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by 연화

한국에선 좀처럼 동물들을 마주치기가 힘듭니다. 보호자와 산책하는 반려견이나, 담벼락 사이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고양이를 몇 번 마주칠 뿐이죠.

저는 지금까지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다양한 동물들을 오래오래 마주했던 순간들이 그 도시의 인상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할까요.


동물들의 눈은 마치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2017.10.14

일본 나라

나라 사슴공원에서 마주친 사슴 한 마리

센베(일본의 전통과자)를 손에 쥔 사람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사슴 무리는 마치 작은 초원을 연상케 했습니다. 거울을 보려고 화장품을 꺼내 들었을 뿐인데 순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눈 앞에 사슴의 기다란 입이 저를 쿡쿡 찌르고 있기도 했고요. 제 손에 든 것이 먹을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쿨하게 사라지던 사슴 한 마리. 유유히 사라지는 동그란 엉덩이가 조금 얄밉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울음소리는 어떻고요. '꾸웨에에엑' 하고 울던 사슴 무리, 처음엔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습니다.

사슴의 몸을 긁어주던 상인분, 유일하게 '진짜' 교감하는 것 같았다

제 상상 속의 사슴은 막연히 디즈니의 '밤비'로 형성되어왔던 것 같습니다. 복슬복슬한 꼬리를 살랑 흔들던 예쁜 사슴 밤비. 사슴공원에 방목된 수백 마리의 사슴들은, 분명히 상상 속 밤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도 그 커다랗고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마주했던 눈맞춤은 상상과 꼭 같았습니다. 아직 사람들이 익숙지 않은지, 아장아장 걸어오던 아기 사슴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긴 속눈썹을 깜빡이던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요. 수많은 관광객이 귀찮을까, 아니면 배가 고플까, 자고 싶은 걸까, 환영한다는 걸까.. 맑은 눈동자에 어떤 생각들을 담고 있었을 까요.




2017.10.12

일본 교토, 철학의 길

교토, 철학의 길. 어떤 대화를 하고 있니?

교토 철학의 길을 방문한 게 벌써 네 번째. 딱 두 번 일본을 여행했지만, 철학의 길만 네 번을 온 것을 보면 조금 의아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예쁜 산책길이긴 하지만, 보통 관광객들은 은각사 가는 길에 잠깐 휴식을 취하는 공간일 뿐이니니까요.

워낙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저라지만, 교토를 방문할 때마다 철학의 길을 왔던 이유는 다름 아닌 고양이 때문입니다. 철학의 길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면 앞발을 챱챱 핥고 있는 가지각색의 고양이들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개도 좋고 사슴도 좋고 새도 좋지만, 저는 고양이를 제일 좋아합니다.

교토, 철학의 길

세상만사 관심 없다는 무심한 눈동자가 햇살을 받아 빛을 낼 때, 고양이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산책길에서 잠깐 마주친 것만으로도, 고양이의 작은 눈동자는 알 수 없는 위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고양이들은 사람을 잘 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철학의 길에서 만났던 고양이들은, 조심스레 등을 쓰다듬자 온기를 그대로 전해주곤 했습니다. 줄무늬 고양이를 살살 쓰다듬고 있으면, 다른 한쪽에선 노란 고양이가 불쑥 나타나고, 또 뒤 쪽에선 까만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책임진다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제게 동물을 키운 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한 번도 키워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동물과 교감한다는 것도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동물과 오래도록 눈 맞추는 일은 커다란 행운입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수풀 속으로 쏙 들어가는 고양이들, 안녕. 언젠가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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