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만 아니면 돼.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_02

by 빨간나무

12월 16일 토요일,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막내가 또 아팠다.


A형 독감에 걸려 5일 동안 뜨겁던 온몸이 고작 이틀 쉰 뒤 다시 뜨거워졌다. 해열제가 효과가 없을 만큼 계속해서 열이 올라 결국 새벽 5시에는 40도가 넘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노란색 구토만 여러 번 했고,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안아서 달래다 날이 밝자마자 소아과에 갔다.


축 늘어진 아이의 상태가 심각했다. 진료 결과 심한 폐렴으로 입원이 결정되었고, 아기의 손등에 바늘이 꽂혔다. 임시 병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병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간호사선생님이 달려오셨다.


“어머니. 저희 병원에서 입원이 안될 것 같다고 하시네요.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신대요. 저 따라오세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아픈 아이를 안고 다시 진료실에 갔다. 아까와 다르게 심각한 얼굴로 의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혈액검사 결과가 이제 다 나왔는데요, 많이 안 좋습니다. 저희는 해 드릴 수 있는 조치가 없어서, 당장 큰 병원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의뢰서를 써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안 좋은 건가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일단 가까운 데로 빨리 가셔야 해요.”


수액 바늘을 다시 뽑았다. 원무과에서 결제를 하고 의뢰서를 받았다. 힘없는 아이를 안고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하필 남편이 아침부터 자리를 비웠던 날이라, 큰 아이들은 친정어머니께 연락을 드려 맡겨야 했고, 가지고 온 유모차는 병원 앞에 일단 두고서 정신없이 나왔다. 택시를 잡으러 가던 중 모르는 번호로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니. 방금 진료한 의사입니다. 지금 당장 OO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저희 협력병원이에요. 원장님께서 말씀해 놓으셨다고 합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택시를 타고 눈을 뚫고 1시간 넘게 달려 서울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2시간 정도 대기한 뒤 들어갈 수 있었다.








기본 검사를 한 뒤 바로 수혈을 받게 되었고 입원이 결정되었다.


“지금 교통사고를 당해 과다출혈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준치의 반도 되지 않으니 당장 수혈부터 하겠습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처럼, 빨간 혈액팩을 공급받으며 힘없이 늘어진 아기를 보자 눈물이 마구 나왔다. 현실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응급실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인데 병동에 자리가 없다고 하여 이틀을 꼬박 지새웠다.


큰 병원 문턱을 밟은 적이 없고 아기가 이만큼 아픈 적도 없었고 소아응급실에 간 적도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커튼으로 구역이 나눠진 좁은 곳에는 아기만 누워도 꽉 차는 침대 하나와 달랑 보호자 의자가 하나 있었다. 나는 누워 잘 수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 아기를 안고 밤을 꼴딱 새웠다.


밥이 나오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대충 때워도 굶어도 되지만 아픈 아기가 걱정이었다. 뭐라도 먹여야 빨리 나을 텐데 막막했다. 절망스러운 심정으로 정수기의 뜨거운 물에 식은 밥을 말아 조금씩 먹이고, 음료와 빵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병실이 나기를 기다렸다.



소아응급실에는 밥이 나오지 않으니....





응급환자들은 밤에 많이 찾아왔다. 독감 환자부터 손가락 절단 환자, 경련 환자, 호흡곤란 등 위급한 환자들이 섞여서 들락날락했다. 얇은 커튼 너머로 소리가 다 들렸다. 막내도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정도 처치 후 귀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옆자리 환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


꼬박 3일째, 갑자기 자리가 났다고 하여 오후 늦게 이동하게 되었다. 소아병동 입원병실이 호텔처럼 느껴졌다.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있어 나도 누울 수 있고, 끼니마다 따뜻한 소아식이 제공되었다. 응급실을 탈출한 것으로 고무적이라 금방 집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아병동에는 1인실, 2인실, 5인실이 있다. 처음에 5인실로 배정되었다.


항상 커튼을 치고 있어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5인실에 2명이 백혈병 환아였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모습에 정말 놀랐다. 머리카락이 없고, 창백한 용모로 누워있는 백혈병 환자를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입원 경험이 거의 없어 어버버 하고 있을 때, 바로 옆자리 보호자 아주머니께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챙겨주셨다. 회진 내용을 듣고는, 막내가 수혈을 받는 상황을 알고는,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분의 아들이 중학생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아 치료하고 잘 지내다가 20살에 재발해 다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몰라서 공감을 못 해드렸다. 지금은 '재발'이 얼마나 지옥일지 짐작할 수 있다.


아주머니는 오랜 간병 생활로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막내의 혈액수치를 보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조금 지쳐 보였다.


“아기 엄마! 백혈병만 아니면 돼. 너무 걱정 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러 번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혈병만 아니면 된다고. 그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때는 미래를 몰랐다.


이틀 후 2인실에 자리가 나서 옮겼다.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셔서 짐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2인실에서도 옆자리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아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열이 나거나 다른 감염이 있을 시 소아병동에서 먼저 치료를 한다. 이 병원이 특히 혈액암으로 유명하므로 백혈병을 비롯한 소아암환자 비율이 많은 것 같았다.


옆자리 아기는 막내와 나이가 같았지만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없었으며 침대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면역력이 약한 백혈병 환아들은 막내와 같은 감염환자로부터 격리해야 하기 때문에 마주치지 못했다는 것을.






막내는 계속 기침을 했고 고열이 났다. 독감 후 폐렴이 심해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1주일 동안 계속해서 수혈을 받았다. 수혈을 받아 올랐던 수치가 다음 날 다시 떨어졌다. 2~3일마다 빨간 혈액팩이 배달되어 기계를 통해 아이의 몸속으로 공급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매일 다녀가셨지만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다가 입원 1주일째, 계속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골수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골수검사를 받고 나서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았다.


급히 소아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울면서 짐을 옮기는 가운데 복도에서 5인실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기엄마~ 아까 검사 잘 받았어?”


“저희 아이도... 백혈병이래요.. 어떡해요..”


그분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안아주고 토닥여주셨다. 생면부지 남이었는데 며칠 만에 동지가 되었다.


“아이고... 아기엄마.. 괜찮아... 괜찮아.. 치료 잘 받으면 다 나아. 걱정하지 마. 아기는 아직 어려서 잘 나을 거야. 암병동에 가면 다 같은 엄마들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그러면서 이겨낼 수 있어. 열심히 치료받고 울지 마.”


같이 눈물을 훔쳤다. 아주머니는 떠나는 순간까지 우리를 배웅해 줬다.


2인실에서 바로 옆 침대 백혈병에 투병 중인 아기와 3일간 같은 방을 썼지만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만 있는 아이를 보고 안녕하냐는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울면서 짐을 싸는 중에 아기 아빠께서 멸균주스와 과일캔을 들고 커튼을 넘어오셨다.


“저 옆 침대 아이 아빠입니다. 아까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희 아이도 오늘 암병동으로 들어갑니다. 거기는 간식으로 이런 게 필요해요. 힘내시고 또 뵈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그분이 건네준 위로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아기와는 소아암 병동에서 나중에 친구가 되었다. 그러려고 룸메이트가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