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 인슈포트라이트
# 해당글은 한국보험신문에도 게재되고 있는 오명진 작가의 '인슈포트라이트' 칼럼입니다.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돈을 갹출해 모은다. 지인 중 누군가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경제적 불행을 겪으면 모아둔 돈에서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나 돈이 남으면 다시 돌려받는다. 동창회, 친목회, 계, 상호부조 등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얘기처럼 들린다. 이는 지난 2010년 설립해 현재는 2개 나라에서 법인을 운영하고 1530만 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한 P2P보험의 1세대인 독일 Friendsurance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설명이다.
2010년대 이후 인슈어테크의 커다란 흐름 중 하나로 P2P 보험이 주목받고 있다. P2P 보험은 회사가 위험을 인수(가입자 입장에서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하고 플랫폼의 운영에서 발생하는 일정 수수료만을 수익으로 가져가는 형태의 보험사다. 전통적인 금융업에서의 중개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개인간의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크라우드펀딩, P2P 대출 등과 흐름을 같이한다.
보험은 지난 수백년의 시간 동안 인수(전가)된 위험관리의 안정성과 금융거래의 편의성이라는 경제적 효율을 이유로 대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 P2P 보험은 위험을 인수하는 중앙화된 대형 보험사에서 탈피하고 기존의 보험계약 체계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인 또는 소셜네크워크 기반의 소규모 그룹에서 위험을 공유하는 보험 참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으며 참여자들이 의도적으로 나쁜 선택을 하지 못하는 넛지(Nudge)가 작용해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가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위험(손해)에 대한 가격산출 즉, 위험을 인수하기 위해 책정하는 보험회사의 보험요율은 손해의 빈도(발생횟수)와 심도(손해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의료비, 입원일당, 진단비 등과 같이 비교적 규칙적으로 발생하고 보험회사가 충분히 감내가 가능한 정도의 고빈도 손해에 대한 가격산출은 쉽고, 무엇보다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산출체계가 매우 고도화 되어있다. 하지만, 빈도가 잦지 않아 가격 산출을 위한 통계적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와 빈도는 높으나 심도가 매우 낮아 보험회사에서 일정 손해액 이상만을 보장하는(Deductible, 본인부담금) 형태의 손해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위험을 인수하는 보험자(보험회사) 입장에서 보험가격을 책정하고 가입자에 제공되는 위험보장 상품의 다양성을 재단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역시 P2P 보험이라 할 수 있다.
P2P 보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가입자들이 직접 유사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주변 지인들을 모아서 위험을 함께 공유할 그룹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규모 그룹만 형성이 되면 위험보장이 가능하며 그룹의 아이디어에 따라 매우 다양한 종류의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의 생산도 가능하다. 그것은 보험자(보험회사)의 가격산출체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위험까지도 공유하여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보험그룹을 직접 형성하므로 기존 보험의 Value Chain에서 유통(판매채널) 단계를 제거하고 그에 따른 마케팅 비용과 판매수수료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P2P 보험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같은 SNS의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SNS는 위험 그룹을 쉽고 빠르게 형성할 매우 최적화된 도구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688년 런던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에드워드 로이드가 상인, 은행가, 해상보험 인수업자 등의 손님들이 쉽게 계약할 수 있게 비공식적인 사무실을 제공했던 Lloyd’s of London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위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해 보험제도의 본질(위험의 공유)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P2P 보험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