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뒤에서 바라 본 미래

by 연화

풍등은 생각보다 빠르게 하늘 너머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습니다. 대만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 풍등을 날리는 장면이 나오면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돌려봤던 기억이 납니다. 길고 좁다란 철도 위에서 날리는 색색깔의 풍등이 모두의 소소하고 예쁜 마음을 담아 멀리 날아가는 풍경이었습니다.


타이페이 여행 둘째 날 동기 B, C와 함께 했던 택시 투어는 걱정과 다르게 유쾌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뚝뚝해 보였던 가이드 아저씨는 우리의 첫 목적지인 예류 지질공원에서부터 한 장, 두장 씩 사진을 찍어주시더니, 투어가 끝날 때쯤 아저씨께 건네받은 사진의 양은 600장이 훌쩍 넘는 양이었습니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저희에게 '여기 언제 다시 올 거예요! 당당하게 포즈 잡으세요!'라고 따끔하게 호통(?) 치시던 아저씨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그 날 여행의 순간들을 단단하게 채워주셨습니다.


대만 스펀, 기차길 옆으로 풍등 가게가 나란히 들어서 있습니다

그 날 택시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스펀역'으로, 기찻길 양 옆에 풍등 가게가 쭈욱 늘어진 작은 역입니다. 규모는 작아도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 곳을 방문해 풍등을 날리며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이미 해가 완전히 기운 저녁, 스펀역을 도착하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펀역은 한산했죠.


소원을 적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성공, 건강, 행복, 취업.. 막연히 풍등 날리는 일을 상상했을 때 멋들어진 문구를 적어야지, 라며 다짐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취업 성공하자', '가족의 건강', '행복하게 해주세요' 등의 글귀들을 적게 되었습니다. 막상 적어보니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더군요. 어찌나 소원 적는 데 집중했던지, 손에 까만 먹이 묻은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2017.10.24

대만 타이페이


풍등이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는 터라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풍등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에서 볼 땐 분명 둥실둥실, 천천히 날아갔던 것 같은데. 그때의 우리는 비를 꼴딱 맞은 생쥐꼴을 한 채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풍등의 흔적을 좇으려 고개를 바짝 세우고 있었습니다. 풍등의 모습은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뜬 붉은 달 같기도 했습니다.


빠르고 허무하게 사라진 풍등처럼 '미래'도 손에 잡힐 듯 손가락 사이로 자꾸만 빠져나가며 사라지고 맙니다. 어릴 때부터 상상했던 미래의 순간들은 늘 성큼성큼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시간은 무심하고 빠르게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는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별 볼 일 없고 나약한 인간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뼘 뒤에서 바라 본 미래가 점점 더 두려웠던 걸까요. 수능 당일, 대학교 엠티, 첫 여행을 떠났던 날, 첫사랑, 첫 이별, 그토록 고대했던 여행의 순간들... 꿈꿔왔던 미래들은 어느새 한 뼘 앞에 와 있고, 늘 작별 인사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완연한 어둠이 내려 앉은 스펀

여행자는 여행의 기간 동안 오로지 여행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무수히 놓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닐 땐 당장 오늘의 일이 급했기에, 무언가를 사색하기엔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모든 순간들이 제게는 생생히 살아 있는 순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이드 아저씨가 찍어준 600장의 사진 속 우리는 행복하고 좋아 보이기만 합니다. 사진을 보니 그때의 순간들과 너무 빠르게 헤어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한 번 지나친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애틋한 것이겠죠.

풍등을 날리는 짧은 순간, 눈을 감고 한 뼘 앞의 미래에 미리 인사를 했던 것이 참 다행입니다. 비록 꿈꿔왔던 미래와 다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결 수월하겠습니다. 오늘도 늘 빠르게 사라지는 미래의 순간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알쓰'가 여행을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