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살아보기, 멜버른
졸업생비자
2024년 멜버른에선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학생 비자가 끝나가고, 20대 막판의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호주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고, 원래는 이후에 전공을 살려 싱가포르나 홍콩에서 일해보고 싶긴 했지만 그러기엔 진로가 명확하지 않았다. 애매한 졸업장과 경력으로 한국에 돌아갈 자신은 더 없었다. 결국 3년 머무를 수 있는 호주 졸업생 비자를 선택했다.
빈틈없이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목표했던 독립과 해외취업을 해볼 수 있었다.
호주에서 살면서 조금 가난해졌지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며 나름 독립해 볼 수 있는 점이 나에게 큰 성취이다. 서비스와 호텔 경력이 있긴 했지만 파트타임이었고 커리어적으로 분야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풀타임으로 오피스 일을 구해보자고 결심했다. 비자와 졸업 학위가 있어서 그런지 지원할 수 있는 옵션이 꽤 있었고 동양인이나 한국인을 채용하는 회사 위주로 지원했다. 운이 좋게도 생각보다 빨리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시드니vs멜버른
멜버른에 오기 전에 살기 좋은 도시라는 기사를 보고서 특별한 게 있나 조금 기대를 했다. 이전에 멜버른을 잠깐 여행한 적은 있지만 딱히 인상에 남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시드니에서 살짝 작은 버전에 좀 더 춥고 깨끗하고 덜 붐비는 도시 정도라고 생각했다.
1년 정도 지내보니 하루에 네 계절이 있을 정도로 변덕이 심하고, 겨울이 너무 춥다. 커피도 맛있지만 솔직히 시드니랑 크게 다른 점은 모르겠다. 스포츠나 문화 예술이 발달한 도시여서 각종 콘서트 공연 등등이 많다고 하던데 딱히 관심사가 아니어서 크게 누리지는 못했다.
결론적으로 딱히 살기 좋은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아마 내가 싱글인 외국인 직장인 여성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다. 멜버른은 특히 가족들끼리 살기에 좀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이든 그렇겠지만 혼자 지내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멜버른 중심가인 시티도 시드니 못지않은 인프라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겐 좀 더 도시인 시드니가 더 맞는 것 같다.
여기선 시드니에서 왔다고 하면 도시 사람이라고 한다. 마치 한국에서 서울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호주는 땅이 워낙 커서 시드니 멜버른 정도가 도시이고 나머지 지역은 시골 동네에 좀 더 가깝다. 호주에 살면 살수록, 일과 돈보다는 가족 취미 워라밸이 더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 도시생활이 지치고 피곤하고 지겹다고 하지만 그렇게 치이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과 안정감
나에겐 안정감을 쫓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큰 도전이었다.
불안정과 불확실함에 익숙해진 나는 자꾸만 지쳤고, 이젠 반대로 안정적인 곳에서 안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첫 직장을 갖고 나서 생활에 안정감이 생겼지만 그 적응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일단 풀타임 주 5일을 일해본 적이 없다 보니 일하는 시간에 적응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초반엔 트레이닝해야 할 것 투성이라 따라가기만 해도 많은 에너지가 드는데, 자꾸 자아실현을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소극적인 나와 반대로 시키지도 않는 일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책임감 있게 일하는 다른 종류의 가진 사람을 보며 비교하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되어야 되는데 내가 잘못된 것인가, 내게 맞는 일은 뭘까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퇴사의 가장 큰 이유가 인간관계일 정도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니는 직장은 대부분 재택근무라 확실히 사람 간의 스트레스받을 일도 많이 없다. 팀원 대부분 가정이 있는 부모라서 딱히 시비 걸거나 괴롭히는 사람도 없고, 또 워라밸이 확실하다. 어쨌든 정해진 시스템과 규칙이 있다 보니 일의 특성상 좀 더 경직되고 융통성 없는 성격이 된 것 같다. 물론 이 점이 일의 특징과 매력이겠지만.
그렇지만 또 벌여놓았으니 수습은 해야지. 일단은 스스로 약속한 1년은 채워볼 예정이다. 이제 그 이후의 삶을 또 그려보아야지. 아직까지의 멜버른에서 가장 신나고 나다웠던 모습은 초반에 이력서를 쓰며 면접을 보고 집을 구하러 다니거나, 글을 쓰고 요가를 하는 나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평화로운 멜버른에서 가족 같은 팀에서 안정적인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나머지 시간에는 운동을 하고 묵혀두었던 글을 쓰면서,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어디 일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좀 더 선명해지고 나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