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열심히만 살았다

내 인생 첫 번째 대외활동, 희망씨앗 대학생봉사단

by Experience Expert

제목 그대로, 그냥 열심히만 살았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남들 놀 때 열심히 살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돌이켜 봤을 때 1학년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계속 만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각 종 봉사활동이며 경제동아리며 열심히 이것저것 했고 학점도 3점 후반으로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봉사활동'이라면서 무엇인가 목적이 있는 것도 어딘가 꺼림칙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서도, 어떠한 목적이 있었다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고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군대 가기 전, 정말 많은 활동들을 했지만 현재 내 옆에 남은 사람은 약 8 개월의 시간동안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우리 희망씨앗 대학생 봉사단 멤버들이 이번 글의 주인공이 될 것 같다.


내가 1학년 때 봉사단을 왜 시작했는가 돌이켜보면, '막연한 스펙'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1학년 때부터 대기업을 가고 싶어 했고 가기 위해서 이것저것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했었던 희망씨앗 대학생 봉사단은 무려 '수출입은행' 주관이자 내 첫 대외활동이다. 이 봉사활동은 기획 봉사활동으로 대학생 10명이 팀을 이뤄 어떤 봉사활동을 해볼 것인지 기획하게 된다. 우리 팀은 '미혼모'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봤을 때 많이 힘들었다. 사실 나는 그 때 '미혼모'라는 것에 대한 개념 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을 진행했고 하나씩 자신이 할 일을 찾아나갔던 한 편, 나는 갓 20살이 된 새내기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팀은 신기하게 팀이 정말 잘 짜졌다고 생각한다. 열정적이었던 팀장 누나와 부팀장 형, 그리고 능력있었던 팀원들과 프로참석러였던 내가 힘을 합쳐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헤쳐나갔고 마지막에는 우리 팀이 어떤 상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17년 1월 16일에 군 입대 때문에 빠르게 본가(부산)를 내려갔던 터라 마지막 수료식 날 참석을 하지 못했다)


벌써 7년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미혼모 인식 캠페인을 위해 개인 카페를 대상으로 컵홀더를 돌렸던 일, 직접 디퓨저와 양초를 만들어 플리마켓에서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했던 일 그리고 직접 미혼모 분들과 자녀들과 함께 젖소 우유를 짜는 체험하러 간 일까지, 너무 많은 일, 그리고 다양한 일을 했다. 지금 이 때로 되돌아간다면, 모든 활동들을 수치화하여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알아봤을 것 같지만 활동을 하기에 급급했던 당시라 그 성과가 어떻게 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때를 지금 다시 회상해보고자 한다.


가장 처음했던 활동은 '아기속싸개'를 만드는 일이었다. 원래 모든 활동을 미혼모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으로 구성해보려 했으나,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던 사회의 인식 탓에 그들은 세상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의 첫 대외활동이니만큼, 모든 것이 다 수월하게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계획과 다르게 부딪히는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의 나는 '우리가 하고 싶은 활동'과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다 만들어진 속싸개는 미혼모센터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이후 '미혼모' 분들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두 가지 활동을 기획했다. '컵홀더'와 '플리마켓'이다. 인식개선 문구가 담긴 컵홀더를 제작하여 개인카페 사장님들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나눠드렸는데 생각보다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또 다른 캠페인이었떤 플리마켓, 플리마켓 진행 중에 미혼모에 대한 사회 인식도 알아볼 수 있고 미혼모 로고가 있는 물품들을 팀원들이 직접 제작해보기 떄문에 내부에서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얼마 팔리진 못했지만 모든 수익은 미혼모 센터에 기부되었다. 에코백 10, 양초 30개 그리고 팔찌 30개, 디퓨저 30개로 진행했고 에코백을 제외한 나머지 물품들은 모두 만들어 판매했다. 플리마켓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너무 적었고 '판매'라는 것을 한번도 안해봤던 우리는 손님을 찾아가는게 아닌, 손님이 올 때 까지 기다렸다. 같이 으샤으샤하면서 판매해야할 때 너무도 없는 손님에 우리 또한 축 쳐져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구매해주신 분들이 계셨고, 그분들의 이름과 함께 수익금을 기부했다.


나는 이 때, 솔직하게 '미혼모' 분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낮으며 사람들의 도움이 적다고 생각했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계속 어려움을 마주했고 함께 만나뵙던 시민분들의 외면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대외활동을 시작하며 마음의 상처도 받고 씁쓸한 사회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어려움을 함께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 탈 없이 잘 만나고 있으며 한번 연을 맺게 된 사람은 놓아주지 않는다는 내 철학을 바탕으로 가장 어린 나이였던 내가 모임을 주도하며 이끌고 있다. 앞으로 있을 내 인생에서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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