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인턴십과 유학생

여행하듯 살아보기, 시드니

by 민지글


이상과 현실

대부분 평범한 삶을 원한다고 하지만 진짜 평범한 사람들도 마음속 안에선 주인공이 된 모습과 특별한 순간을 꿈꾼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이 지독한 평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괜히 어긋난 보기도 하고 도전과 실패를 겪으며 나는 역시 평범하다는 씁쓸한 결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결국 나도 이대로라면 내 주변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어울리는 삶은 그런 평범함에 가까울 것이라는 것. 아이러니하게 그런 지겨운 평균의 삶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숨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삶의 좋고 나쁨을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물론 주제 파악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 겉으로는 늘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속 안에는 늘 만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있다. 내게 어울리는 옷, 음식, 집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지금보다는 더 업그레이드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언젠가 타협하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생각을 하며 꿈꾸고 방황을 해보나. 그래서 그런지 현재에 순응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는 당장은 보잘것없지만 조금은 크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도 좀 더 주체적이고 고집과 열정이 있는 삶과 그런 사람을 동경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생각과 에너지가 좋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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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나의 가능성을 좀 더 발견하고 싶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젊은 날에 작고 좁은 곳에서 원하지도 않는 것에 매달리며 안 되는 것들에 열등감과 패배감만 느끼고 살기엔 스스로가 너무 안타까웠다. 내게 좀 더 맞을만한 곳,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곳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고 싶었다.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자면 시드니는 외국인으로서 삶의 난도가 낮은 편이었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인종차별 문화 차이라든지 어려움이 가장 적었던 도시이다. 시드니는 인턴십으로 2020년, 그리고 2022년 학생비자로 다시 방문했다. 해외인턴십으로 갔었던 시드니는 자유와 다양성과 좋은 추억이 있었고 유학생 신분에서의 나는 좀 더 또렷한 계획이 있었고 더 비장했다. 내가 과연 무얼 얼마큼 할 수 있을까 실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


꽤 긴 기간 머무른 만큼 항상 좋지만도 않았고 외로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최대한 나의 젊음과 에너지를 동원해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해 보기도 하고, 현실에 맞추느라 꽁꽁 묵혀두었던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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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인턴십

2020년의 시드니는 해외인턴십으로 처음 오게 되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해외인턴십으로 사실상 스펙을 위한 무급 인턴십으로 실제 인턴십 기간은 한 달 정도이고 살았던 기간은 3개월 정도로 짧았다. 졸업을 앞두고 방학 동안 스펙을 쌓을 겸 여행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엔 스펙보다는 당시 졸업 후에 외항사 승무원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해외에서 살아보고 일해보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인턴십 프로그램은 시드니에 있는 한국인 유학 및 인턴십 에이전시 중 한 곳에서 진행되었다.

한국인 학생 대상으로 현지에 있는 한국 회사나 로컬 회사를 매칭해 주는 시스템이었고, 아무래도 인턴십 자체가 취업을 앞두고 스펙을 쌓으려고 온 학생들이 대다수여서 그런지 대부분의 친구들은 시드니에 있는 한국 대기업들에 일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승무원을 지망하니 관련 호텔이나 서비스 분야를 지원했지만 전공이 경영이라서 그런지 작은 로컬 투자회사가 매칭되어서 좀 의외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좋은 건물과 환경, 현지인들의 업무 환경 경험, 영어 공부,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어서 흥미롭긴 했지만 인턴십에서 얻은 것은 많지 않았고 그 대신 시드니 생활이 꽤 재밌었다.


처음 시드니에 도착했을 땐 생각했던 호주의 이미지와 달라서 굉장히 별로였다.

공항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자마자 악명 깊은 호주산 바퀴벌레와 인사하고, 생각보다 도시가 전체적으로 깨끗하지도 않고 이상한 사람들도 많고 다문화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뭔가 아시아 도시에 가까워 보였다. 아시안들 특히 그중 중국과 인도 계열 이민자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상상했던 청정국 선진국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결론적으로 여태 살면서 손에 꼽는 자존감이 높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아마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아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 워킹홀리데이 비자였고 인턴십 이후에도 더 오래 머물 수 있었지만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좋은 추억들만 경험하고 떠났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강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드니 유학생

시간이 흘러 2022년, 인턴십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2년 만에 다시 시드니로 오게 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오고 싶긴 했지만 시드니에 다시 오게 된 이유는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호텔에서 일하면서 외항사 승무원을 준비하려 했지만 채용공고가 한동안 올라오지 않게 되면서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원하던 것은 독립과 해외취업이었다. 한국에서는 잘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에 실패하고 도피를 선택했기에 더욱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다.


사실 이전에도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기회가 몇 번 있지만 그럴 때마다 주저했던 이유는 진로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 때문이다. 외국에서 지내보면서 느끼기도 했지만 많은 유학생들이 실패하고 다시 돌아오거나 방황하는 케이스도 많이 봤다. 물론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학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빚진 마음보다는 취업을 하고 내가 번 돈으로 공부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가야지 -라는 막연한 계획이 있었다. 또 편입까지 했었기에 당장은 시험이나 공부를 다시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사실 당시 나에게 맞는 것은 갭이어 겸 워킹홀리데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걱정과 나의 불확실한 마음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유학은 막연히 미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고 학과의 경우 오래전부터 패션 마케팅에 관심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학비와 뉴욕의 생활비와 비자 부분도 까다롭고 무엇보다 패션 분야에 대한 재능과 감각도 좀 의문이었다.

유학 후 그 결과와 취업까지 생각해야 했고 큰 그림으로 비자와 해외 취업이 용이한 호주 유학을 선택했고, 그중 가성비 좋고 무난한 (?) 회계학과 Master of Accounting을 선택했다.


석사 2년 과정이었지만 사실 졸업이 어렵지는 않았고, 한국 4년제 대학교 수준이었던 것 같다.

학교의 수준이라면 입학 조건에 영어점수와 관련 전공이 필요한 정도였고, 과목 중 어려운 수업도 있었지만 경영 관련 과목도 반반 있어서 생각보다 엄청난 심화과정은 없었고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전공 자체만 보면 회계에다가 석사가 주는 이미지가 있는데 대학이 아닌 컬리지라서 그런지 똑똑한 친구들도 물론 있었지만, 전부 외국인이었고 학업에 올인하는 친구들보다는 나처럼 학교를 취업과 비자의 이용 수단으로 생각하고 일을 병행했다. 준비가 된 유학이 아닌 만큼 학업을 위한 학교는 아니었고 겉으로는 유학이지만 나에겐 해외취업을 위한 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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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생존모드

다시 오게 된 시드니는 코로나 락다운이 끝난 직후라서 기억 속 시드니와 다르게 북적이던 거리는 휑했고 사람이나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사라진 가게들도 많아 조금 이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알던 시드니로 회복했고 혼자 추억여행을 하면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호주의 가장 큰 장점은 일자리가 많다는 것과 인종차별이 덜하다는 점이 있다. 결점이 있거나 굳이 대단한 스펙이 없어도, 심지어 모든 것을 잃고 바닥부터 시작해도 왠지 여기서는 뭔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학생비자가 있으면 여러모로 일할 시간은 줄어들지만 당시에 코로나 직후라 인력이 많이 부족했고 운이 좋게도 경력이 없어도 다양한 기회들이 있었다. 기회를 틈타 경험을 쌓으려 열심히 돌아다녔다.

카페, 레스토랑, 호텔, 티 룸, 미팅룸 관리, 회계사무소, 한인 카페, 키즈카페 등등 짧게 많이 일했지만 주로 카페와 호텔에서 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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