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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명진 Aug 23. 2018

#11. 신체가치를 평가하는 키퍼슨보험

[한국보험신문 칼럼] 다다익선과 함께 하는 인슈포트라이트


# 해당글은 한국보험신문에도 게재되고 있는 오명진 작가의 '인슈포트라이트' 칼럼입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고 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은 인종과 신분, 사회적 지위 등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나의 몸을 소중히 여겨 별다른 사고와 질병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그러나 변수도 많고 환경변화도 급격한 현대사회에서 상해와 질병을 완전히 회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신체의 손해를 경제적으로 보상받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병원비를 위해 의료비를, 중증질병에 대한 고액의 치료비를 위해 진단비를, 그리고 유고시 남겨진 가족을 위해서는 보장자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망보험을 가입한다.

상해나 질병으로 인한 치료비와 사망보험금액은 어떻게 정할까? 실손보험은 보험사가 정해 놓은 한도 내에서 실제 지출한 금액을 보상받고, 사망보험과 같은 정액담보의 경우에는 가입금액을 높게 정할 수 있지만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보험사의 인수 정책에 의해 무작정 고액으로 가입할 수는 없다.

가끔씩 해외뉴스를 통해 비행기 추락사고로 특정인이 사망함에 따른 사망보험금액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책정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이 경우 사망 당사자가 가입한 사망보험금 외에 항공사의 배상책임으로 인한 보험금액이 더욱 크게 책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일실이익(逸失利益)’에 의한 손해액 산출이라 일컫는다. 즉, 비행기 사고로 생명을 잃은 경우 사고가 없었다면 사망자가 남은 생존기간동안 어느 정도의 수입을 올렸을 것인가를 산정하여 손해액을 배상하는 것이다. 만약, 사망자가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수백억에 달하는 보험금이 책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의 신체와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것인데 신체의 가치를 금액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적어도 보험만큼은 사람마다의 몸값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처럼 사람 신체의 일부를 평가하고 보험금액을 책정하여 담보하는 보험을 ‘키퍼슨(Key Person)보험’이라 한다. 주요 인사가 불의의 사고시 본인과 그에게 투자한 소속사 등의 기관이 입는 재정적 손실까지 보상하는 보험으로, 사망이나 후유장해에 따른 손실충당 자금으로 확보하는 컨셉트의 상품이다. 가수 겸 탤런트 이혜영이 가입한 12억 다리보험, 가수 비가 가입한 100억 성대보험, 세계적인 축구선수 호날두가 가입한 1,860억 다리보험, 가수 제니퍼 로페즈가 가입한 300억 엉덩이보험 등이 모두 키퍼슨보험에 해당하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연예인, 프로스포츠 선수 등의 유명인이 가입하는 보험이라 본인의 몸값을 과시하는 마케팅 수단이 아니냐는 비난도 많다. 하지만, 엄연히 일실이익에 의해 특정 신체부위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 대한 손해를 금액으로 평가한 것이며 그에 따른 보험료 또한 일반인은 가입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비싼 것도 사실이다.

키퍼슨보험이 최근 유명인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이색보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내 최초의 키퍼슨보험은 85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 1933년 5월 5일자 조선중앙일보 2면에 ‘두 다리에 보험금 2만원 걸은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춤추는 직업을 갖고 있던 ‘이갑녕’이라는 사람이 대판해상화재보험회사와 계약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국내는 물론 동양 최초의 키퍼슨보험이다.

국내 금융당국이 키퍼슨보험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만은 않다. 고액의 보험금으로 인한 도덕적해이와 사행성 조장의 이유로 보험사에 실적자료 등을 요청하고 집중 점검하는 형태로 간접적인 제재를 가하곤 했다. 본인 가계 재정에 맞춰 일상에서의 상해와 질병을 보호받기 위한 안전장치로 보험을 가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 유명인사가 본인의 신체 일부의 객관적인 가치를 평가받고 보호받는 것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에 따른 합리적인 보험료 산출과 철저한 언더라이팅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환경이 변함에 따라 키퍼슨보험과 같은 이색보험은 계속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같은 예술부문에 종사하는 직업의 경우 신체만이 아닌 정신적인 피해에 가치를 매겨 보장하는 보험의 출현도 예상되며, 정신적 피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슈도 생겨날 것이다.


신체와 재산의 실물 피해액을 보장하는 보험에서, 가치를 평가하고 그 가치가 훼손되는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으로 바뀌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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