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쿄의 미술관에서 근무를 하면서 코로나의 전후를 전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습득하게 된, 아니 다시금 깨닫게 된 언어는 보디랭귀지이다. 그게 어떻게 언어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안내직에 종사를 하면서 오히려 한국어보다도 일본어 보다도 더욱 소중하고 유용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일본의 미술관에서 일을 했던 어느 날. 표 확인을 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시간에 방문하신 손님께 표를 보여주세요 라고 일본어로 말씀을 드렸는데 반응이 없으셨다. 혹시 외국인분이신가?라는 마음에 영어로 여쭈었지만 역시나 반응이 없으셨다. 다른 일을 하거나 같이 오신 동행인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하였지만 반응이 없으셨다. 아니, 반응이 없으셨던게 아니라 굉장히 곤란해 보이셨다.
'왜 표를 보여주지 않으시지? 혹시 안 가져 오셨나?'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찰나, 그 손님 분께서 머리카락을 넘겨 자신의 귀를 보여주셨고, 그때서야 나는 깨닫고 말았다. 아, 귀가 불편하신 분이셨구나. 본래 같으면 귀가 들리지 않으셔도 수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입술의 모양을 읽고 이야기의 내용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 코로나 시기에 업무를 하면서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며 이러한 소통 방법이 불가능해져 버렸고, 내가 아무리 소통 언어를 바꿔가면서 전달을 해도 이 전달 방법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내 생각이 짧았구나. 이러한 경우도 있을거라고 생각을 했어야했는데.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것들도 배우고 적응하고 몸에 익히면서 진행을 해나가야 한다. 그건 일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해당된다고 생각이 된다.
모르는 지식이 있으면 공부를 해서 배워나가고, 일을 하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교육을 받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상황을 예상할 수 없고 대비를 할 수 없다. 만약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상황에 맞춰서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내야 한다. 이건 언어도 동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배워 온 지식으로 말을 하고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외국어 시험을 치면서 배운 지식들은 현장에서는 실생활에서는 전부 사용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책에서 배울 수 없는, 현장에서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지식들도 확실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미술관에서 근무를 하면서 아마 전 세계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일본인 손님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라고는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조금의 영어.
하지만, 미술관이란 장소는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이기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만으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찾아오는 것이 당연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듯이, 그 손님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이러할 때 보디랭귀지라는 언어를 유용하게 사용하고는 했다.
서로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분들에게 보디랭귀지로 하나하나 설명을 하거나, 귀가 불편하신 분들에게 필담이나 간단하게 외웠던 수화를 사용해가며 소통을 해나갔다. 물론 말로 소통이 가능하면 그 편이 빠르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손님들이 대응이 몇 배로 힘들기도 했지만, 문제가 해결이 되어 손님들도 환한 미소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올때면, 보람도 몇 배로 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