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의 백수

여행하듯 살아보기, 브로츠와프

by 민지글


폴란드 브로츠와프

사실 오기 전까진 폴란드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한국과 거리가 너무 먼 생소한 국가이고, 이름도 자꾸 핀란드랑 헷갈리지만 북쪽에 위치한 동유럽 국가이다. 브로츠와프라는 도시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곳은 부모님의 또 다른 도전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방학기간에 잠깐씩 왔었다가, 2022년, 호주 유학을 앞두고 6개월 정도 살게 되었다.


늘 여름에만 왔다가 찐 유럽의 겨울을 느껴볼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폴란드 사람들을 소통할 기회가 없었던 게 좀 아쉽지만. 무엇보다 유럽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주변 유럽 국가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유럽은 다른 지역의 유럽 관광 도시들보다 물가도 저렴하고 딱히 음식이나 즐길 거리들이 적고,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화려함보다는 삭막한 느낌이 있다. 폴란드에서 살면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미인이 정말 많다는 것, 그리고 대형견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춥고 건조한 날씨, 약간의 삭막함, 인구 비율과 밀도가 적은 곳.

싸고 맛있는 빵과 케이크, 감자, 공원, 인형 같은 여자들, 젊은 가족들.

목줄 없는 대형견들, 도서관, 유일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던 스타벅스, KFC가 참 많고

크리스마스 마켓, 4시에 해가 지는 쓸쓸한 겨울. 유난히 하늘이 가까이 보이는 곳.



화려한 궁전 속 홀로 남겨진 기분

유럽에 살 기회가 있어서 좋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큰 갈등과 상처를 받았다.

그 과정이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에너지는 다시 독립에 대한 열망과 삶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동시에 여행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시점이기도 하다. 자기 계발을 하면서 성취감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여행이 일상이 되다 보니, 사실 인연에 큰 의미 부여하는 편이 아니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딱히 적극적이지 않고 기대하는 일도, 상처받는 일도 없고 잘 잊어버리는 편이지만 상대가 가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은 나에겐 가장 어려운 존재들이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엔 잘 지내다가도, 이상하게 가족들 앞에서 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사춘기 소녀가 되고 갑자기 없던 감정이 쏟아지고 나도 모르게 감정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 갑자기 너무 작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인간관계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고 갈등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스물다섯 정도면 그래도 많은 시간이 지나고 꽤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


미성숙한 나와 이기적인 어른들의 태도를 견딜 수 없어서 얼른 탈출하고 싶었다.

나는 계속 살아야 했고, 생각을 해야 했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기 위해서 도망치고 독립해야 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를 벗어나 독립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내가 더 큰 그릇과 힘을 가진 어른이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더 큰 어른이 되어서 다시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때. 더 이상 감정의 대화가 아닌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어쨌거나 상처는 언제나 쓰라리지만 그만큼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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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유럽에 있긴 했지만 당시 코로나 때문에 제한된 환경이었다. 사실 유럽에서는 코로나 당시 보건 규제나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굉장히 여유롭였고 한국만큼 마스크라든지 자가격리나 검사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증상이 있거나 이미 한 두 번씩 걸려도 크게 생각하진 않는 듯했다.


특히 폴란드는 인구 밀도가 굉장히 낮은 탓도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과 비교했을 때 생활하기에 굉장히 자유롭긴 했지만 당시 호주 유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 없이 탈출해야 했다. 그래서 거의 여행도 안/못 가고 사람도 못 만나고 카페를 가거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또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과의 갈등은 더 깊어져 겨울은 유난히 너무 길고 외로웠다. 6개월 동안 백수 혹은 주부 생활이긴 했지만 나름의 갓생을 살려고 노력했다.


당시 시차로 학교의 실시간 새벽 3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카페와 도서관을 가고, 계획을 세우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복근을 만들고, 셀프 컷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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