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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니 Jul 22. 2024

퇴사 결정 비하인드, 직장 내 문제와 퇴사 이유

결국은 읽씹?

그렇게 감사하다 했던 그래서 열심히 하기로 한 회사를 퇴사했다.

나는 회사에서 최장기 근속자였고, 앞으로도 이 기록은 깨질 것 같지 않다. 동료들은 "어떻게 이 회사를 버텼냐"며 감탄 아닌 감탄을 자주 했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새로 입사한 동료는 3개월 만에 나와 함께 퇴사했다. 변함없이 여전히 퇴사율이 높았다. 이제는 누가 퇴사한다고 해도 그 이유를 알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퇴사를 적극 지지하게 된다. 오래 다닌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혹은 "곧 퇴사하겠지"라며 퇴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회사가 되었다. 나의 퇴사 역시 특정 사건 이후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토록 좋아했는데
나의 퇴사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가 가야하는 방향에 대한 투자가 없기에 프로젝트 수행 자체가 힘들었다.

일을 시작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수시로 피봇을 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했다. 외적으로는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정 반대였다. 투자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런칭하면 그 프로그램을 진행 할 강사는 결국 '내'가 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한계가 명확해지고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가 없었다. 강사 섭외를 요청하면 재능 기부 강사로 방향이 흘러가니 프로그램의 퀄러티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는 모객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 해서든 해보려고 했다. 다만, 비용측면에서는 아무리 감사한 회사라 해도 내가 비용을 들여서까지 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무엇을 하든 '돈'이 필요했지만 회사는 비용에 인색했다. 사실 입사 하자마자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변할거라 생각했고, 아니 변하길 기대하며 기다렸다.


올해 초에 나의 바램이 이루어 지나 싶었다. 대대적으로 홈페이지 작업을 했고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했으며 어찌 어찌 회사에서는 돈을 투자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될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새로 온 마케팅 전문가는 마케팅 예산이 20만원이며 그 마저도 간신히 얻어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하며 3개월만에 나와 함께 퇴사했다. 또 이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되었다.


결정적 이유

어느 회사 메신저에 관해 동료들과 얘기하기하게 되었다. 대표로부터 수시로 던져지는 메시지에 모두가 예민해져 있었고,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대표의 메세지 내용은 얼토당토않은 내용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마감 3시간을 남기고 20장짜리 지원사업 신청 서류를 수정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말이 수정이지 재작성해야했었다. 퇴근 직전 일을 주거나, 결정 사항을 손바닥 뒤집듯 해서 온 직원들이 멘붕이 온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올해 초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업무 진행 시트를 만들었는데, 기존에 대표가 진행했던 시트를 기본으로 하여 약간 수정해서 사용했다. 매번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용해왔다. 그러나 툭 던져진 메세지에는 뜬금없이 그 시트가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글씨체부터 표의 굵기, 컬러 수정까지 요청을 했다. 내부에서 사용하는 메모 형식의 엑셀 업무 시트였고 이미 사용하던 패턴과 형식이 이미 있었다. 이게 이럴 일인가 라고 한탄하며 모든일을 제쳐두고 두 사람이 함께 붙어 시트를 수정했다. 어쨌든 컨펌을 받아야 다음 일이 진행되기에 이해할 수 있는 시트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수정에 수정을 거쳤지만, 대표는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총괄 디렉터와 상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총괄 디렉터는 시트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업무를 전혀 모르는 자신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하여 전 직원이 대표에게 동일한 내용의 컨플레인을 받는 다는 것이었다. 함께 내린 결론은 대표가 재택하는 직원들을 무턱대고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생각하니 퇴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은 나에게 퇴사 결정을 내리게 하는 트리거가 되었다.


이런식으로는 계속 일을 할 수 없었다. 단지,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소비하며 회사를 다닐 수는 없었다. 2년 동안 김밥집에서 일했다면 적어도 김밥은 전문가 수준으로 잘 마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고, 카페에서 일했다면 커피나 카페 운영에 대해 알아 자영업에 도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식으로는 유용한 경험을 쌓기가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고, 오히려 나이가 많기에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2년만에 깨달았다.


퇴사를 결정하며....

솔직히 별거 아닌 것들에 많이 아쉬웠다. 늦은 나이에 얻은 정규직 회사원의 타이틀, 작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 일주일에 한두번 출근이 주는 활력, 내 자리까지 그 모든게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여러가지 상황을 이겨내고 업무를 맡아서 해낼 때마다 느끼는 그 성취감이었다. 그걸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퇴사를 고민한 가장 큰 부분이었다.


하지만 곧 이 회사를 두고 퇴사를 고민했던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퇴사 후 대표에게 그 간의 감사함을 표현하는 인사의 메세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고, 10일 후에 보냈다. 맘이 상한 적도 많았고, 회사에서 배려해준 부분도 분명히 있었기에 감사함 마음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었다. 보내자마자 숫자 '1'이 없어졌다. 당연히 답이 오리라 기대했지만 답은 없었다. 내가 늦게 보내 기분 나빴다고 하면 뭐 할말은 없다만, "대표님은 퇴사하는 모든 직원을 기분 나빠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요" 라는 인사담당자의 말이 생각났다. 보기 좋게 읽씹을 당하니 2년 동안 느낀 감사, 성취, 걱정, 기대, 즐거움, 좌절등 회사로 인한 모든 감정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정을 뗄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 동안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는 이 씁쓸함은 어쩔수가 없었다.


몇일 전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그만두며 예언한 내용들이 적중하고 있다며 신기해했다. 솔직히 나도 신기했다. 새로 입사한 대표와 언니 동생 하던 직원은 빌런이었고, 그로 인해 단기 고용 인턴은 한달만에, 핵심 멤버 3명은 이달까지 근무하고 한꺼번에 퇴사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본인의 퇴사일은 언제일지 맞춰보라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이번에도 나의 예측이 맞을지, 이 상황을 회사는 어떻게 대처할지 관전포인트다. 다음달 동료와 만나기로 한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ktx를 타고 다니며 수고를 했던 열정을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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