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멜버른을 검색했을 때 매년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에 늘 상위권으로 꼽힌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지낸 지 겨우 1년 3개월이 조금 넘고 나의 경험은 한정적이겠지만, 결국 지내면서 지금의 내가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었다는 판단을 했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시드니에서 2년 정도 살다가 멜버른에 살아보며 느낀 점과 특징들을 정리해 보았다.
1.3년 동안 멜버른에서 살면서 느낀 특징들
1.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
멜버른은 호주에서 큰 대도시이긴 해도 사람들 대부분이 따뜻하고 소박하고 정이 있다고 느꼈다. 전체적으로 뭔가 도시의 쌀쌀함보다는 좀 더 친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워낙 살만해서 그런지 사람 수는 많아도 딱히 경쟁적이거나 차별적인 점들이 한국이나 시드니만큼 심하지는 않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길거리 한복판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와서 도와줄 것만 같은 느낌과 꽤 안전하다고 느낀다. 실제로 지내고 일을 하면서 생각보다 나쁜 사람들보다도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쳤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늘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2. 조금 수줍은 사람들?
시드니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외국인, 동양인, 관광객 비중이 많은 점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호주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동양인으로서 그런 점들이 살기에는 오히려 편했던 것 같다. 다양한 만큼 이상한 사람과 사건들도 많았지만, 인종, 성별, 성격, 취향이 다양하고 대부분 조금 더 화려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내성적인 나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기 쉬웠던 것 같다. 또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만큼 매년 열리는 이벤트의 스케일과 퀄리티도 확실히 멜버른보단 화려한 것 같다.
반면 멜버른은 시드니에 비해서 확실히 조금 더 로컬의 느낌이 있다. 특히 감성적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날씨가 사람들의 성향에 영향을 주듯 약간 울적한 날씨 탓인지, 외국인의 비중이 시드니보다는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더 호주의 느낌이 강한 것 같다. 또 좀 더 가족 중심 사회인 점도 있다. 싱글보다는 가족과 반려동물과 소박하게 살아가는 느낌과 저녁이 있는 삶이다. 워라밸 천국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인이나 싱글이 살기엔 좀 더 외롭고 소외되기 쉬운 것 같다.
성격 자체가 워낙 내향인이라서 시드니는 나에게 너무 정신없고 부담스럽고, 성향상 왠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멜버른이 나에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내고 보니 맞는 것을 넘어서서 왠지 점점 더 우울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뭔가 이곳에 살면서는 더 소심해지고 좁아지고 고립되는 느낌이다.
3. 하루에 사계절 날씨
많은 사람들이 꼽는 멜버른의 특징 중 하나는 날씨다. 하루에 사계절이 있고 특히 여름이나 간절기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정말 다양하다. 이 점이 사실 오기 전에 머뭇거리게 되는 요소이긴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의 경우에도 특히 날씨에 기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라 큰 단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멜버른에서 날씨는 항상 흥미로운 스몰톡 주제이다.
멜버른의 5월, 이제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추위에 잠 못 드는 밤과 아침이다. 전기장판과 히터를 꺼내야 할 시점이다. 작년 기억 속 멜버른의 겨울은 바람 불고 춥고 비 오는 회색이라서 쉽지 않았는데. 사실상 한국에 비하면 기온이 크게 낮지는 않지만, 대부분 집이 주택의 형태가 많고 오래되어 실내에 보온장치가 잘 되어 있지 않기에 더 춥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4. 스포츠와 문화예술의 도시
멜버른은 스포츠 중 특히 풋볼 그리고 음악과 문화 예술이 굉장히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스포츠나 문화생활 대해서는 크게 즐기지 않는 편이고 관심이 크게 없어서 아쉽게도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그래도 풋볼의 도시인만큼 기회가 생겨 경기를 직관을 해보기도 했다. 잘 모르는 입장에서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조금 더 캐주얼하고 격한 스포츠라는 생각을 했다. 남녀노소 즐기는 이곳만의 스포츠 문화가 있는 것이 좋아 보였고 조금 더 멜버른에 대해서 알게 된 경험이었다. 또 전시나 콘서트, 공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 등의 이벤트가 자주 열린다. 콘서트의 경우 대부분 영미권의 유명 가수들이 많이 오는 편이고 전시나 축제도 많이 열린다고 한다.
그 외에 시드니와 멜버른을 굳이 비교한다면 시드니가 조금 더 도시적인 요소 부동산, 교통, 인구밀도 등등이 더 발달한 정도이다. 멜버른도 시드니만큼 맛있고 다양한 아시안 음식점과 즐길거리들이 있다. 싱글 단기 거주자로서 느끼기에는 물가나 삶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같은 여행지를 가고서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다 다르듯, 같은 공간에서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경험을 하고서 최고가 되기도 최악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애초에 좋은 도시라는 건 주관적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멜버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도 남편과 아이가 있고 강아지가 있었다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충분히 살기 좋은 곳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