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살아보기, 알칼라
유럽에 대한 환상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최고의 여행지가 유럽이라는 특징을 발견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서양인들 친구들도 유럽이라면 똑같이 모두 환장(?) 하는 분위기다. 실제로도 그런 요소들이 있지만 유럽 = 예술적 낭만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유럽이라고 다 같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유럽은 대부분 서유럽 국가들인 것 같다.
선진국의 여유 때문인지 확실히 뭔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유럽 사람들도 그렇지만 옛날 건축물들을 잘 보존해서인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을 준다. 곳곳에 예술적인 감성이 가득하고 확실히 모던한 화려함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그 속에 있다 보면 선진국의 여유가 뭔지 없던 감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부럽기도 하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팍팍한 자본주의 삶에서 여유 넘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을 보자면 참 다르고 묘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현실은 살기엔 불편한 점들이 더 많다. 아마 너무 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유럽을 많이 알거나 다양한 곳에 가보진 못했지만 짧게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교환학생과 가족 찬스로 몇 개월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불편한 점이라고 하면 가장 크게는 동양인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인종차별이 있다. 한국에 비해서 시스템 자체가 굉장히 느리고 오래되고 청결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발전보다는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분위기라 도시에 익숙한 사람들이 살기에 조금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여유 낭만과 예술은 그런 불편한 요소들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어쨌든 개인적으로 유럽은 선진국의 태도를 배우거나 예술적인 미적 감각을 배우고 관광하기에 좋지만, 굳이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현대 문명의 편리함과 속도에 길들어져 있어서 그런가.
교환학생
대학생일 때 학교 내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해외에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당시 다니던 학교의 장점 중 하나인 해외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장기와 단기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단기를 선택했다. 한 학기 하와이 교환학생 옵션이 있긴했지만 당시엔 졸업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방학 중의 단기 프로그램이라 기간이 한 달 정도 밖에 안되었고 경험이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도시를 느끼기에 한 달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교환학생이라고 했지만 스페인의 한 학교에서 어학당처럼 짧게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나는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스페인어를 교양 수업으로 듣긴 했지만, 스페인어가 아예 처음인 학생이 대부분이라 한 명 빼고 모두가 기초반 레벨의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수업이나 커리큘럼 자체가 기간이 짧아서 딱히 기억에 남진 않지만, 기숙사와 식사 퀄리티가 생각보다 좋았고 스페인어를 배우며 생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무래도 짜인 학교 프로그램으로 개인 활동을 할 시간이 많진 않았다.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교류할 일이 많지 않았고 동네 근처를 돌아다니거나 수업 끝나고 짧게 마드리드를 다녀오는 정도이긴 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긴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알칼라 한달살기
대체 많던 사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알칼라는 도시 중심부가 대학 및 역사지구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예산으로 지정된 곳이어서 건물들이 멋지고 밤늦게 다녀도 굉장히 안전했던 도시였다. 떠오르는 그때의 감정과 기억 속 스페인의 여름은 햇살이 미친 듯이 따가웠고 알록달록한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었고,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밤에는 버스킹을 하고 스페인 답게 짜고 달다구리한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다. 특히 여름이라 감정이 더 극대화된 것 같기도 하다. 그 여유롭고 따뜻한 감성이 너무 좋아서 마치 나라별 퍼스널 컬러가 있다면 이곳은 웜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유난히 금방 지나갔다.
이곳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해외에 살면서 느끼는 흔한 감정이지만 스페인의 여름은 유독 자유로웠다. 또 왠지 모르게 자유는 겨울보다는 여름과 더 어울리기도 한다. 여름엔 이성적이기보단 감정적이게 되고 또 게을러진다. 낮잠을 자는 문화가 있기도 하고,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특별한 일탈을 하진 않았던 게 생각보다 재미없는 스타일이라 음주 흡연 클럽 이런 유흥에 딱히 흥미가 없어 가끔은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탈 아닌 몇 가지 일탈을 해보았다. 시샤라고 불리는 물 담배를 해보고 친구 따라 처음 클럽에 가보기도 했지만 역시 이런 건 어쩌다 한두 번 정도가 재밌는 것 같다. 뼛속까지 선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윙크지옥과 쿨병
스페인의 사람들도 참 개성있다. 내가 느낀 한국과의 가장 큰 문화 차이는 태도의 차이인 것 같다.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스페인 사람들은 윙크를 하고 허그를 했다. 처음엔 플러팅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냥 남녀노소 다 그러는 것이 처음엔 좀 당황했다. 뭐 새롭고 느끼하고 좋긴 한데 종종 불편할 때가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유교걸이고 파워내향인이라서 그런지. 물론 대부분 예쁘고 잘생겨서 심쿵할 때도 있고 문화 차이지 싶은데 가끔은 거리를 두고 싶을 때도 갑자기 윙크나 허그를 받으면 부담스럽다. 특히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그럴 때면 괜히 이놈이 날 무시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늘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리고 또 쿨병(?) 이 있다. 윙크도 그렇고 모든 서양 문화가 그렇긴 하지만 특히 나처럼 소심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하고 굉장히 매력 없다고 생각한다. 나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딱히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고칠 마음은 없지만,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이 열정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긴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도 않은데, 가끔 가면을 쓴 사람들을 볼 때면 좀 안쓰럽다. 나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든 곳이겠거니 한다.
발렌시아 여행
학교 프로그램이 끝나고서 다들 유럽여행을 떠났다.
바르셀로나 이비자 포르투갈 프랑스 등등으로 떠났고 사실 모로코가 제일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지만 당시 한여름이라 더위를 감당할 자신이 없고 가난한 학생이기도 해서 혼자 발렌시아를 며칠 여행하고 왔다. 왜 하필 발렌시아로 정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괜히 뭔가 뻔한 여행지 말고 주로 현지인들만 가는 숨겨진 해변+관광 도시를 가보고 싶기도 했고, 당시 스페인의 오렌지주스와 커피에 빠져있던 것 같다 (아마도) 스페인이 워낙 축구로 유명하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한국에선 이강인이 소속되어 있는 곳이라는 정도.
발렌시아는 유럽 특유의 건축물 성당과 좀 아시아스러운 현대식 미술관 박물관이 있었다. 자전거도 타고 동물원도 가고 바다도 보고 예쁜 골목에서 길도 잃고 (?) 맛있는 커피와 오렌지주스도 매일 마셨다. 역시 오렌지주스가 참 맛있었다!
다 좋긴 했지만 확실히 혼자 가는 여행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숙소가 호스텔이어서 덜 외로웠지만 돌아다니면서 나 빼고는 모두 가족 혹은 커플이어서 혼자 다니기엔 좀 외로웠던 도시였다. 아 사진이 다 어디 갔담 ㅠㅠ
유럽여행
유럽을 몇 군데 여행하다 보면 처음엔 새롭고 거대하고 너무 좋다가도 점점 뭔가 비슷한 모양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 관광지가 주로 성당 미술관 박물관으로 정해져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그중 프랑스는 뭔가 다르긴 했다. 그냥 나의 취향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흥미로웠다. 그쪽은 교육부터 뭔가 다른 건지 다들 말이 많고 뭔가 논리적이고,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고집도 있고 동시에 자기표현이 자유로웠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미적 감각이 남다르거나.
실제로 파리를 여행하면서 느낀 건 뭔가 확실히 세련된 감성이 있고, 다른 주변 도시와는 다른 시각적 미각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괜히 그런 감수성이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어도 맛있고 행복해지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물론 그 만큼 유료 화장실과 당당한 노상방뇨를 목격하거나, 시위와 난민이 정말 많은 점, 소매치기나 유물 수준의 엘리베이터 등등 불편한 것들 투성이긴 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들이 많기는 하지만, 파리를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다른 도시들은 베를린, 암스테르담, 오스트리아 정도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일단 독일 자체에 딱히 흥미나 기대치가 없었는데 베를린은 생각보다 국제적인 도시였고 굉장히 활기차고 자유롭고 다양했다. 암스테르담은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자주 비가오고 추웠지만 맛있는 음식과 세련된 감성이 있었고,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중 가장 모던하고 깔끔했고 동시에 클래식의 도시답게 예술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