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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 Sep 17. 2024

돌발 상황 대처 매뉴얼

도망칠 곳은 없다.

본래 나라는 인간은, 미리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계획하고 준비해서 완벽하게 완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일에 뛰어들기까지는 꽤나 시간과 준비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여행 하나를 가더라도, 무언가 배우고 싶더라도 그것에 대한 사전정보를 찾아가며 이러할 땐 어떻게 대처할까?라고 정말 꼼꼼하게 계획을 하던 편이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정말 다양한 상황들과 조우를 하게 된다. 이 수 천 수 만 가지의 상황을 전부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으면, 그래서 아무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본의 미술관에서 몇 년 간 일을 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상황에 직면했었다. 준비를 하고 완벽하게 대처해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은 여전했지만, 삶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 펼쳐졌다.


내가 일을 했던 미술관에서는, 입장 전의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안내사항과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포스트(업무)가 있었다. 이 업무 자체가 전달해야 하는 대사도 길고, 몇몇 직원들과 사인을 주고받으며 일을 진행을 해야 하는 주변 상황도 파악해야 하는 업무였다. 그리고 특히나 업무 장소의 특성상 손님들에게 돌발적인 질문을 많이 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 팀에서도 오래 근무를 했거나 베테랑들이 한다는 인식이 컸던 일이었다.


그러한 업무를 처음 연수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출근해서 오늘 연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드디어 올게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저 일을 하겠지, 그때는 정말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동경의 마음을 가졌을 때도 있었다.


선배에게 연수를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앞에서 일을 하던 팀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을 때, "잘 해내고 싶다"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고 바뀌었다.


내 눈앞에는 수 십 명의 손님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할지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하필 나의 업무 첫 데뷔 무대였던 이 시간대, 어느 한 일본 방송국 프로그램의 촬영이 있어 카메라도 투입이 된 상황이었다. 와 진짜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전달해야 할 말은 많았고, 지켜야 할 규칙도 많았고. 바로 몇 분 전 매뉴얼을 읽으면서 전달받은 내용들과 지식들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긴장감과 부담감, 두려움들이 내 마음속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도망칠 곳 따위 나에게 없었다. 마이크를 찬 순간 나는 무대에 오른 연기자와 다름없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첫마디를 떼었다.


「それでは皆様、大変お待たせ致しました。入場ゲート をお通りください。」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입장해 주세요."


학교에서 교과서로 공식들과 지식을 배워가는 것처럼, 회사의 업무에 있어서 매뉴얼로 연수로 업무를 배워나간다. 하지만, 이 지식은 어디까지나 지식일 뿐. 미술관에서 일을 하며 이 지식을 토대로 해결해 낼 수 있는 상황도 많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도 굉장히 많았다.


매뉴얼대로 완벽하게 무언가를 완수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달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었던 방법은 결국 횟수와 경험. 책에서 배운 내용이 아닌 현장에서 보고 듣고 실제로 경험하며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나의 마음속의 하나의 대처능력 매뉴얼이 생겨났던 게. 그 시작이 이 업무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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