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인 만큼 1년이란 시간 동안 배운 것 느낀 것 좋은 것들도 많았지만, 힘들게 얻은 멀쩡한 직장이지만.
일이 끝나고 난 후 그 헛헛함과 허무함이 싫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 이었다.
나름 성실히 또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성과를 보여야 할 때가 시점이 되었을 때. 딱히 동기부여나 성취감이 충족되지 않았고 일의 특성상 정해진 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어 보였다. 아마 아직 회사 생활이, 일에 대한 요령과 경험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힘든 건 일을 하면서 적극적이지 못하고 조용히 묻혀가는 더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이다. 회사 밖 사람들에게 나의 일을 설명하는 게 떳떳하지 않을 때. 말하고 나니 왠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을 때. 나의 이런 모습들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언제쯤 내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까. 찾아내고 극복해 낼 수나 있을까. 일에 대한 나의 이상과 열정이 충족되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또 일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안정적인 멜버른 생활이 생각보다 내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일에서 충족되지 못한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취미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 보였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딱히 마음에 맞는 사람은 찾지 못했고, 결국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했던 것 같다. 직장인이 되어도 시드니보다 더 작은 멜버른에선 외국인인 게 더 선명해졌다. 왠지 모르게 더 뻣뻣하고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엔 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굳이 혼자 도서관이나 카페를 가서 주구장창 글을 썼다. 뭔가 낭비되고 쓸모없다는 기분에 휩싸일 때마다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 얻고 잃어버린 일들 등등 써보고 싶었던 생각들, 풀고 싶은 마음들을 기록하려고 했다. 담아두기만 했던 생각과 말들을 쓰고 고치고 마구 썼다.
그렇게 운동하거나 혼자 집중하고 쏟아내는 시간 외엔 대부분 외로웠고, 아무도 모르는 이 행위들에 큰 즐거움이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건조한 생활에 나름의 건강한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브런치 작가와 출간을 목표로 나름의 콘셉트를 잡고 기획을 하고 완성을 해보면서 성취감을 얻고 동시에 울적한 마음이 조금 해소되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새로운 일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고 또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떠돌이 삶을 청산하고 나도 여기 사람들처럼 비슷한 친구를 사귀고, 내 사람과 가족을 만들고, 집과 차를 사고, 아이 혹은 반려견이 있어야만 적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서나 그러긴 하겠지만 이곳에서는 더욱더.
그런 모습과 삶이 나에게도 최종 목적이긴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내게 아직은 자유가 더, 정착과 안정보다는 더 넓은 곳에서 도전과 모험을 하고 싶다는 것. 떠돌이의 삶이 익숙한 내게 정착하는 삶의 형태는 아직 어색했고 무리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평생 이렇게 도망 다닐 수는 없다. 이제 시간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더 이상 마냥 어리지도 않다. 무모하고 패기 넘치는 도전을 하기에는 이젠 아무것도 모르지도 않기에, 이전보다 더 책임감을 갖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