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하는 여행

by 연화
당신을 만날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2017.10.11~10.15

일본 교토

tofukugi_2.jpg 교토, 도후쿠지
01. 대학교 4학년, 팀플에서 만난 친구 A

친구 A는 교토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한 지 세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대학교 4년 동안 수많은 팀플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왔지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졸업 후 직장을 그만두고 A와 함께 교토를 여행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던 일이었습니다.

교토의 낯선 골목, 아담한 자취방에서 최소한의 물품을 두고 타지 생활을 시작한 A. 6개월 간 유럽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저는, 기간이 어찌 됐든 낯선 언어가 들리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A의 표정은 밝고, 그녀는 일본어와 영어를 배우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도토루'라는 카페와 료칸에서 일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나의 한국 일상과, 그녀의 일본 생활기를 적절히 섞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 특유의 드립 커피가 싫증 나면 스타벅스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들이켜기도 했고요. 과제 많고 힘들기로 유명했던 한 수업의 팀플에서, A처럼 씩씩하고 다정한 친구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중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2017.10.19~10.22

일본 교토

kyoto_2.jpg 교토, 야사카 신사
02. 엄마

한국에 돌아오고 며칠 후, 엄마가 쓴 그림책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딸이 문예창작과를 다닌 다는 이유로 내게 종종 '합평'을 부탁했던 엄마. 그동안 제가 읽은 엄마의 글들만 수십 장이 넘으니, 엄마의 노트북에 곤히 잠들어 있는 글들은 아마 더 큰 우주를 품고 있을 겁니다.

처음으로 엄마와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지금 내 나이 때 결혼해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 가본 엄마. 커다란 노트북을 세상 삼아 자신만의 감성으로 글을 쓰고,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익숙한 동네의 모습을 필름 카메라로 담았던 엄마.

태풍의 영향으로 내내 비가 오고 흐렸던 교토지만, 엄마는 늘 소녀처럼 웃으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담았습니다. 일본에서 내내 몸이 안 좋았던 제게 엄마와의 여행은 고단한 것에서 편안한 일상으로 그 모습을 달리했습니다. 편한만큼 엄마에겐 말도 안 되는 짜증도 많이 부렸는데, 저는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도 변변한 사과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애인이나 친구에겐 쉽게 할, 그런 말들이요.




2017.10.22~10.23

대만 타이중

taichung_2(final).jpg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중으로 가는 길,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03. 주주와 링, 그리고 양양

주주와 링은 4년 전, 홀로 교토로 떠났을 때 우연히 만났던 대만인 부부입니다. 교토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시골 마을 '오하라'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기도 하고요. 길이 헷갈려 '스미마센'하고 물었던 제게, '익스큐즈미?'라고 되물었던 두 사람. 저는 중국어를 못하고, 그들은 한국어를 못하니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제가 영어로 물으면 더듬더듬 대답하는 느린 대화가 어쩐지 저에겐 더없이 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꼭 대만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러 그들의 고향을 찾았습니다. 4년 전, 딱 반나절의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연락을 지속했던 우리. 저는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만 땅에 도착했습니다.

대만 타오위안 공항에서 만난 그들은 4년 전과 다름없이 따뜻하고 편안한 눈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옷 스타일도, 머리 스타일도 그대로인 부부. 어쩐지 화려하게 치장한 저만이 바뀐 것 같아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딱 하나 바뀐 게 있다면, 그들에게 예쁜 아기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 살이 된 양양. 엄마인 링을 꼭 닮은 눈꼬리를 가진 아이.

공항에서 주주의 차를 타고 그들의 고향인 타이중으로 가기까지, 우리는 조금 어색하고 반가운 채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를 찰나 주주가 튼 라디오에선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가 나오자, 우리는 곤히 잠이 든 양양을 의식하여 숨죽여 웃었습니다.




2017.10.23~10.26

대만 타이베이

taipei_2.jpeg 타이페이, 예류 지질공원
04. 문창과 동기, B와 C

대학교를 다닐 때, 인간관계가 힘들어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긴 통학 시간보다 고되고 힘들었던 건 단편적인 관계와 의미 없는 말들이었죠. 분명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친하다고 '생각한' 동기들도 많았는데 어쩐지 늘 그들을 가식적으로 대하는 제 자신에 대한 한심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B와 C는 1학년 때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3학년 때 같은 수업을 듣게 됐고, 어쩐지 그녀들과 있으면 가식을 떨지 않는 '진짜' 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좁은 인간관계를 지닌 제게 그녀들은 참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그녀들과의 여행 마지막 밤, 우리는 파인애플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습니다.

'다음부턴 계를 들어 여행을 갈까.'

글쎄요, 졸업 후 방황 중인 우리에게 과연 다음이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요. 앞으로 우리는 취업에, 돈에, 삶에 치여 살지 않을까요. 여행이라는 두 글자를 까맣게 잊은 채 말입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맥주를 홀짝이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면, 그대로 만족스럽기 때문에.




2017.10.15~10.19

일본 오카야마

okayama_2.jpg 오카야마, 고라쿠엔 정원
05. 나 홀로

혼자 하는 여행은 사소한 것들에 귀 기울이는 순간의 총체입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고,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에 들어선 나뭇잎을 길게 바라보는 일들. 비가 오는 강가에 퍼지는 동심원을 홀리듯 그려보는 일.

그래도, 앞으로는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선 고요히 침잠된 때를 담을 수 있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여행의 역동적이고 생생한 순간들이 저를 살아 있게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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