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

by 민지글

멜버른에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1.3년을 보내면서 일과 삶 모두 조용하고 정적이어서 고립되긴 했지만, 혼자 나름의 목표와 루틴을 만들어내면서 열심히 살아내었던 것 같다. 늘 그랬듯이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


결국 나의 행복도 안정도 내가 먼저 만들지 않는 이상 비슷한 이유로 계속 힘들고 문제는 반복된다. 얼른 이 길고 긴 수련의 과정을 끝내고 진화한 뒤, 건너뛰기를 한 다음 짠! 내보이고 싶은데.




그래도 1.3년 동안 꽤 많은 것들을 해냈다.

1. 도착해서 2주 만에 취업하고 회사를 1년 이상 다닌 것. 1년은 나에겐 긴 시간이다..

2. 처음으로 차곡차곡 저축한 것. 곧 사라지겠지만..!

3.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한 것. 그동안 묵혀놨었던 이야기들을 최대한 정리해서 글로 표현한 것.

4. 요가와 운동을 꾸준히 한 것.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취미와 루틴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멜버른에 잘 적응하진 못한 것 같다.

1. 인간관계가 더 악화되었다.

나름 첫 직장이라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기본 재택근무이고 워라밸이 좋은 편임에도 끊임없는 트레이닝과 함께 가장 힘들었던 건 주 5일을 일해야 한다는 것. 좋은 팀에서 일하며 배우고 돈이라는 보상을 받긴 했지만, 나의 시간을 빼앗겼고 일하면서 나를 찾을 수는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없는 인간관계도 다 끊어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사회성도 낮아진 것 같다. 좀 더 예민해지고 소심해졌다. 뭔가 회색인간이 된 느낌이다.



2. 과연 안정적이란 게 나에겐 뭘까.

떠돌이 생활에 지칠 때로 지친 시점에서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안정감이라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장과 안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좀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렀으니 이젠 나도 정착과 편안함을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부딪혀보니 이러한 환경과 사람들이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에게 아직 정착이란 준비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미 오래전 정착한 사람들 틈에서 자주 이질감을 느꼈다. 지켜야 할 가정이 있고, 돌봐야 할 애완동물이 있고, 삶의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불안전한 모습인 나는 또다시 도전과 방황을, 더 큰 도시에서의 성취를 원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3. 뭔가 체력이 점점 안 좋아진 것 같다.

운동과 건강은 별개의 것이라고 느낀다. 본래 운동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건강은 운동만큼 휴식, 규칙적인 식사, 심리적 안정 그리고 타고난 신체적 조건 등등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운동을 꾸준히 해도 겉보기엔 나아져도 여전히 자주 피곤하고 지치는 이유는 뭘까. 이제 본격적으로 노화가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점점 입맛이 사라지는 것. 저혈압은 언제쯤 나아지려나!




선택의 기로 속에서 알맞은 선택 하기

나에겐 구체적인 롤 모델이 없다. 언제부턴가 아무에게도 조언을 구하지도 걱정을 잘 털어놓지도 않는다. 솔직히 조심스럽지만 주변엔 착한 사람들은 많아도, 딱히 닮고 싶은 삶을 살거나 내 눈에 멋있는 어른들이 잘 없다. 어쨌든 경험치가 적은 어린 나이에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건 잘못된 결정을 할 위험이 크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실패를 겪듯, 나도 한 때는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실패는 생각보다 치명적이었고 동시에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 원인에는 나의 부족함과 문제들도 있었겠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살면 결과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다는 것. 조금 더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다. 유독 경쟁적인 사회에서 겪은 실패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늘 지금의 방향성을 인지하고 의심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삶은 남들과 다르고 틀린 것 같고, 더 어렵고 매번 실패를 반복하지만 어쨌든 후회는 없다. 선택에 대한 결과와 책임도 다 내 것이고 모든 것이 나의 탓이다. 누군가를 탓할 필요가 없다. 도전과 과정을 통해서 개척하고 성취하는 재미, 늘 의외의 수확을 얻는다. 제한된 비자가 있다는 점은 오히려 하루하루를 더 바쁘게 열심히 목표 있게 살게 만든다. 조금 더 용기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좋아할 이유도 싫어할 이유도 많다.

중요한 건 지금 이곳에서 나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독 뭔가 어울리지 못하고 경직된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특히 사람들 속에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자꾸만 마주할 때. 더 이상 꾸미지 않게 되고 눈에 띄지 않게 주로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자꾸만 사람들과 상황으로부터 회피하는 나의 모습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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