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

너와 걷는 기적_08

by 빨간나무



얼마 전 밤에

침대에 누워 마주 보고 있다가

막내가 말했다.


"엄마. 나 집에 있어서 좋아."



너도 병원에서 나와서 좋다는 걸 아는구나.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엄마도 좋아. 집에서 다 같이 자서 좋아."



가혹한 처치와 항암치료의 부작용,

발열, 새벽 채혈, 불편한 기저귀... 등등

아기는 계속 깨서 울었다.



심전도음와 산소 알람소리,

가슴에 연결된 수액라인 확인...

각종 처치와 시술에 협조하러

엄마도 계속 깨야만 했다.



수만 가지의 이유로 제대로 자지 못 했던

힘들었던 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평화롭게 자고 있다.

건강해지고 있는 막내와 함께.


이곳이 낙원이다.







이렇게 잘 지내다가도 문득

막내가 병원에서의 기억을 입에 올린다.


그럴 때는 약간의 서늘함이 지나간다.

기억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병원에서 미역국 먹었잖아~ 미역은 안 먹고 고기만 먹었어."


"병원에서 소시지도 먹었지?"


"선생님이 여기 따끔했지. 엉덩이에 주사 맞았어."


"나 병원 가기 싫어."




병원과 아무 연관이 없는 활동 중에도

갑자기 말하곤 했다.


잘 놀다가, 갑자기, 떠오르나 보다.


대부분은 즐거웠던 기억들이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병원에서 맘마차 따라다녔지."


"친구♡♡이랑 놀았어. 폴리자동차 빌려줬어."


"♡♡가 나를 형아라고 불렀지. 같이 놀았어."


"아빠가 스티커책 갖다 줬지."





놀라운 사실은...

막내가 말을 못 했던 때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 강아지(인형) 있었지. 강아지 집에 갔어. 안녕했어."


"♡♡형아가 반지사탕 줬잖아~ 맛있었어."




그때는 '아또, 엄마, 까까, 아야, (선) 생님'...

이 정도만 말했을 때였다.


'강아지', '반지사탕'이라는 말을 아예 못 했고

그 형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놀랐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아이의 말에 다시 기억이 났다.



솔직히 모두 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에게 남아있었다..


불과 1년도 안 된 일들이니까

아직은 그럴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동생이 태어났던 7살 즈음의 기억이

최초의 기억이라고 믿고 있다.


아마 막내도 다 커서는

2~3살 때의 기억이 희미해질 거라 믿는다.

그때는 1년? 2년? 마다 정기검진만 다니겠지?



아픈 기억보다 즐거운 기억이 남도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겠다.!




아픈 기억은 다 잊어버리길 소망한다.


너는 건강해질 거야.

다 누리고 살 거야.

결국 행복한 기억만 남을 거야.







그래서...

병원 갈 때마다 장난감을 사주게 된다...�


채혈의 아픔을 자동차로 잊는 중...ㅎㅎ



아픈 기억이 덮일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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