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불편하다.
성과를 내면 내는 대로, 내지 못하면 내지 못한 대로 서운한게 연봉이기 때문이다.
성과평가는 나의 주된 업무는 아니지만, 조직문화를 다루는 입장에서 늘 어깨너머로 지켜보게 되는 중요한 과제다. 성과평가의 기준과 보상이 구성원에게 어떤 경험을 남기느냐는 결국 조직문화의 방향을 결정짓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연봉협상 에피소드는
가장 숨 막히면서도 HR 관점에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1.“프로에 연공서열제가 왜 있습니까?”
드림즈 구단은 모기업 재송그룹으로부터 연봉 총액 30% 삭감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다.
단장 백승수는 이에 맞서 “이미 리그 내 최저 연봉을 받고 있다”며
10% 삭감으로의 수정안을 제안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백단장의 대응 방식이다.
그는 이 상황을 모기업의 탓으로 돌리며 뒤로 숨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룰을 만들었다.
연공서열을 배제한, 성과 중심의 연봉제.
성과를 낸 신인 선수는 8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으로 연봉이 인상되고,
기여도가 낮은 16년차 투수는 1.3억에서 5천만 원으로 삭감된다.
제로베이스로 성과 기준을 재정의한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2. 나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
이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공서열 없는 프로의 세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 역시 연공서열보다 ‘잘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시스템’이 더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기본급을 낮추고, 성과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는 구조가
동기부여 측면에서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인사, 재무, 총무 등 정량지표로 성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지원부서의 경우,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보상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 속에서 많은 기업들은 다양한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구조 속에서도 결국 핵심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기여를 납득 가능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3.“본인의 가치를 본인이 모르는 사람을 우리가 왜 인정해줍니까?”
백단장이 연봉협상 도중 던진 이 말은
해당 에피소드에서 HR담당자이자 근로자로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5천만 원으로 연봉이 삭감되며 은퇴까지 고민하게 된 베테랑 투수는
특정 지표에서는 나쁘지 않았고, 팀에 필요한 자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성과를 설명하지도, 어필하지도 못한 채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결국 연봉이 절반 이하로 삭감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이 장면은 오늘날 HR 환경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요즘의 성과평가는 단순히 상사가 주는 점수가 아니라
자기 인식과 피드백 루프가 결합된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맡았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했고,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내 강점과 개선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성과평가와 연봉협상에서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4. 성과 중심 보상, 그 이상적인 기준은?
성과 중심 제도는 분명 이상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납득 가능한 기준’과 ‘예측 가능한 구조’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경영 이론이 바로 기대이론이다.
“성과를 내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동기가 유발된다.”
5. 모두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가
최근 들어 내가 스스로 자주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조직은 모든 구성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할까?”
“성장 가능성과 기여도가 높은 인재에게 선택적으로 집중해야 할까?”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많은 조직이 점차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하고 있고, 나 또한 이 방향을 선호한다.
S급 인재에게는 고난도 프로젝트, 1:1 멘토링, 외부 교육 기회, 조기 승진 및 보상 등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며 조직의 성과 총량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회에서 소외되는 구성원의 이탈 위험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 균형점을 찾고자 고민 중이다.
성과 중심 평가는 이러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준을 적용하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인재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
그 균형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수도 있다.
6. 협상의 기술, 그리고 사람의 가치
스토브리그 속 백단장의 연봉협상은 숫자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 술을 뿌리며 항의하는 선수와 협상
- 사기가 떨어진 최저연봉자들 독려
- 다른 구단과의 백업자원 트레이드를 활용한 압박 전술
- 본인의 연봉을 반납해 여론을 움직인 전략 그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협상가이자 리더로서의 기술을 발휘했고, 결국 조직과 사람 모두를 지켜냈다.
7.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성과평가의 모습
연봉협상과 성과평가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관계, 감정, 자기 인식, 공정성, 동기부여가 얽혀 있다.
그렇기에 평가 기준은 명확하되, 그 기준이 만들어진 맥락과 적용 방식이 납득 가능해야 한다.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정당한 보상과 명확한 언어를,
아직 성장 중인 구성원에게는 도전의 기회와 구조화된 성장경로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HRer로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현실적인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