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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병규 Feb 12. 2022

겨울이라면 꼭 가봐야 할 보령과 공주를  탐 하다

당신이 모르는 꼭 즐겨야 할 식탐과 염서를 만족시킬 두 곳

2022년 올해의 목표는 책 100권 읽기다.


 매년 1월 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레 올해의 목표를 세울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매년 목표를 세워 왔다. 올해 이전의 예전 목표들은 대부분이 두리뭉실한 것들이 전부였다. 예를 들자면 “올해는 더 열심히 일하자.” “올해는 꼭 내가 원하는 것을 해내자”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는 나와 비슷할 것이다. 추상적이거나 두리뭉실하거나 혹은 여백이 많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 내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목표는 최대한 구체적이 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의 계획이라는 글을 쓰면서 계획을 세울 때는 여백을 두라 하더니 올해의 목표는 구체적으로 하라고 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해보니 목표는 디테일할수록 내가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들 중 하나 라도 더 실행에 옮기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목표가 디테일 해지니 그 목표 달성에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새해 목표의 시작은 아주 순조롭다. 100권의 목표 중 1월에는 9권의 책을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2권의 책이 끝나면 아마 11권이 될 것이다. 소설, 에세이, 자기 개발서, 요리서적 까지 내 책상 위에 있는 책이라면 그저 펼쳐 들고 읽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렇게 책을 좋아했던가? 싶을 만큼 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요즘이다. 여행을 가더라도 책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에 책 한 권을 꼭 가방에 넣고 여행지 검색어로는 예쁜 서점 , 도서관 이 빠지지 않고 있다. 1월의 여행지 부여와 공주 두 곳도 이런 이유로 결정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예스러움이 가득한 도시 속 예쁜 독립서점 탐방기 가 2022년 1월 여행의 테마가 되었다.


 우선 여행 계획부터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일촌 산악회의 지인에게서 천북 굴단지의 굴을 먹으러 가자는 제안이 왔다. 굴이라면 굴밥 , 굴찜, 굴 구이, 굴 무침, 생굴,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주어도 질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는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인이었던 것이다. 목적지가 생겼으니 보령의 예쁜 서점부터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보령 에는 마음에 드는 서점이 없었고 다행히 보령과 가까운 서산과 부여에 마음에 쏙 드는 서점이 몇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서산에는 매년 맛조개를 캐러 캠핑을 자주 가는 편이라 이번 목적지를 부여로 정했다. 이런 이유 말고도 부여 규암 마을의 책방 세간 이 검색한 곳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기에 부여로 가기로 한 것이다. 첫째 날 오전에 출발하여 아침 겸 점심으로 천북 굴을 실컷 먹고 이른 오후 규암 마을로 가서 쌉싸름한 커피와 향기로운 책 냄새를 맡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둘째 날의 계획은 공백이다. 이틀째부터는 혼자 움직여야 하기에 일부러 계획을 하지 않았다. 여백의 계획인 것이다.  그날의 기분이나 혹은 읽던 책에서 매력적인 장소가 나올 수 있으니 비워두는 것도 매력적으로 생각되었다.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는 준비물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짐이 상당히 많다. 여행용 짐 이라고는 백팩 하나에 갈아입을 옷 1벌 과 양말 한 켤레 그리고 수건 한 장, 마지막으로 아이패드를 넣으면 끝이다. 그러나 다른 짐이 많다. 바로 캠핑 장비가 내 차의 모든 공간을 차지하는데 트렁크 공간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뒷좌석 공간까지 캠핑 짐을 수납해야만 할 지경이다. 이러다 보니 이런 내 짐 꾸리 기를 보는 동생은 “그냥 이사를 가라.”라는 농담도 심심치 않게 던지곤 한다. 어쩌겠는가. 하룻밤을 지내더라도 안락하고 포근하며 이런 곳에서 지내고 싶다 라는 느낌이 들어야 만족스러우니. 그래서 나의 텐트를 본 사람들은 내 텐트를 보고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신혼집 에디션 텐트]

모든 짐은 떠나기 전날 밤에 차에 수납을 해놓는다. 그래야 새벽에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나의 반려견 마음이 산책을 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나고 나면 소풍을 떠나기 전 들떠있는 아이처럼 나도 들뜬 마음으로 침대에 눕는다.


 1일 차 보령 천북면으로


 새벽 5시 30분. 해가 아직 오르지 못한 어스름한 새벽에 차에 시동 버튼을 눌렀다. 차 앞유리에 잔뜩 어려있는 성애들이 녹을때 까지 기다려줄 셈이었다. 차가 데워지는 동안 반려견 마음이에게 사료 한 무더기를 주고 이내 문단속을 해두었다. 차에 올라타자 그새 차가 데워졌던지 안에 있던 온풍이 나를 훌고 지나갔다. 보아하니 오늘은 아침부터 배가 많이 고플 예정 일듯 하다.


 이모부께서 굴 양식업을 하시기에 항상 전라남도 고흥 굴만을 먹어온 나에게 서해 굴은 첫 경험이라 설레는 기분이었다. 알고 먹으면 더 맛나기에 서해 굴에 대해 알아보았다. 서해 굴은 남해 굴에 비해 크기가 작으며 대신 알이 옹골차며 굴 자체의 향과 맛이 진해 김장용 굴. 생굴로 먹기가 좋다 고 한다. 보령 천북 굴단지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에 위치한 굴구이 단지로 보령의 8 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굴은 특히 굴밥에 잘 어울린다고 하니 기대되는 마음에 3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착한 천북 굴단지는 전부 굴 가게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든 가게가 굴 가게라니 외국인이 와서 본다면 입을 쩍 하니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을 광경이 아닐까.


 굴이 가득 들어있는 망태기를 가게 앞에 산처럼 쌓아놓기 시작하는 상인분들의 표정에서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마 오늘 저 많은 굴들을 전부 팔아 넉넉한 매출 숫자 보는 재미를 떠올리는 듯싶다. 어느 가게 앞에는 어릴 적 물을 가득 받아 물놀이를 하던 고무대야 속에도 굴이 가득 담겨 있어 물속에서 굴들이 물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겨울의 냉기 속에서도 살아가는 뜨거움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열었고 손님을 기다리시던 이모님들이 외치기 시작하신다. “일루 와요 서비스 많이 줄게.” 호객행위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헛헛이 펄럭인다. 이 가게 저 가게 둘러보고 싶은데 이모님들의 눈을 마주치면 그 가게로 가야만 할 것 같아서 눈을 피하며 구경하려니 여간 힘들다. 삶의 현장을 한 발자국 떨어져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때마침 가려고 했던 가게가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우리 일행은 냉큼 가게로 들어갔다. 드디어 굴 잔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천북 굴단지 포구 와 굴들
천북 굴단지 4동 모습 [천북 굴사랑 수산] 이 곳이 오늘의 목적지

 굴구이와 굴찜 반반 메뉴와 굴 돌솥밥 하나, 굴 칼국수 하나를 주문했다. 굴 구이와 굴찜은 굴이 머금고 있는 수분으로 익혀지는 것은 같지만 불에 직접 가열되어 익어가는 맛과 뜨거운 수증기와 굴의 수분으로 익어가는 굴찜의 맛 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굴 구이가 더 맛있다. 숯불에 구우면 더 맛있지만 가스 불에 굽는 굴 구이도 맛나다. 개인적으로 굴구이가 더 맛있는 이유는 구운 굴이 좀 더 쫄깃한 식감을 가지기 때문인 것 같다. 굴 구이는 쫄깃하면서도 짭조름함에 바다향기가 입안으로 한 번에 밀려들 온다. 다만 굴 구이의 아쉬운 점은 먹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굴을 구우면서 튀어대는 굴 껍데기와의 전쟁이다. 더욱이 구워진 굴울 까면서 묻어 나오는 굴 껍데기의 잔재들이 여간 귀찮다. 그래서 나는 찜을 더 선호한다. 촉촉한 굴찜 역시 겨울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별미이니까. 굴찜 이야기 가 나왔으니 오늘은 외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만들어주시던 어머니의 추억 레시피를 공개할까 한다.

 굴을 찐 후 전부 까서 굴을 큰 볼에 모아둔다. 그러면 굴에서 가장 맛있는 국물이 흘러나오며 흥건한 상태가 된다. 이곳에 찬물을 적당히 넣어 국 느낌이 되게 만들어준다. 이 국에 쫑쫑 썰어놓은 파 와 참기름 조금 그리고 다진 마늘 아주 약간 , 청양 고추 다진 것 을 넣고 휘휘 저어주면 완성된다. 이 굴국의 이름은 피국 이라 한다. 왜 피국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흥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어릴 적 외할머니가 굴을 캐오시면 으레 해주시던 국이라 하셨다. 난 30대 초반에 처음 먹어본 이 피국에 완전히 반했다.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따뜻한 감동과 시원하게 목을 넘어가는 굴 향기 가득한 국물 그리고 포슬포슬한 굴의 식감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만약 까놓은 생굴이 있다면 굴을 살짝 데쳐서 데친 육수 조금 과 함께 위 레시피로 피국을 만들어보기를 적극 권하겠다. 비록 찜 굴로 만든 것만은 못하지만 생굴로 만든 피국도 맛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피국 한 그릇만 놓아도 훌륭한 술안주가 될 수도 있으며 소면을 함께 넣고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도 될 수 있다. 어머니께서는 간혹 밥도 훌훌 말아서 드시곤 하신다.


 굴찜까지 다 먹고 나서는 굴 돌솥밥으로 탄수화물을 보충하였다. 옹골찬 돌솥 위에는 나무 뚜껑이 닫혀있다. 그 뚜껑을 뚫고 올라오는 하얀 김 속에는 달콤한 바다 향이 들어있다. 돌솥이 테이블 위에 내려지자마자 뚜껑을 열어젖혔다. 뜨끈한 밥 위에 살포시 올라와져 있는 굴과 콩, 콩나물, 단호박이 고슬고슬 익어있었다. 달래 간장을 밥 위에 골고루 뿌려주고 슥슥 밥을 비볐다. 만약 배가 불러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다면 나는 굴칼국수 , 굴라면 말고 꼭! 굴밥을 드셔야 한다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더욱 이 굴밥의 반찬으로 굴파전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이날 우리는 굴 파전을 서비스로 받았고 굴 칼국수 한 그릇 도 먹었으며 그것도 모잘라 생굴 한 접시도 추가로 먹었다. 그야말로 굴 잔치다. 이렇게 먹고도 저녁에는 생굴과 훈연해놓은 통삼겹살 그리고 잘 익은 김장김치를 곁들인 굴 삼합을 먹을 계획이라니. 그저 행복하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규암마을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책방 세간에 가보고 싶었다. 서둘러 길을 가고 있던 나에게 일행의 전화가 왔다. 가던 길에 있던 우유 창고라는 곳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계획에는 없던 곳이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꼭 가보고 싶다고 다른 차량은 이미 그곳이라 했다. 차를 돌려 우유 창고로 향했다. 다행히 지나오던 길에 우유 창고라는 큰 글씨가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는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동물 울타리 안에는 아기 소 한 마리, 토끼 여러 마리, 양 한 마리가 생활하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도 토끼들은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고 아기 소는 무서운 듯 집처럼 생긴 창고 벽에 딱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가장 선임인듯한 양은 구경온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입을 오물오물하는 것이 꼭 “빨리 나에게 간식을 줘” 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은 개화 목장 우유 창고에서 운영하는 농장체험과 카페였던 것이다. 주차장 바로 앞의 풍경은 일종의 미끼 상품 같은 것이라고 해야 될 듯하다. 카페 뒤쪽으로 입장료 혹은 체험비를 지불하면 목장투어 와 치즈, 버터 만들기 같은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시간만 여유로왔다면 치즈 만들기는 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움 한가득이다. 이곳에서 아이스크림과 빵 한 개를 구매해 나누어 먹었다. 아이스크림 은 바닐라로 먹었는데 무조건 바닐라 맛으로 드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정말 진득하니 고소한 우유 맛이 일품인 아이스크림이었다. 달콤 쫄깃한 빵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 함께 먹으니 더 좋았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행운 같은 디저트였다. 여행을 떠나서 마주하는 우연은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설렘을 줄 수도 있고 불편함을 가져올 수도 있다. 오늘 같이 행운 같은 즐거움이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런 예측할 수 없는 느낌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 지게 만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 일듯 하다. 이 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이 하나 생긴 것이니까.

 규암마을에서도 이런 우연이 다가왔다. 나에게는 책방 세간의 실망스러움 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일행 중 한 명에게는 아직 판매되지 않는 멋진 공예품을 구매하게 되는 우연이 있었다. 규암마을에서 가장 먼저  가본 곳은 123 사비 전망대였다. 규암마을 무료주차장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일종의 한강 산책로 같은 곳이었는데 자전거 도로가 길게 뻗어있고 주민들 몇몇 분이 산책을 하시거나 조깅을 하던 중이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 위로 반영되는 긴 다리가 풍경에 운치를 더 해 주었다. 전망대는 코로나로 인해 폐쇄가 되어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산책로 위의 경치만으로도 좋았다.


주차장 바로 앞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있다.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오던 80년대 초 모습이 보이는 건물이다. 사라진 간판의 자리에 세월의 흔적과 건물 곳곳에 무늬처럼 새겨진 균열들이 이 건물의 나이테 같았다. 이런 건물에 선화 핸즈라는 공방이 있었다. 부여와 백제를 테마로 나전칠기와 섬유공예를 하는 곳이라는 글이 적혀있는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있었다. 이곳 입구에 있던 풍경소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맑고 청아한 소리 가 너무 좋았다. 여름이 되면 타프 끝 한쪽에 달아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청아한 소리에 절로 눈을 감을 것만 같았다. 선화 핸즈에서 조금 나와 마을로 들어서면 부여 서고라는 편집샵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주인장님의 부인께서 직접 만드신 염색공예제품들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샵을 너무 에쁘게 잘 꾸며 놓으셨던지 테이블 하나 와 커피 한잔만 있다면 그야말로 카페 부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주인장님께서 부인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판매하신다고 자랑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부럽기까지 했다. 나도 그 사람의 멋진 작품들로 예쁜 편집샵을 해볼까 싶기도 했다. 미래의 반려자 샵 홍보를 이렇게 미리 해본다.


 이제 책방 세간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곳이기에 더 큰 실망으로 다가온 곳이다. 레트로 한 외관과 미닫이 문이 주었던 설렘은 책방 세간의 책장을 보며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곳곳이 비어져 있고 책은 관리받지 못한 듯 색바람과 뒤틀림으로 애처로웠다. 오래된 책이라도 관리받고 애정이 묻어 있다면 그 흔적들은 고스란히 책에 남아 책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책방 세간의 책들은 [판매하는 책입니다. 조심히 살살 보아주세요.]라는 표딱지 덕에 더 애처롭게 느껴졌다. 주인장도 소중히 하지 않는 책을 처음 그 책들을 접하는 이들에게 살살 보아 달라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아마 헌책방의 책들도 이곳의 책보다는 더 소중히 다루 어질 것이다. 담배가게였던 곳에서 책방이자 사랑방이 되었다고 한 소개를 보며 설레었던 내 기대가 무너져버려 모든 것들이 실망으로 다가와서 일까? 커피는커녕 이곳에 머무는 것조차 싫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실망 감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가 떠올랐다. 헌책방과 사랑방의 결합. 내가 읽은 책들을 따로 모아 하나하나 서평을 달고 손님들이 마음껏 읽어도 보고 구매도 하는 헌책방을 운영해 보고 싶어졌다. 향기로운 커피도 무한 리필해주고 나의 또 다른 취미인 바비큐로 멋진 브런치 메뉴도 만들어 함께 팔면 행복할듯하다. 취미생활이 일이 되면 이미 취미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할 것인가. 하루 종일 책 읽고 커피 내리고 바비큐를 굽는 일상이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아마도 나는 책방 세간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원했던 책방의 모습을 찾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외관은 너무나 정겹고 예쁜곳이다,
이 곳이 과연 책방이 맞는것 일까?
이곳의 책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알쓸신잡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건축가 유현준 님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도시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패턴은 재료는 단순하지만 형태가 복잡할 때다.”  규암마을은 아마 유현준 님의 말과는 정반 대였을 것이다. 형태는 단순하고 재료는 복잡한 모습이었다. 통일성 있게 만드려고 노력한 흔적의 상가 간판들이,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한 샵들 대부분이 커피숍이라는 점이, 백제라는 테마 가 마을의 형태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낡고 오래된 건물들과 한옥처럼 지어진 몇몇 건물들 그리고 아파트들이 복잡한 재료를 잘 보여주었다. 결론적만 말하자면 안 이쁘다 가 아니라 너무 아쉬웠다. 너무 좋은 콘텐츠들이 있음에도 만들다가 포기한듯한 마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어 활기찬 거리가 되어주기를 바란 기다림이 너무 길어져 힘겨워하는 마을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좋지 않았던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방 세간 대신에 [북토이]라는 예쁜 서점이 나를 즐겁게 해 주었고 이곳에서 책을 한 권 구매해 그동안 많은 책을 선물해 주었던 분에게 작은 선물도 했다. 그리고 아직은 한적한 규암마을의 골목길 이 너무 좋았다. 문이 닫혀있던 몇몇 공방들을 기웃기웃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고 살짝은 으스스한 스튜디오 세트장에서 사진 찍는 재미도 좋았다. 나는 규암마을이 그저 시도해보다 지쳐서 몰락해가는 마을이 아닌 떠오르는 핫플레이스가 되길 희망한다. 내가 다음에 찾았을 때 이곳에 예전에는 이런 곳이었어! 라며 자랑하고 싶다. 다만 커피숍과 길거리 음식만 잔득있는 곳이 아닌 이야기들이 살아있는 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선화 핸즈와 부여 서고와 같이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마을이 되길 희망한다. 이런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규암마을을 떠나 오늘의 내 집을 지을 곳으로 향했다.

규암마을 스튜디오 모습 과 마을 지도

 오늘의 내 집터는 청양 동강리 오토캠핑장이다. 규암마을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캠핑장으로 캠핑장 정면으로는 유유히 강이 흐르고 있는 모습과 저렴한 입장료가 마음에 들어 예약을 하게 되었다. 2일 차 일정이 계획되어있지 않으므로 여차 하면 캠핑장에서 느긋이 늦잠도 자고 게으름을 피울 요량이었다. 비용이 저렴하게 되면 마음의 여유로움도 절로 따라오는 것 같다.  함께 한 일행들과 함께 텐트를 설치하고 내부를 순식간에 정리하였다. 고개를 휙 돌리면 저곳이 정리가 끝 있었고 다른 곳으로 고개를 휙 돌리면 그곳도 정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혼자서 내 집을 짓는 느낌과는 다른 기분이 이었다. 오늘의 보금자리를 함께 만들어가 가는 시간도 여행의 즐거움이 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여행을 왔을 때의 가장 즐거운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함께 보고 즐긴 것들을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나누는 시간. 그리고 나의 잔잔한 요리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즐겁다. 오늘의 메뉴는 지난주에 미리 구워 두었던 통삼겹살 바비큐와 천북 굴단지에서 사 온 생굴 , 마지막으로 화룡점정 살짝 새콤하게 많이 익어가는 김치를 합친 삼합이다. 그릴에 훈연으로 구워놓은 통삼겹살은 번거로움과 오랜 시간이 들어가지만 수육으로 먹는 삼겹살과는 큰 차이가 있다. 훈연 향 , 그리고 부드럽지만 탱글한 식감이 매력적인 요리이다. 통삼겹살 한판을 소금, 후추, 설탕, 파프리카 가루, 마늘 파우더, 양파 파우더, 그리고 나만의 비밀 가루를 넣어 럽을 만든 후 고기에 골고루 발라준다. 30분 정도 냉장고 에어 넣어 드라이 과정을 거친 후 그대로 그릴에 구워 내어 소분을 한 뒤 진공포장을 해놓고 바로 급냉동시켜두었다. 이렇게 준비해두면 따뜻한 물에 20~30분 넣어두어 데우면 처음 구웠을 때와 비슷한 맛과 향이 보존된다. 이렇게 구워둔 고기는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삼겹살 파스타, 삼겹살 김치볶음밥, 심지어 삼겹살 샌드위치까지 가능하다.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첫째 날의 여행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2일 차 공주로 떠나는 여행


 잠자리에 누워 강릉에서 홀로 보냈던 시간을 그려보았다. 커피의 향기와 책장을 넘기는 소리, 가끔씩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책이 가득한 예쁜 책장. 책 읽을 틈 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다시 한번 그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키워드를 독립서점으로 검색해 보았다. 대형 서점보다는 독립서점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는 인터넷 기사와 함께 공주 원도심에 생겨나는 독립서점 이야기의 블로그 글도 나왔다. 블로그 속 서점들은 너무 예뻤다.  블로그 속 글들은 나를 공주로 안내해주었다. 리스트 업을 해보자면 [가가 책방], [책방 느리게], [블루프린트 북], [곡물 집&데시그램 북스] 이렇게 네 곳이 나의 다음 목적지가 되었다.


 간단한 아침 식사와 짐 정리를 마치고 나니 오전 11시였다. 홀로 여행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네 곳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브런치로 간단하게 맛있는 빵과 커피를 즐기기로 했다. 혹시 구매하고픈 책이 없다면 오늘은 전자책으로 시간을 보내려 한다.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종이 책을 구매하기가 많이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재미는 종이 책이 월등히 좋다. 다만 비용의 부담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구독성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더욱이 비용적인 면에서 비교가 많이 된다. 전자책을 장점은 정말 많은 책을 손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읽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은 허전함 과 부족함이 까끌까끌하게 남는다. 아마도 종이 책을 읽을 때 사용하던 촉감, 청각, 후각, 시각 적 느낌들이 없거나 다르기에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이유로 자꾸 서점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점 혹은 책방에 갔을 때 다가오는 책의 향기가,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감촉이 너무 좋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은 [가가 책방]이었다. 가가 책방은 무인 샵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작고 정겨운 모습의 책방이었다. 다만 나같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나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은 방문하기 힘든 구조이다. 오픈된 무인 책방이 아니고 잠겨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문 앞 책방지기 에게 전화를 드리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 같다. 소심하고 용기 없는 나는 그냥 밖에서 기웃기웃 구경만 하였다.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아직 들러봐야 할 책방이 3곳이나 남아있기에  ‘오늘은 지나쳐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린 책방이었다면 나 같은 소심쟁이도 조금은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공주에 다시 간다면 꼭 들어가고픈 곳

 두 번째 책방은 [책방 느리게]다. 공주의 책방 투어가 좋은 점은 바로 산책하듯이 걸어 걸어가다 보면 한 곳씩 나온다는 점이다. [가가 책방]에서 산책하듯 시내 쪽으로 걷다 보면 금세 [책방 느리게]가 보인다. [책방 느리게]에 들어셨을때의 느낌은 작고 포근한 공부방 느낌이었다. 오밀조밀 책들이 놓여 있고 숨겨진 구석 한편에 책방 주인께서 자리 잡고 계셨다. 주인장의 배려가 담긴 무신경함이 좋았다. 이곳에서 처음 접해보는 독립 서적들이 인상적이었다. 대량으로 인쇄되어서 나오는 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종이와 활자가 살짝 어색하기도 하고 표지에서도 세련되지 못한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색다름 이 나에게는 너무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특히 저자 자신 책의 서평에서 본인의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지기에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내 책상 위에서 내가 읽어주길 기다리는 8권의 책이 없었다면 아마 한 권을 구매했을 것이다. 다음에는 꼭 한 권 구매해보리라 생각하며 [책방 느리게]의 탐험을 마쳤다.

[책방 느리게] 큐레이터 되어진 책들도 너무 아기 자기 예쁜 모습
독립 서적 한권 꼭 구매 해보고 싶다,

 세 번째 책방은 [블루 프린트 북]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네 곳의 책방 중 가장 좋았던 곳이다. 반원형 건물에 1층은 오픈된 카페가 있었다. 건물 앞 제민천 산책로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곳 주민이었다면 산책하다 스윽하고 커피 한잔을 사들고 책을 보러 가고 싶은 풍경으로 느껴졌다. 특히 1층의 카페에서 3층의 책방 공간으로 올라가는 비밀스러운 계단이 매력적이다. 한 칸 한 칸 올라가다 보면 마치 나만의 비밀스러운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상자 속 책들의 숲 구석에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도 있었다. 책방의 속 다락방 공간은 “여기 편히 앉아”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느긋이 앉아 책을 읽으며 창밖 풍경을 즐기는 상상을 해보았다. 프랑스 세느강에서 즐기는 풍경보다 더 좋지 싶다. 더욱이 주말에는 무인으로 운영되어 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더없이 좋아 보였다. 천천히 책을 둘러보고 한두 페이지씩 읽어보다 보니 무려 1시간을 훌쩍 넘겼다. 내님과 함께 공주로 여행을 오게 된다면 [블루프린트 북]은 꼭 다시 한번 더 와볼 곳으로 메모해두었다.

 마지막 책방은 [곡물 집 & 데시그램 북스]였다. 우리의 곡물이란 주제를 가진 카페와 책방이 함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먹어본 곡물 라테는 일품이었다. 고소하면서 입안 가득 남겨지는 풍미가 너무 좋았다. 이날은 손님이 많아 실내 테이블 자리가 없어 야외 툇마루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살며시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 실내에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았던 점은 실내에는 손님이 많아 시끄러웠는데 실외는 아무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다 보니 조용히 음악과 함께 커피, 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이곳의 한옥스러운 외관이 툇마루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기에 운치를 더해주었다. 이곳의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책방지기의 서평이었다. 책마다 책방지기의 서평이 있는데 서평을 읽고 있으니 마치 이 책은 내가 꼭 읽어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곳의 아쉬웠던 점은 책방이 메인 테마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좁은 테이블 공간에 손님이 많다 보니 시끄러운 분위기도 좋지 못한 인상으로 남았다. 시끌벅적한 예쁜 카페 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맛있는 음료를 마시고 싶다면 강력 추천하고 싶지만 분위기와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만약 봄이나 가을에 퇴청 마루 혹은 2층의 테라스 같은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다시 한번은 가서 맛있는 음료와 맛있는 서평을 즐기는 것 은 정말 좋을 듯하다.

곡물집 외경 과 내부 책방 모습
책방지기의 서평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을 꼭 사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
곡물집 주방 풍경
날씨가 좋다면 곡물집의 가장 명당 이라고 생각된다.

여행의 정리

 부여의 규암마을을 돌아보면서 경주 경리단길에 가보고 싶어 졌다. 규암마을과 경리단길 어떤 차이가 있을지, 경리단길은 왜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인지 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경리단길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마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가 궁금한 것일 수도 있다. 규암마을이 핫플레이스 되길 바라지만 경리단길과 는 다른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여에서 얻은 헌책방의 아이디어도 잘 정리하고 다듬어서 준비를 시작해보아야겠다. 책방지기 가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공주 책방 투어는 한번 더 도전해볼 생각이다. 정말 한 곳 한 곳 긴 시간 머물며 내 기억 속에 다시 담아두고 싶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공주의 책방을 가보지 못한 곳이 아직 몇 군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공주로 여행을 떠난다면 더 자세하게 책방 여행기를 남겨놓고 싶다.


이렇게 1월 보령, 부여, 공주 에서의 진미와 염서를 탐하는 여행 이야기를 끝맺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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