 포개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팝아트든 추상화든 자신의 머릿속을 빼곡하게 채워 넣는 에로틱한 여인의 육체들이 그림 속에 범람하고 있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혼자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예술적 영감에 목말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을 향한 욕망을 차마 떨치지 못해  절절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냈다.

고민 많은 철학자 니체는 늘 인간의 육체성을 경탄했다고 한다. 몸이 바로 우리 자신이고, 영혼이나 정신은 그저 육체 언어의 상형문자로 격하시켰다. 철학자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인간의 육체에 귀속된다는 결론을 짓기까지 그가 지녔던 고민들의 형체를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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