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살아보기, 난징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갑자기 오게 된 중국에서 1년 정도 살았다.
이민이 될 줄 알았지만 금방 다시 돌아오게 되었지만 내겐 좋은 기억들이 꽤 많다. 10년도 더 넘은 10대 시절의 경험이라 제한적이고 기억을 꺼내는 것이 어렵지만.. 증발되기 전에 최대한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기록해 보아야지.
중국국제학교
부모님이 다니시던 회사의 해외 발령으로 중국을 오게 되었다. 어려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어른들의 입장에선 낯선 외국에서 적응하기 위해 이것저것 신경 쓸 것들도 많고, 회사 내 정치질과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살아남기가 힘드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별다른 걱정 없이 해외 주재원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았다. 그중 가장 좋았던 것은 현지 국제 학교를 다닐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기간이 짧아서 가끔 이력서에 한 줄 정도 쓰이는 정도이긴 하지만.
학교를 다녔던 기간은 몇 개월 밖에 안될 정도로 짧긴 했지만, 당시 한국 고등학교의 힘든 수업과 야자를 막 경험하고 갔었던 터라 국제 학교의 충격은 좀 컸다. 미국인 출신 교장과 미국 시스템 커리큘럼에 반 학생들도 스무 명 내외였고, 정규 수업이 오후 2-3시 정도면 끝나서 마치 초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사복에다가 염색도 하고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하고. 물론 그곳에서도 영어와 중국어 과외, 영어캠프 등등 한국식 사교육은 계속되었지만 영어 말고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딱히 없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교육 방식 자체도 좀 더 참여식 개인 맞춤인 게 굉장히 자유롭게만 느껴졌다. 교과서 대신 모두 1인 1 맥북을 지급하고 수업을 듣는 점도 충격이었다. 수학여행으로 베이징을 갔었고 이벤트와 파티가 참 많았다. 왜 굳이 비싼 유학을 가려고들 하는지, 역시 돈이 좋은 건가 싶은 순간이 있었다.
국제학교에서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단연 수학이었다. 오랫동안 미술을 했고 수학을 특별히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늘 선행학습을 해왔던 탓에 한두 학년 이전의 수업이라 마치 복습하는 느낌이었다. 수업시간에 공업용 계산기를 사용한다는 점도 신기했다. 당연하게도 유독 한국인 친구들 수학 성적이 우수했고, 그래서 그런지 수학 선생님께서 유독 한국 학생들을 예뻐하셨다.
체육시간의 케이팝
학교를 다니며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다면 체육/PE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체육시간은 체육복만 입고 국민체조를 하거나 발야구 정도 하면서 거의 쉬는 시간 수준이었는데, 여기서는 협동심 게임을 하고, 매번 운동장을 뛰고, 수영을 배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체육 선생님이었다. 체육 시간이다 보니 아무래도 좀 더 자유로웠고 수업 시작 전에 몸풀기로 뛰거나 쉬는 시간 중에 본인 취향의 음악을 종종 틀어주셨는데 그게 거의 케이팝이었다. 티아라, 카라, 소녀시대 등 온갖 걸그룹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독 티아라의 복고풍 음악을 좋아하셨다. 중년의 파이팅 넘치는 백인 선생님이었는데 반전으로 소녀스러운 음악이 나오니 한국인 학생들 입장에선 좀 더 친근하고 재밌었던 것 같다.
외국에 있으면서 특히나 이렇게 한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는데, 당시에는 강남스타일이 확 뜨는 시점이었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 한국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춤을 추는 현상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주류까지는 아니지만 대중문화로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존재감을 심어주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첫 인종차별
학교에 모두 좋은 사람들만 있던 것은 아니다.
독일 친구들과 (또 다른) 미국인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었다. 특히나 어린 나이에 다양한 인종이 있으면 인종 이슈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속한 학년엔 아무래도 지역의 특성상 한국인들의 비중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많은 게 독일과 중국계 미국인 친구들, 그다음 미국, 다른 유럽 국가 친구들이 한두 명씩 있었다. 생각보다 다양하진 않았다. 학년마다 그 분위기가 조금 달랐지만 하필 나의 반에는 한국인 vs 그 외 유럽 친구들 이렇게 나뉘었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많아서 오래 사이가 안 좋았던 상태였다.
한창 사춘기 시기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살짝 신경전과 긴장감 속에서 외국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인 친구들과 주로 어울렸던 것 같다. 다녔던 기간이 좀 더 길었으면 친해졌을 기회가 있었으려나.
아무래도 동양인은 한국인 친구들 뿐이었고 그 외에는 유럽계나 미국인들이다 보니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머릿 수 때문인지 유독 독일인과 한국인들끼리 서로를 물과 기름처럼 싫어했던 것 같다.
학교에 좋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대놓고 차별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수영 수업 후 샤워실에서 씻고 있을 때 유독 한국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오래 씻냐면서 빨리 나와! Seriously! 화를 내면서 경멸을 했던 선생님이 기억에 난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유독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대하셨다. 당시 담당 선생님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대놓고 티는 안 냈지만 몇몇 선생님들이 전학 왔을 때 또 한국인이냐는 식이거나, 비슷한 시기에 전학 온 독일 학생과 미묘하게 대우가 다른 경우라든지.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차별 없이 대하시긴 했지만 모두에게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중국인과 중국문화
중국에 가기 전까지 들었던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기대치가 낮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겪어본 중국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점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거주했던 지역은 지방 정도의 규모였음에도 뭐든 스케일이 크고 인프라도 잘 구축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내가 만난 서민들은 친절하고 순박한 편이었다.
당시 어린 나이라 경험과 생각도 상당히 한정적이지만, 생각보다 모던하고 물가도 저렴하고 한국보다 덜 한 점들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공중 화장실 같이 청결적인 부분이나 조금은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부분인 있긴 했다.
해외에 나와서 특히나 많은 중국인들을 만나게 되고 어딜 가던지 차이나타운이 있다. 탄탄한 커뮤니티가 있어서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내가 만나본 중국인 이미지는 (당연하게도) 한국과 꽤 비슷하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나 2세들의 경우 교육 수준이 높거나 부유한 경우들이 많다. 또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도 하고 문화차이가 심하지 않아서 그런지 서로들 잘 어울리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인 커플들도 많지만 유교적 사고방식의 정도가 맞는 사람들 중 한-일 만큼 한-중 커플도 꽤 많이 봤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