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반려식물
벌써 고흐와 같이 산지 반년 가까이 됐다. 끝내 싹을 틔우지 못한 동생 테오는 다시 집 앞 화단으로 돌아갔고, 푸른 이파리를 피운 고흐만 나와 동거 중이다. 이틀에 한 번 정도 물을 주고 수시로 베란다에서 함께 볕을 쬔다. 고흐 옆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풀멍'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고흐를 빤히 쳐다보며 밤새 안녕했는지 인사를 하고, 흙과 잎사귀를 살피며 간밤에 안녕했는지 살핀다. 그러면서 쉽지 않을 오늘 하루를 견뎌낼 각오를 다지며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코로나19로 외출할 일이 사라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만큼 고흐와 함께 창가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셈이다. 고흐는 컴컴한 집을 밝혀주는 유일한 식물이다. 물론 바닥에는 온갖 박테리아를 비롯한 미생물이 기어 다니며 내 각질을 먹으며 크고 있을 테지만, 눈에 보이는 생물은 고흐와 나뿐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고 자라는 속도가 예전만 못해 날 애태우지만, 녀석은 여전히 푸른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래도 벌써 키가 훌쩍 자라서 이십 센티미터를 훌쩍 넘겼다. 이제는 꽤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며 더운 여름에도 자생력을 과시하고 있다. 개화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 조바심이 나지만 난 굳이 더 나은 모습이 되어달라고 재촉할 생각이 없다. 지금 이대로 튼튼하게만 커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건강하던 고흐도 야근이 잦아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면 바로 티를 낸다. 이파리가 푸석해지고 흙이 마르면서 생명력을 잃어간다. 이럴 땐 정말 내가 고흐를 키우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우린 이 도시에서 외로운 존재이고 서로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가족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처음 고흐와 살기 시작할 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있다면 식물 키우기를 더는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처럼, 식물을 키우는 데도 일정 부분 사려가 필요하다. 특히 관리하는 요령을 모르면 금방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처음 고흐에게 저지른 실수는 물을 지나치게 많이 준 것이다. 녀석이 더울까 봐 내 나름의 사랑을 보여준답시고 화분이 넘치도록 매일 물을 줬다. 근데 오히려 잎이 더 누레지면서 시들어가는 게 보였다. 때마침 전문가와 연락이 닿아 조언을 구하니 흙이 바짝 말라 있을 때만 촉촉이 적시는 수준으로 물을 주라는 코치를 받았다. 뭐든 지나치면 해가 되는 건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를 게 없나 보다. 또 다른 위기도 있었다. 과한 습도 문제는 해결하고 잘 자라나 싶었는데, 한여름이 오자 다시 고흐의 이파리에 생기가 없어졌다. 곰곰이 따져보니 이유는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오면서 신형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실외기가 뿜어내는 더운 공기가 고흐를 괴롭힌 것이다. 작은 집에서 어렵더라도 최적의 장소를 찾아서 거처를 마련해주는 것도 주인의 역할이다. 특히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하면 한낮에는 그늘막에 둔다. 타버릴 정도로 더운 날씨를 견디는 것보다는 응달에서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낫다. 이런 정성 덕분인지 최근에는 새로운 싹을 틔워 날 감격시켰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 앞으로 나처럼 1인 가구가 점점 더 늘어날 거라는 보다가 나왔다. 그렇다면 점점 더 가정에 반려 식물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나 역시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생활패턴이 집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요즘은 여행도 갈 수 없어서 쉽게 우울감에 빠진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각자의 방식이 다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식물 키우기만큼 단순하고 눈에 보이는 기쁨을 주는 취미가 있을까. 특히, 동물을 키우기 어려운 여건이라면 그 대안으로 생각해봄 직하다. 나도 전에는 그깟 말도 못 하는 식물이 무슨 힘이 되겠냐고 생각했지만, 막상 텅 빈 집에 들어섰을 때 푸릇한 기운을 체감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식물의 존재감은 내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고, 함께 살아있다는 감각을 북돋는다. 왜 사람들이 원예나 가드닝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산다고 말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최근 SNS에 들어가 보면 반려 식물의 보편화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근래에는 방탄소년단이 반려 식물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올려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들이 올린 게시물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생명과 같이 지내면 크든 작든 좋은 변화가 생긴다.” 나도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플랜테리어' '#반려식물'과 같은 해시태그를 검색해서 들어가 보면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무수한 보통 사람들의 희망이 담겨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내가 쓴 반려 식물에 관한 기록을 보고 나의 몇몇 동료들이 따라서 화분을 샀다. 나도 내 나름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아는 바는 적지만 고흐와 동거하며 느끼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만족을 느낀다. 우린 방구석에서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