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라는 단어의 편리함
미국인 엄마와 그 아들을
태권도장에 소개해줬다.
아이는 몇 번의 트라이얼 레슨을 거쳐
도장에 드나드는 데 익숙해졌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듣지는 않았지만,
대기 시간이나
도장을 오가며
자주 마주쳤다.
쉬는 시간에는
같은 벤치에 앉아 물을 마셨고,
도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섞여 있었다.
마침 프리몬트에서 토너먼트가 열려
구경 오라고 초대했다.
그날 그녀는
자기 언니와
언니의 딸도 함께 데려왔다.
몇 달 뒤,
그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그 언니를 다시 만났다.
나는 인사를 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 그… 쿵푸 하던 데에서 만났었지?”
쿵푸라는 말은
질문처럼 들렸지만
확인을 기다리는 말은 아니었다.
생각하다가 나온 말이라기보다는,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을
그대로 꺼낸 것에 가까웠다.
나는 정정하지 않았다.
태권도와 쿵푸의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순간에는
그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 자체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대개
정확한 말을 찾기보다
말하기 쉬운 쪽을 고른다.
그 선택에는
악의도, 특별한 의도도 없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쉽게 반복된다.
며칠 뒤
도장에서 아이들을 다시 봤다.
각자의 수업을 마치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그 장면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호칭은
그렇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