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시인의 <봄이 고인다>와 함께
봄
시
이 한 단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우리는 봄이 되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발 딛는 곳마다 꽃과 향기가 푸지게 흐뭇하다. 꽃 사이사이 파고 들어간 사람들의 미소가 이처럼 순수하고 꾸밈없을 때가 있는지 꽃에게 묻고 싶다. 꽃 핀 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린 아기를 바라볼 때처럼 맑고 깨끗하다. 곧 떨어질 꽃잎이 아쉬워 이 순간을 카메라에 눈에 마음에 담고 또 담는다. "봄이 고이더라"라는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봄은 고인다. 사람의 표정에 고이고 눈빛에 고이고 마음에 고여 이내 그 사람을 봄빛으로 만들고 만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공간을 가로질러 여기저기의 사람들 마음을 파고든다.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밖으로 나가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된다. 아니면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봐도 되고 바람을 손에 쥐어봐도 된다. 가지 끝에서 오므린 손을 쫘~악 펼치고 있는 아기손 같은 단풍나무의 여린 잎을 봐도 좋다. 해가 지고 난 뒤 밖으로 나가 초승달 반달 보름달과 함께 빛나고 있는 별과 같은 꽃을 바라보며 봄밤을 걸어도 좋다. 지저귀는 새의 소리를 듣거나 삣종대는 입을 보며 새의 표정을 관찰해도 좋다. 거기,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봄이 있고 시가 있고 꽃잎 따라 흔들리는 마음이 있다. 바람을 쥐려다 춤추며 내려오던 꽃잎을 쥐게 된다면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온 세상이 궁금해할 것이다.
곳곳에 봄이 있고
곳곳에 시가 있다.
지금, 꽃과 향기 속에 흩날리는 봄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대 마음속에 이미 시가 들어갔으니 그대로 마음속에 심고 물을 주고 말을 들려주며 당신의 시에게 봄빛처럼 속삭이시길.
-이문재-
봄이 고이더라.
공중에도 고이더라.
바닥없는 곳에도 고이더라.
봄이 고여서
산에 들에 물이 오르더라.
풀과 나무에 연초록
연초록이 번지더라.
봄은 고여서
너럭바위도 잔뿌리를 내리더라.
낮게 갠 하늘 한 걸음 더 내려와
아지랑이 훌훌 빨아들이더라.
천지간이 더워지더라.
꽃들이 문을 열어젖히더라.
진짜 만개는 꽃이 문 열기 직전이더라.
벌 나비 윙윙 벌떼처럼 날아들더라.
이것도 영락없는 줄탁 줄탁이려니
눈을 감아도 눈이 시더라.
눈이 시더라.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19쪽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