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5~10.19
일본 오카야마 구라시키 현
차분하게 승객들을 기다리는 일본 버스의 느릿함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뒷문으로 승차해서, 하차할 때 버스 카드를 찍거나 기사에게 표를 구매하는 일본 버스. 승객들이 온전히 탈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는 버스의 느릿함이 그립습니다.
혼자 버스 여행을 할 때, 꼭 오른쪽 좌석에 앉는 버릇이 있습니다. 알아차리고 보니 습관처럼 오른쪽 좌석에 앉더군요. 그리고 언제부턴가, 늘 제 왼 편에 가만히 앉아 있는 '외로움'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언제부터 외로움과 가만히 동석할 수 있었을까.
대학교 동아리 뒤풀이에 참석했을 때, 혼자 겉도는 느낌에 편의점에 뛰어가 몰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래 사귀었던 사람과 전화로 싱거운 이별을 했을 땐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가끔은 만 원 지하철이나 시끌벅적한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허한 기분이 느껴질 때도 있었죠.
저는 혼자 하는 유렵 여행을 늘 갈망해왔습니다. 교환 학생을 떠났을 당시 혼자 했던 일주일 간의 런던 여행은 아마 제 생애 가장 어두운 일주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꿈에만 그리던 런던 아이를 봐도, 아름다운 트라팔가 광장을 걸어도 왜 그렇게 신이 나지 않았을까요.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사실 제 곁엔 언제나 '외로움'이라는 존재가 묵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쉽게 형성되고 수만 갈래의 소통이 이뤄지는 이 세계에서, 저는 결코 외롭지 '않은' 존재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제 자신이 편안했으니까요.
삶의 순간순간에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찾아왔습니다. 내가 행복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외로움도 나를 쉽게 잠식시키는 감정의 일부였습니다. 외로움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제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친구처럼 곁에 두는 일이 말이에요.
혼자 하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지친 다리를 끌고 홀로 버스에 타면, 무심하게 스쳐가는 풍경들에 많은 위안을 얻곤 했습니다.
빨래를 개는 아주머니, 나뭇잎을 쓸어내리는 아저씨, 좁은 수로에 비친 햇살 같은 것들. 계단 위에 흩뿌려진 낙엽, 일본식 가옥 앞에 세워 둔 꼭 닮은 쌍둥이 자전거.
제 옆에 고요히 앉아 있는 외로움을 인정하니, 혼자 있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잔물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으리'라고 말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혼자 하는 여행은 함께 하는 여행과는 또 다른 생동감을 전해 줍니다.
일본의 조용한 소도시 구라시키의 야경은 천천히 빛을 달리합니다. 서울이나 오사카보다 작은 불빛들을 가진 소도시지만, 어쩐지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커다란 카메라를 멘 관광객이 다가와 길을 물었습니다. 당황하여 더듬더듬 영어를 쏟아내자 현지인인 줄 알았다며 웃었던 남자.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남자 또한 일본을 홀로 여행 중이었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었다며 어설프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남자.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덜컹이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숙소로 가는 길. 일본의 철도 밖 풍경은 무심하고 아름답게 스쳐 지나갑니다. 혼자 남은 이 시간, 다시 왼 편에 자리를 잡은 외로움이라는 친구를 만납니다.
하지만 좌석 반대편에서 눈웃음을 보내는 아기의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이 삶에 존재하듯이, 누군가와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앞날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혼자 하는 여행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관광객을, 친구를, 부모님을, 당신을 만날 테니까요. 그래서 늘 '거기 있는' 외로움은, 불안하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