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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Feb 17. 2021

쏟아내고 해소하기

요즈음 서울의 풍경은 아름답다기보다 지루하고 단조롭다. 서울 자체가 그렇다기보다 서울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마음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방 안에 갇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나는 안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지만, 깊은 내면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끔 내 자신은 왜 이렇게 꼬여 있는 사람인지, 긍정보다는 부정을 향해 있는 사람인지,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별다른 이유 없이도 푸르른 우울 속으로 파고드는 사람인지 고민하곤 한다. 이런 고민마저 그다지 생산적이진 않고 결국은 부정과 우울을 향해 있는 것이다. 


서울의 풍경이 그러한데, 하루의 어느 순간은 이곳의 지난한 풍경들이 사랑스러워지곤 한다. 


그 말은 내 눈과 마음이 우울을 잠시 드러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출퇴근의 발이 되어주는 7호선 열차에 몸을 실으면 뚝섬유원지-청담역을 지나는 구간 즈음에 한강의 풍경이 펼쳐진다. 출근길의 밝은 한강은 눈이 부시다. 오랫동안 굽어있던 고개를 들고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빛에 온 몸을 쭉 펴게 된다. 오늘의 한강은 눈부신 햇살 아래 물결의 결이 섬세하게 도드라져 있었는데, 마치 한지를 구겨놓은 것 같은 질감이었다. 질감 위로 새들이 총총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그 주위를 바지런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차분히 걷고 있다. 피곤하여 가득 주름이 진 마음이 조금쯤은 느슨히 풀어지는 것 같다.

퇴근길 한강의 풍경은 다르다. 쌀쌀한 겨울날에는 어둠이 더욱 빨리 장막을 드리운다. 먹먹해지는 겨울 하늘 아래 선홍빛 노을이 잔잔히 지고 있다. 퇴근길의 기대감과 차분함 때문인지 그 풍경을 작은 카메라 안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미세먼지가 그득한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노을의 색이 물에 담근 듯 퍼져서 아름다울 때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서짐 없이 깨끗하지만 내면에는 많은 비밀과 상처를 떠안은 풍경이다. 


색색의 풍경은 빠르게 사라지고, 

다시         새카만            지하를                          덜 컹 이 며        지나가는             지하철

가끔은 명확한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슬퍼지곤 한다. 탁 트인 바다, 혹은 형체 없는 우울을 말없이 감싸주는 것들을 되내어본다.


계속 되내어 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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