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험신문 칼럼] 다다익선과 함께 하는 인슈포트라이트
# 해당글은 한국보험신문에도 게재되고 있는 오명진 작가의 '인슈포트라이트' 칼럼입니다.
얼마전 지인의 아내가 “모 은행에서 괜찮은 저축상품이 나왔다”며 안내장을 하나 받아와 “저금리 시기에 적합한 저축상품같다”고 내게 공유해 주셨다. 그런데 해당 금융상품은 모 은행에서 판매중인 S생명의 유니버설 종신보험 상품이었다. 확정금리(예정이율을 부리이율로 바꿔 표현)와 비과세 혜택, 중도인출 등의 특징을 강조했다. 보험을 알지 못하는 일반 소비자가 보기에는 누가 봐도 저축성의 은행 금융상품이었다. 하지만 명백하게 상품명에 ‘보험’이 붙어 있는 생보사 종신보험이었다.
최근 종신보험 판매 컨셉트라고 할 수 있는 ‘연금전환 기능’을 활용한 소비자의 본전심리 자극까지는 판매활성화를 위한 마케팅 컨셉트의 일환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사례와 같이 ‘종신보험’의 정체성은 저 멀리 던져두고 마치 은행에서 판매중인 저축상품인 듯 저축상품 아닌 콘셉트로 판매중인 이 상품의 판매자(방카채널), 이를 묵인하는 보험사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일까? 보험인으로서 소비자 앞에 저축의 옷을 입고 서는 종신보험이 안쓰럽다.
종신보험은 죄가 없다. 급격히 줄어든 ‘사망 보장자산’ 수요와 이를 극복하려는 생명보험사 그리고 설계사의 화법이 변했을 뿐이다. 다만, 저축의 화려한 옷에 가려진 종신보험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지금, 피해는 오로지 소비자 몫이라 우려스럽다.
종신보험은 전형적인 ‘Life Insurance’ 상품이다. 손생보사가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제3보험과 손보사만 판매할 수 있는 손해보험 즉, ‘Non-Life Insurance’와 달리 생보사만이 판매할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이다. 종신보험은 주계약의 보험기간이 종신토록 보장되는 사망보험을 말한다. 유니버설, 연금전환되는, 달러로 받는, 무해지·저해지, 변액 등 굉장히 많은 형태의 상품이 운영되고 있지만 종신의 기본 정의는 ‘사망보장’이다. 이것이 본래 모습이다.
국내 생보사 초기의 종신보험은 사망 본연의 보장기능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생보사가 많은 판매고를 올렸던 종신 사망보장 상품은 ‘교육보험’이다. 방문판매의 영업방식이 일반적이던 시기에 초인종을 눌러 나온 엄마에게 ‘아이가 참 예쁘고 똑똑하게 생겼다’는 말과 함께 가장 유고시 더 이상 이어 나가기가 힘들어질 교육에 대한 엄마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화법이 제대로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생보사는 ‘보장자산’이라는 개념에 가장의 사망시 자녀를 위한 상속 개념으로서 더더욱 종신보험 본연의 기능을 강조하며 생보사 주요 수익 상품으로서의 자리를 이어간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사회가 변하고 인구통계가 변했으며, 보험을 대하는 소비자의 시각과 미래를 준비하는 금융상품 또한 매우 다양해져 갔다.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 싶은 한국의 가장들은 자식을 위한 보장자산보다 대출금과 이자에 관심을 더 갖기 시작했다. ‘욜로’, ‘소확행’과 같은 말이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혼인율과 출산율이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 그들은 미래의 죽음에 대한 준비 따위는 본인과는 상관없는 일이 된지가 오래다. 그 틈을 파고들어 실손의료보험 등과 같은 생존보험이 약진하여 손보사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생보사는 ‘Life Insurance’를 버리는 순간, 회사의 정체성을 같이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종신보험을 계속 판매할 수밖에 없으며, 세상이 변했다고 당장 대체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혁신적인 회사도 아니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최대 수익상품이었던 보험종목을 한 순간에 버릴 수는 없기에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렇게 등장한 상품들이 종신보험 본연의 기능을 가리고 포장하는 과정에 소비자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종신보험 본연의 기능으로 가입하는 소비자가 몇이나 될까? 최근의 생보사 종신보험이 저축 콘셉트를 계속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정말 대안은 없는지 깊게 고민해봐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