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품고 있는 색깔

by 연화

2017.10.11 PM 05:00

일본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역으로 가는 길, 하루카 특급 열차

4년 만에 일본 여행이지만, 수많은 도시 중 또다시 교토를 방문한 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하루카 특급 열차를 탔습니다. 오사카에 내려 볼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차창 너머로 마지막 빛을 발산하는 노을을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원래 계획대로 종점인 교토역까지 가기로 합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하루카 열차를 타고 교토역까지는 한 시간 이십 분 남짓이 걸립니다. 열차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심혈을 기울여 풍경을 찍는 여자는 저와 같은 관광객일 것이고, 제 옆에 품이 큰 교복을 입은 남학생은 노래를 크게 틀고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손거울을 꺼내 들었는데, 손거울에 반사된 흰 빛이 하루카 내부를 나비처럼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발견하고 작은 손을 꺼내 들어 빛의 움직임을 따라다녔습니다. 차창 너머로는 노을빛이 쏟아졌는데, 그래서 작은 빛을 따라다니는 그녀와 아이의 손짓이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였습니다. 아이의 긴 속눈썹이 유난히 팔랑이던 풍경.


일본은 내내 흐렸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10여 일의 날동안 한 번도 내리쬐는 햇살을 보여주지 않았던 야속한 하늘. 그래서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카를 탔던 날의 노을 풍경이 잊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17.10.25

대만 단수이

tamsui_6(3).jpeg 대만 단수이, 워터마린우에서 바라본 일몰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면 단수이(淡水)라는 도시에 도착합니다. 한자 그대로 '맑은 물'이라는 뜻의 도시입니다.

단수이 '워터마린우'에서 바라본 노을은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고, 저는 친구 B, C와 함께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 현실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우울한 기운이 슬금슬금 우리를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일몰 직전 도착한 워터마린우에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지기 전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로 커다란 흰 다리가 우뚝 솟아 있고, 거대한 구름이 풍경을 감싸듯 고여 있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구름들은 하늘이 색을 바꿈에 따라 시시각각 같은 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오래도록 일몰을 바라보았습니다. 해는 생각보다 빠르게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췄고, 마침내 붉은빛을 토해내듯 발산하며 하늘은 어두워졌습니다.

tamsui_6(6).JPG 대만 단수이, 워터마린우

신기루처럼 사라진 노을 대신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가로등에 불이 하나 씩 들어오며 워터마린우는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어떤 걱정들이 우리를 사로잡을까. 하늘이 품은 색깔들은 머릿속을 헤집는 갖가지 상념을 모두 몰아내었습니다. 또 사소한 걱정과 불안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2017.10.14

일본 나라

nara_6(2).jpg 일본 나라, 사기이케 연못

일본 나라의 사기이케 연못엔 우키미도라도 불리는 육각형의 정자가 있는데, 사슴과 관광객이 한데 섞인 복잡한 곳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어서 작은 정자 아래로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연못엔 뱃놀이를 하는 엄마와 두 아이가 있었는데, 그들이 노를 한 번 저을 때마다 배는 조금씩 나아갔고, 그들 중심으로 동심원이 강가에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가느다란 빗줄기가 토닥토닥 작은 점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요.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나무숲, 빛을 차단한 회색 하늘 아래 사기이케 연못은 그들로 인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2017.10.22

대만 타이중

taichung_6.jpeg 대만 타이중, 레인보우 타운

푸른 물감을 고르게 펼쳐 놓은 것 같은 이 곳은 타이중의 하늘입니다. 파란 하늘만큼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레인보우 타운을 만든 화가 할아버지는 올해 95세를 맞았습니다. 화가는 아직도 마을 한 편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9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년 같은 눈을 빛내고 있는 화가. 눈부신 햇살이 그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품은 다채로운 색들, 그 아래 펼쳐진 것들이
그 날의 살아 있는 순간과 장면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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