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의 미술관에서 몇 년 간 일을 하면서 주로 사용했던 언어는 일본어, 영어, 그리고 보디랭귀지가 아니었을까? 업무를 하면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극소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한국인 손님분들이 생각보다 영어나 일본어를 잘하시는 분들이 많이 방문하셔서 손님이 한국분이더라도 일본어와 영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인 손님이라고 알아차려도 안내를 하고 대응에 있어서 일본어와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에는 한국어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갑자기 한국어로 말을 걸면 화들짝 놀라는 경우도 많았고, 안내를 하는데에 있어서 익숙한 일본어로 하는 것이더 정중하게 설명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에 여행을 가게 되면 되도록 현지의 말을 사용하며 그 나라에 왔다는기분을 만끽하고 싶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어느 국적의 손님인 경우에도 그 손님이 말을 거는 언어로 응대를 하였다. 물론, 손님들이 곤란한 상황, 한국어로 대응이 필요한 경우는 별도였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일을 하면서 한국어로 대응했던 손님들은 굉장히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어로 대응을 했던 날은 그 대응이 클레임이었다고 해도 기분이 왠지 좋았다. 오랜만에 한국어 썼다!라는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후반부에 잠시 근무를 했던 다른 미술관에서는 여행사를 통해 방문하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과 자유여행으로 방문하는 개인 손님분들도 많아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었을 때는 오히려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일본어로 계속해서 말하던 직원이 갑자기 한국어를 말하면 한국인이세요? 라면서 굉장히 반갑게 말을 걸어오시는 분들도 있었고, 화들짝 놀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한국인이세요? 라는 말에 이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한국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이었는데, 코로나 시즌에 마스크를 쓰고 응대를 하였기 때문에 더욱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판단하기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난 한국인인데?라는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나중에 방긋 웃으면서 한국인이라고 알려드리는 것이 근무를 하면서 하나의 소확행과 같은 시간이 되고는 했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처음 도쿄 자유여행을 와서, 의도치 않았던 트러블로 굉장히 곤란했는데 한국어로 친절히 대응해 주셔서 무척이나 감사드려요."
"내 딸 같아서 그래. 해외에서 이렇게 일하는 거 대단하다 힘내요."
일본이란 나에게 있어서 해외가 아닌 옆동네와 같은 느낌이었지만, 미술관에서 근무를 할 때 한국인 손님들을 대응하며 간혹 이런 따뜻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는구나 라는 실감이 들기도 했고, 이러한 짧은 대화일 뿐이지만 이렇게 따뜻한 한국어로 오늘 남은 시간도 힘내자 라는 응원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