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쓰는 손차박 논쟁 : 누가 더 위대한가

위대함, 뭉클함, 그리고 통쾌함… 손차박 논쟁의 HR관점 진정한 가

by 인싸담당자 신민주

"Do you know Sonny?"

해외에 나가면 마법의 주문처럼 통한다는 그 말.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이름만 되뇌어도 가슴이 웅장해지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감사하고 행복한' 이름들이다.


축구 팬들의 영원한 난제인 이른바 '손차박 대전'은 이미 수년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혹자는 손흥민 선수가 푸스카스상(가장 멋진 골)을 받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을 때 이미 논쟁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유일한 아쉬움이었던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마저 지난 2025년, 토트넘의 유로파리그 우승을 견인하며 떼어냈으니 명실상부한 'GOAT(Greatest of All Time)'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논쟁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2011년, 춘천의 한 운동장에서 앳된 얼굴의 함부르크 소속 손흥민 선수를 마주쳤을 때,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쿨하게 지나쳤던 과거가 사무치게 후회되어서만은 아니다.

내가 주저하는 진짜 이유는, 세 선수가 가진 서사가 우리 조직과 삶에 던지는 메시지가 서로 다르면서도 동시에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대함, 뭉클함, 그리고 통쾌함의 서사

KBS <대화의 희열>에서 세 선수를 이렇게 정의했다. "차범근은 위대하고, 박지성은 뭉클하고, 손흥민은 통쾌하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이다.

나는 손흥민 선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학창 시절 박지성 선수가 주었던 그 뜨거운 울림을 잊을 수 없다. 2002년 포르투갈전의 환상적인 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거함에서의 헌신, 그리고 일본전의 산책 세리머니까지. 박지성에게는 단순한 실력을 넘어선 한 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세대의 영웅, 차범근 감독이 있다. 그 시절의 경기를 라이브로 목격하진 못했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홀로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한 그의 위대함은 기록과 영상만으로도 압도적이다.

손차박.jpg

평소 '제1회 운영', '초대 위원회', '최초 도입'과 같은 도전을 즐기는 성향 탓일까. 나는 감히 이 논쟁에서 차범근 선수가 가장 위대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길을 낸 사람. 축구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 '0에서 1(Zero to One)'을 만들어낸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0에서 1을 만드는 것이며, 이는 수직적 진보를 의미한다"라고 했다. 반면 기존의 것을 모방하고 확장하는 것은 1에서 n을 만드는 수평적 진보라고 말한다. 이 이론을 빌려 '손차박'을 HR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발견된다.


- 차범근 (0 to 1)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여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했다. 존재하지 않던 가능성을 증명한 '창조적 혁신가'다.

- 박지성 (1 to 10) : 그 길을 넓히고 다져서 후배들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조직에 헌신하며 문화를 정착시킨 '위대한 조력자'이자 '확장자'다.

- 손흥민 (10 to 100) : 잘 닦인 길 위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정점을 찍었다. 시스템을 완벽하게 활용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는 '초격차의 완성자'다.


#HR 담당자가 바라본 '손차박'의 연결고리

나는 새로운 제도를 기획하고 론칭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차범근형' 인재를 지향해 왔다. 새로운 제도가 조직에 처음 도입될 때의 짜릿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HR 업무를 하면 할수록 깨닫는다. 시작이 위대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진정한 '문화'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후속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혁신적인 인사 제도(0 to 1)를 도입해도,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정착시키는 과정(1 to 10)이 결여된다면 그 제도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나아가 그 제도가 조직의 생산성을 폭발시키고 구성원의 성장을 견인하는 결과(10 to 100)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성을 잃게 된다.


인사담당자로서 종종 딜레마에 빠진다. 멋진 기획안을 들고 "이거다!"라고 외치며 시작하지만, 진정한 승부는 결재가 난 이후부터다. 제도의 취지를 진정성 있게 알리고(박지성의 헌신), 피드백을 통해 디테일을 수정하며 구성원에게 효능감을 주는 과정(손흥민의 퍼포먼스)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기획도 서류 조각이 되어버린다.


결국, 나는 '차범근'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 시작을 완성시켜 줄 '박지성'의 헌신과 '손흥민'의 탁월함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손차박'이라는 한 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시작을 열고, 누군가는 그 가치를 연결하며, 누군가는 증명해 낸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직이 위대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의 파이프라인'이다. 시작이 있어야 현재가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을 어떻게 운영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남을 수도, '위대한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손차박 논쟁에 정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보여준 '최초', '헌신', '최고'의 가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기에 대한민국 축구가 지금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 굳이 한 명을 꼽느라 머리를 싸매지는 말자. 우리는 그저 이 위인들이 만든 찬란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 조직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손차박'의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감사하면 된다.

(물론, 다시 한번 손흥민 선수를 만난다면 그땐 체면 불고하고 달려가 사진부터 찍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통없는 조직에는 성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