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돌아왔다. 꽃게의 계절.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 동네 마트에는 작은 수산물 코너가 있는데 나는 그곳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자주 들른다. 수산물 코너라고 하기에는 매우 작고 포장된 것들만 판매하지만 제철 재료들을 만날 수 있다. 가을 이맘때는 꽃게가 제철이라 자주 볼 수 있는데 소분되어 판매를 해 꽤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가 있다. 작년 이맘때 여러 번 사서 먹었는데 제철 음식을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1kg로 소분하여 판매하는 마트에는 꽃게가 4마리 들어있었다. 작년의 경험으로 남겨두면 냉장고에서 며칠 굴러다니다 살이 물처럼 다 빠져버려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먹는 것이 좋다. 솔로 박박 닦으며 4마리를 한 번에 다 찌려고 보니 한 마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3마리를 찜통에 올려두고 바로 마트에 가서 교환을 했다. 한 마리는 하는 수없이 냉장고 행. 이번에는 묵혔다 버리는 일 없이 뭐든 바로 해먹겠다 다짐을 해본다.
15분 정도 후, 김을 팍팍 내는 냄비를 끄고 게를 꺼내본다. 당연히 살아있을 리 없는데도 집게발이 무섭다. 작년에 게를 씻다가 집게발에 손을 물린 후 기억에 기초한 두려움이다. 레몬 한 조각을 잘라 함께 올리고 가위로 잘 잘라 야무지게 먹었다. 몸통 가득 꽉꽉 참 게살이 고소하고 맛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바로 가을 꽃게의 맛.
게를 찌고 난 후에 물에는 꽃게의 감칠맛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뭐를 먹을까 하다 콩나물과 순두부를 넣어 그대로 먹었다. 다른 양념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도 숟가락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맛있다. 이게 바로 가을 꽃게의 참맛.
남은 게 한 마리는 다음날 조카에게 쪄주었더니 아주 잘 먹었다. 조카는 일 년 전 이맘때 내가 꽃게에 물린 것을 기억해서 게를 찌는 내내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해댔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일 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다. 내년에도 같이 꽃게를 먹을 수 있을까. 일년 사이 너는 얼마나 클지, 우리에게는 또 무슨 일이 있을지. 조카와 내년에도 같이 먹자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내년 이맘때도 꽃게를 먹었다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