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도 시

은은하게 타오르는 따스한 등불

시와 내가 연결된 순간

by 희망지기

'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른아른 영롱하게 타오르는 주황색과 푸른색의 촛불. 타오르고 타올라 작은 키가 되어버린 초라한 모습의 양초.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


어쩌면 이때부터 나와 시는 연결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 장면은 내가 실제로 타오르는 양초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 시절 내가 지어낸 시 속에 살고 있는 촛불의 모습이다. 그때 내가 쓴 시의 제목은 <방황>이다.


30여 년 전 내가 만들어 낸 촛불은 지금까지 타오르고 있다. 꺼질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지만 꺼지지 않은 채 그때보다 더 찬란하고 밝은 빛으로 내 삶의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 등불. 내게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따스한 등불이 있다. 가끔 바람에 날려 불빛이 사그라들려고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주변에 있는 다른 등불들이 가까이 다가와 나의 등불을 지켜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등불을 지키고 있다. 시는 세상 곳곳을 밝히고 데워주는 여리지만 강한 불빛이다.


노트를 뒤적여보니 대략 열네 살 때부터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한 것 같다. 시에 대한 사랑이 정점에 이른 것은 '방황'을 쓴 열여섯부터다. 당시 내 시는 교지에 실렸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던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삶이 힘들었던 나는 수업시간마다 교과서에 낙서 같은 시를 썼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그 낙서 같은 것을 베껴 썼다. 지금 읽어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어 웃음이 나지만 까만 글씨를 바라보니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들을 썼는지 알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그때를 돌아보니 그것이 시였든 낙서였든 무언가를 쓰는 행위가 나를 아주 따뜻하게 보듬어준 것 같다. 덕분에 나의 삶은 부서지지 않았고 하나의 불빛을 만들어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 그렇게 싫고 힘들었을까.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 역시도 잘 해내지 못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듬고 이야기하고 토닥였으면 좋았겠지만 당시의 나는 아이에 불과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에 서툴렀다. 가난이 싫었지만 그건 당시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갔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동안 시는 내 생활 속에서 차츰 희미해져 갔다. 희미해졌을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다. 띄엄띄엄이나마 시를 읽어나가던 어느 날, 내 심지에 꺼지지 않을 강한 불이 붙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는 나를 보듬었다. 나무 같기도 했고 음악 같기도 그림 같기도 했으며 흐르는 물소리 같기도 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이나 낮에 만나는 희미한 달빛 같기도 했다. 그것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었으며 흩날리는 꽃잎이자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시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살아가게 하려면 우리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나는 시를 사랑하기로 했고 시가 내 삶 속에 살아가도록 마음먹었다.


지금의 나 역시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지만, 그래서 내가 싫고 짜증 나는 순간이 수없이 찾아오지만, 그래도 시와 손잡고 살아가는 덕분에 조금은 즐겁고 명랑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희미한 외침"과 "적막"은 귀 기울이면 아주 잘 들린다는 것을 시는 내게 말해준다. 시가 내게 귀 기울여 나의 외침과 불빛을 알아챘듯이 나는 시에 귀 기울인다.

<방황>

- 열여섯의 희망지기 -


세상에 찌들려 꺼져가고 있는 불빛속에

방황하고 있는 하나의 몸짓이 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색이 바랜 꿈들이 있다.


하늘의 적막을 깨고서

허공 속에 고요히 들려오는 함성소리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에

여기 희미한 외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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