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라는 런웨이의 단골손님
정장 입고 일하지만 저도 꾸미는 걸 좋아해요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
일명 TPO라는 용어는 일상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패션 용어 중 하나로,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뜻하는 말이다. 영어로 표기되어 있어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일본이 유래라고 한다.
미술관이라는 장소에는 어떤 복장으로 방문하는 게 좋을까? 일상에서 입는 편안한 복장으로 방문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방문하는 미술관의 분위기나 그곳에 전시되는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의상을 골라서 입고 가는 경우도 있고, 미술 감상도 있지만 최근에는 SNS(social network service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업로드를 하는 용도나 앨범 속에 방문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의상을 맞춰 입고 가는 경우 등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의, 하의, 아우터, 신발, 액세서리 등 의상도 제각기, 코디 방법은 더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완전히 같은 의상을 보기는 드물다.
그렇다. 미술관은 다양한 의상들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런웨이(runway ; 패션쇼에서 모델이 걷는 무대) 그 자체이다. 그리고 나는 그 런웨이의 단골손님이었다.
내가 오래 일을 했던 미술관은 작품 감상도 있지만 손님들이 작품들과 기념사진을 많이 찍으러 와서, 손님들의 의상이 정말 다양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옷에서부터 교복이나 정장과 같이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는 옷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흔히 볼 수 있는 일상복조차, 일본 국내였기 때문에 한국과 다른 느낌의 의상들도 있었기에 볼 때마다 색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어디에서 구했을지 신기할 정도로 브랜드가 궁금해지는 옷들까지 정말 매일매일 다양한 복장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매일매일 일하면서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손님의 복장이 다양하고 화려하고 컬러풀하다고 해도, 그곳의 직원의 복장까지 화려할 수는 없다. 검은색 정장에 신발, 바지, 액세서리 종류까지 입을 수 있고 입을 수 없는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머리색 규정까지 있어서, 나는 본래 머리 색이 밝아서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머리를 어둡게 염색을 하고 일을 하러 가야 하고는 했었다.
나는 본래 되게 독특한 의상을 좋아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의상들이나 화려한 의상들을 좋아했고, 대학시절에는 되게 다양한 색으로 머리를 물들여보기도 했었다. 일본을 좋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이러한 독특한 의상들이나 당시 하라주쿠 패션도 한몫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화려한 작품들이 전시되는 미술관에 일을 하게 되면서 작품들과는 대비되게, 머리도 수수하게 물들이고, 매일 같이 검정 정장을 입고 손님들을 응대해 나갔다.
왜 미술 작품들은 화려하고 오는 손님들 복장도 화려한 경우가 많은데 왜 직원들은 검정 정장을 입을까? 정장 중에도 왜 검은색 만을 입을까?
무채색, 검정이라는 색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색이어서 어디에도 적응할 수 있는 색이기도 하고, 차분한 색이어서 무엇보다 튀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술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보러 오는 것이지 직원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작품감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 직원의 복장도 수수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격식을 차리는 업무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자유로움을 찾아 헤매었었다.
단, 자유를 찾아 떠나서 정착했던 곳은 오히려 더 격식을 차리며 더 많은 규율이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라고 그렇게 생각을 한다. 자유는 진정한 자유로움이 아닌, 그를 위한 책임져야 할 격식이 있고, 규정이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내가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는 하였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을 하게 된다. 정장 입고, 구두를 신고, 매일 몇 시간씩 서서 어떻게 일을 하지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사람은 적응을 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한정된 공간과 규율 속에서 또 다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한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런웨이의 단골손님으로, 나의 복장은 언제나 검은색의 수수한 정장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주어지는 꿀 같은 휴일에는 검은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의상으로 다른 장소의 런웨이에 방문하고는 했다. 관객이 아니라 이번에는 내가 직접 런웨이에 오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