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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스 Feb 01. 2021

호세권에 살고 싶습니다.

세상 쫀득한 찹쌀호떡을 드세요.


영하 15. 

이사갈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마루 업체를 다녀왔다. 대량의 마루를 보유하고 있던 회사아래위가 터진 2층짜리 창고에 있었다. 무척 성의있게 설명해주시는 젊은 사장님 덕분에 모든 마루 설명을 듣고서야 그곳을 나올  있었다.


얼마나 떨었던지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발은 온기가 돌지 않았다. 저기 다리 너머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얼른 들어가 이불을 싸매고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지지고 싶단 맘만 간절했다. 그러나 다리를 통과하자마자 나는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호떡차.호떡이라니.

내 언 몸이 당장이라도 녹을 것 같은 호떡이라니.




요즘 어느 동네나 사정은 비슷할테지만, 내가 사는 신도시에서 호떡차를 구경하는 일은 정말이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이다. 8년째 이 도시에 살고 있는데 노점이란 노점이 등장하는 순간 누군가는 투철한 신고정신을 실천한다. 어떤 마음인지 이해는 간다. 나 역시도 청정신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곱창 트럭, 닭꼬치, 다코야끼, 튀김, 전기구이 통닭 등등 수많은 트럭들은 판을 펼치러 들어왔다가 1시간도 못 돼 단속 나온 구청직원과 실갱이를 벌이다 떠난다. 그나마도 장사를 하려면 아파트 부녀회나 입대위가 허락을 해줘야 단지 내에서 정해진 날 장사를 할 수 있단다. 그렇게 자리잡은 트럭이나 노점이 한 두군데 있긴 하다 풍문으로 들었다.


노점이 마구잡이로 장사를 하게 되면 세금 내고 장사하는 주변 가게들이 피해를 보고, 또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데 동의한다. 내가 신고하지 않는다고 노점의 장사를 합법적으로 막는 이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다만 영세한 업종들이 비싼 임대료를 내고 터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이런 노점들이 내게는 다 절절하지 않지만, 오직 하나 있었으면 하는 노점이 있다. 호떡 가게.


4월이었다. 이 도시에 처음 집을 구하러 왔을 때가 4월이었다.30년을 줄곧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당연히 홑겹의 트렌치를 입고 공항에 내렸다.


세상에, 지금은 4월이라고. 이미 개나리도 만개했는데 4월의 바람이 이럴 일인가. 나는 이곳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은 이곳이고, 남편과 떨어져 아이 둘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 어쩔 수 없지만 이 도시에 정착했다. 그해 겨울의 추위는 내게 무척 낯설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구스다운이라는 것도 장만했다.


낯선 도시에는 익숙한 음식도 찾기 힘들었다. 호떡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이 도시엔 그 어디에서도 호떡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동네에 몇 안 되는 떡볶이 가게도 죄다 뒤졌는데 호떡은 없었다. 결국 맘카페에서 수소문해 호떡을 파는 작은 가게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어렵사리 하나에 1천원하는 호떡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너무나 기뻤지만 그렇게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혹한에도 호떡매니아들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이미 긴 줄에 15분을 기다려야한다는 사장님 말씀. 내 발은 더욱 얼음장이 되어 가지만 나는 호떡 앞에 마음을 비운다.


하지만 섬 도자가 붙는 이 동네의 바닷바람을 견디자니 참 못할 노릇이다. 포기 직전 다 내려놓고 사장님의 쟨 손놀림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반죽을 뚝 떼서 얼렁뚱땅 모양을 잡고, 달달한 속을 듬뿍 넣는다. 쭉 늘어질 것 같은 반죽을 한군데로 모아 꼬집고 철판 위에 무심한 척 내려놓는다. 누르고, 기름을 끼얹는 과정을 몇번 반복하면 그깟 호떡, 참 쉽게 만들어진다.


김이 펄펄 나는 호떡 봉지를 껴안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 오늘의 추위가 호떡 하나로 다 녹아내리는 맛이다. 꿀맛.




호떡 맛을 잊지 못하는 아이들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호떡을 요구하지만, 동네 그 어디에서도 호떡차 소식은 듣지 못했다. 칠칠치 못한 애미는 호떡차에 '지역카페에 위치를 알리지 말고 010 **** ****으로 연락주세요'란 글을 읽고도 사장님의 번호를 딸 생각을 못했다.


결국 나는 두 팔 걷어 붙이고, 내 어릴적 먹던 쫀득한 찹쌀호떡을 만들기로 한다.

밀가루와 찹쌀을 섞어 대충 반죽을 하고, 발효과정을 거친 다음, 호떡차 사장님의 흉내를 내어 본다.

반죽을 뚝 떼서 얼렁뚱땅 모양을 잡고, 달달한 속을 듬뿍 넣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나 이러다가 호떡차 운전하는 거 아닐까....'


콩기름과 버터에 지글지글 구운 호떡에, tv프로그램의 흉내를 내어 아이스크림 하나를 올려 준다.

오늘의 호떡에 아이들은 더블 하이 파이브를 날려준다. 뭐든 엄마가 만들어주면 최고라는 아이들.

이 맛에 요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호떡차를 다시 만나면 나는 신고대신 사장님의 번호를 저장할 거다.

청정신도시도 좋지만, 호떡 1장을 먹으려고 3시간을 투자하는 건 좀 나쁜 것 같으니.


그저 호세권에 살고 싶을 뿐이다.  



bonus. 세상 쫀득한 찹쌀호떡 레시피

미지근한 물 3/4컵, 이스트 1/2작은술

강력분 1컵, 찹쌀가루 1/2컵, 설탕1/2큰술, 소금 꼬집, 콩기름 1큰술

흑설탕 3큰술, 시나몬가루 1/2작은술, 견과류 두 줌


1. 물에 이스트를 넣고 녹인 다음, 가루류를 몽땅 넣고 주걱으로 섞다가 콩기름을 반죽을 코팅하듯 섞어준다. 한 덩이로 잘 뭉쳐 랩으로 덮어 따뜻한 곳에서 두 배 크기로 발효시킨다.

2. 반죽이 두 배가 되면, 주걱으로 한 번 더 섞어 가스를 빼주고 한 번 더 따뜻한 곳에서 두 배가 될 때까지 발효한다.

3. 발표가 끝난 반죽은 같은 크기로 여섯 등분 한 다음, 흑설탕, 시나몬가루, 다진 견과류를 넣고 둥글려 중불에서 천천히 익혀준다.


+추운 겨울 실내온도로는 발효가 어렵다. 전자레인지를 2분 정도 공회전 한 다음, 뜨거운 물 한 컵과 반죽을 함께 넣어 문을 닫아 발효하면 온도가 유지된다. 1시간에서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호떡반죽을 힘들게 손으로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주걱으로 날가루가 보이지 않고 반죽이 둥글게 될 때까지만 해 주면 된다. 그래도 손으로 하고 싶다면 반죽을 매끈하게 만들어야 하는 마지막 과정에 힘을 쓰길!

+호떡을 센불에서 구우면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아 밀가루 맛이 난다. 반드시 중불에서 기름을 끼얹어가며 천천히 굽자. 그리고 기름에 버터 한 조각을 넣어 구우면 풍미가 대박이다. 대신 버터는 열을 가해도 타지 않는 기버터를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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