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살아 있는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
여행이 끝난 후,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 내내 돌보지 않았던 긴 손톱을 짧게 깎고, 만료된 토익 성적표를 보며 영어 학원을 종로로 다닐까, 강남으로 다닐까 고민을 했고요. 귀 뒤를 겨우 넘길 만큼 기른 앞머리를 짧게 다듬기도 했고, 이번 생은 도대체 뭘 해 먹고살아야 괜찮은 삶이 될까 짧은 고민을 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싱겁게 헤어졌던 직장 동료들에게 '한국 돌아왔어요, 밥 한 번 먹을까요?'라고 다섯 번쯤 메시지를 썼다 지우다가, 결국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결국, 무엇을 위해 떠났던 걸까요.
카페테라스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흔들림을 삶의 소중한 순간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더 이상 살아도 죽어 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과 같은 길을 걷지만 모두에게 의미가 다른 여행의 순간, 저는 그 순간들을 '내가 살아 있는 시간'으로 이름 부르고 싶습니다.
2017.10.22 / AM 04:45
교토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선잠에서 깨어나 바라본 창밖에는 회색 바다가 가득 펼쳐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간사이 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탔던 날이었습니다. 여행의 순간에서 가장 고단하면서도 행복한 순간은 버스에서 졸다가 깨어났을 때, 예상치 못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일 겁니다. 그 날은 태풍 란이 오키나와로 북상 중이었고, 그래서 오사카에도 거센 비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흔들리는 버스, 눈 앞에 펼쳐진 끝을 알 수 없는 회색 바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운이 좋게 살아남았구나.'
인간이 '모두' 죽는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데, 우리는 가끔 이 전제를 잊고 살곤 합니다. 인간은 모두 '언젠간' 죽는다는 것을요. 그 '언젠가'가 누군가에겐 태어난 바로 그 순간일 수 있고, 나이 들어 병든 순간일 수도 있고, 또 지금 이 순간 일수도 있습니다. 버스가 빗물에 미끄러져 바다에 풍덩 빠질 수도 있고, 폭우가 내려쳐 버스가 뒤집힐 수도 있겠죠. 어딘가로 '향할 때', 저는 동시에 '죽음'을 떠올립니다. 비바람에 수평선이 희미하게 지워진 거대한 회색 바다가 죽음의 이미지를 더해주기도 했고요.
노랫말 같은 일본어 방송을 들으며 무사히 간사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얘기지만, 비로소 이 순간 저는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여행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일입니다. 이상한 죽음의 기운과 동시에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의 집합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